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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Q - 아들의 목숨을 위한 아버지의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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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022회 작성일 11-10-31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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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Q (2002)

예전 호주에 약 일년간의 여행을 위해 이것 저것 많이 준비를 하는데 다녀온 사람들의 조언들로부터 중요하게 챙겨야 할 것들 중에서 여행자 보험을 들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하였다. 그때까지 크게 다치거나 아팠던 적이 없어서 한 번도 병원에 입원을 하거나 깁스 등을 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고 보험없이 가기로 하였다. 그리고 여행을 하던 중 혼자서 약 5일간 산행을 하던 날이 있었는데 등산 첫 째날 왼쪽 엄지 발가락에 간단하 찰과상을 입었었다. 평소에 지낼 때 사내 아이들이 한 번씩 겪는 수준의 단순한 상처였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상처가 나빠지기 시작했으며 목적지에 도달했을 때에는 제대로 걷지를 못했다. 산에서 내려온 후 인근의 병원을 찾아 의사를 만났다. 그리곤 상처가 감염이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5일간 입원을 했으며, 간단한 수술도 받았다. 생애 처음으로 입원을 하고 휠체어를 타고 다녔었다. 내가 입원을 하던 첫 날 나에게 찾아온 사람은 담당의와 원무과 사람이었다. 의사는 나에게 다른 것은 묻지 않고 오직 상처의 치료에만 신경을 썼다. 대신 원무과 사람은 내가 보험이 있는지 물었는데, 놀랍게도 내가 보험이 없었기 때문에 하루 입원비로 약 500불을 지불해야 한다고 했다. 치료비와 함께 5일간 병원비가 약 2000불 이상 나왔고 원무과 사람은 수시로 나에게 와서 가지고 있는 재산과 한국의 연락처 등을 물어 갔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병원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 마지막 진찰을 온 의사에게 퇴원을 물었는데, 의사는 병원비를 내든 안내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자기는 할 일인 치료를 끝냈으니 퇴원을 하든 말든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날 원무과 사람도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짐 싸서 나왔다. 그 이후에 나는 보험의 중요성을 크게 느끼게 되었다.

요즘은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말도 사실 크게 의미가 없어지고 있다.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부의 역할은 커지며 빈부격차의 증대는 필연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잘 사는 사람은 좋은 곳에서 잘 먹고 잘 자고 검진도 잘 받아 병이 잘 안 나고 늦게 발견하는 일도 드물뿐더러 조기에 발견해서 충분히 치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없는 사람은 못 먹고 좋지 못한 환경에서 지내 병이 나기 쉬우며 아픈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미 상당히 악화된 상태여서 치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 결국 제대로 손 쓰지 못한 채 죽음을 맞아야 한다. 이런 상황은 사회의 불안정을 증대시켜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게 된다. 기득권이 가장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유지하는 것인데 이러한 불안정이 증대되는 것은 그들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결국 어느 정도의 균형점이 존재하게 될 것인데, 현재 대한민국은 그나마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으로 인해 다른 나라보다 의료에 대한 혜택이 나은 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지금의 모습이 계속 이어지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다. 바로 의료 민영화 때문이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은 잘 사는 나라일 수는 있지만, 국민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라고 할 수는 없다.

미국의 의료 현실에 대한 문제점을 꼬집은 유명한 영화 중 하나가 2002년에 개봉한 ‘John Q’이다. 영화가 나온지 약 9년이 되었지만 처음 그 영화를 보았을 때의 강한 인상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어서 최근 큰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여러 생각을 하던 중 다시 한번 떠올라 찾아보게 되었다. 그때도 대단하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는 ‘덴젤 워싱턴’이 주연으로 참여하여 아버지이자 인질범의 역할을 맡았다. 영화는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많은 가계 빚을 가진 채 어려운 생활을 하지만 아들과 아내와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중심으로 시작된다. 유일한 가족의 행복이자 미래인 어린 아들이 야구 시합에서 갑자기 쓰러지게 되고 병원에 가 심부전증으로 인해 심장 이식 수술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런데 병원에서 가족에게 두 가지의 길을 제시하여 준다. 한 가지는 약 25만불 정도의 비용을 들여 심장 이식 수술을 하는 것과 돈은 얼마 들지는 않지만 아들이 편안하게 죽을 수 있도록 약물 치료를 해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이미 이 가족의 가계 소득과 부채의 수준과 보험에 대해 알고 있어 두 번째 길을 권유한다. 아들의 치료는 둘째로 두고 돈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병원을 원망하지만 그들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심장 이식 수술을 시켜야만 한다. 부부가 사방으로 뛰어 지원금과 모금을 받지만 심장 이식을 위한 대기 명단에조차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아버지는 눈 앞에서 죽어가는 아들을 보아야 한다는 생각에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그는 병원의 심장 전문의를 데리고 응급실을 잠그어 환자 및 의료진 몇 명을 인질로 삼아 아들의 심장 수술을 강요하게 된다. 그가 일반인이지만 매우 노련한 범죄자인 것처럼 인질들을 다루고 경찰이 둘러싼 이후에도 의연히 대처하며 협상하는 것을 보면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비범한 능력이 나오는 것처럼 그 아버지가 얼마나 집중을 하고 아들의 치료를 원하는 것인지 알려준다. 놀라운 것은 그 아버지는 인질을 총으로 위협하지만 사실 총에는 처음부터 총알이 들어있지 않았으며 유일하게 가진 하나는 바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가지고 있었다. 게다가 아들의 심장을 구할 수 없으니 스스로가 그 총알로 자살하여 자신의 심장을 아들에게 주겠다며 스스로 머리에 총을 대고 방아쇠를 당긴다.

다행히 자살에 실패하여 목숨을 유지하지만 아들은 극적으로 구한 심장을 이용해 이식 수술을 하게 되고 자신은 순순히 경찰에 잡혀가 법원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는 세 가지 혐의 중에 인질 범죄에 대한 부분에서 유죄를 선고 받고 나머지 두 가지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 받는다.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의도로 인해 세밀한 구성과 전개는 크게 매끄럽지 못하지만 누구나 쉽게 이해가 되는 간단한 스토리와 함께 돈 없는 사람들은 제대로 받아주지 않는 병원과 미국 의료 현실을 매우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이 영화는 충분히 높은 점수를 받을 만 하다. 영화에서는 개인이 인질극이라는 범죄를 통해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였지만 현실에서 이러한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더욱 심각한 상황을 통해 변화를 요구하는 극단적인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의료 민영화가 가져올 수많은 장점들이 단 하나이지만 정말 소중한 부분인 보다 많은 사람을 치료할 수 있다는 점으로 인해 포기해야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고 돈이 많이 들기 때문에 치료하지 않고 죽게 두는 것은 단순한 계산기로써는 나오는 결과이지만 그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비윤리적인 행동이 때문이다. 우리나라 정부는 아직 민영화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이라서 정말 다행이다. 나와 우리의 미래는 나’만’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 나는 살아갈 것이다. 큰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런 소중한 생각을 가지고 살도록 보다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을 선물로 주고 가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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