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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상을 말하다 - 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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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윤상
댓글 0건 조회 6,130회 작성일 14-04-29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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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역사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삼국시대 이후로 수많은 외적의 침략을 받아왔고 이에 맞서 자랑스럽게 나라를 지켜낸 항전의 사례가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과의 전투를 하지 않고 침략해온 적을 되돌려 보냄과 동시에 영토까지 얻어낸 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고려 무관이자 외교관이었던 서희 장군의 업적이다. 서희 장군은 고려를 침략해 온 거란의 대군에 맞서서 어떻게 전쟁을 하지 않고 돌려 보낼 수 있었으며 영토까지 얻어낼 수 있었던 것일까?

고려가 건국 된지 75년이 된 서기 933년, 거란의 총사령관 소손녕이 이끄는 대군이 압록강을 넘어 고려로 쳐들어 왔다. 그들은 자신들의 병력이 80만이라고 과장되게 말하면서 항복을 유도했다. 당시 고려의 군사를 다 합쳐도 모자란 대군이 쳐들어온 것이다. 이에 조정에서는 마치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걱정하듯 서경(평양) 이북 땅을 내주고 화의를 하자고 왕에게 건의한다. 그 당시 조정대신들은 대개 고려 건국의 공신들의 후손들로 나라의 앞날 보다는 자신의 앞날을 더 중요시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거란의 침략에 결사항전으로 싸우게 될 경우 그 당시 누르고 있던 여러 특권들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그것만은 피하고자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서희 장군이 싸워보지도 않고 항복하는 것에 분개하여 왕과 조정대신들을 설득하고 결국 협상의 테이블로 나아가게 된다. 이렇게 왕과 조정대신들을 설득시킨 서희의 능력이 바로 거란까지 설득시키게 된 바탕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협상 테이블로 나간 서희는 소손녕과의 첫 만남에서 예를 갖춰 절을 하라는 위협을 받는다. 만약 거란군의 요구를 받아준다면 처음부터 고려가 굴복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서희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협상장을 나온다. 계속된 소손녕의 요구에도 서희는 응하지 않자 결국 소손녕이 한발 물러섰다. 생명을 보장할 수 없는 적진 한가운데에서의 그의 모습은 협상을 임하는 자세를 생각케 한다. 협상이라는 것은 결국 상대방이 가진 생각을 나에게 유리하게 바꾸는 과정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상대방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큰 영향을 끼친다. 서희를 처음 보는 소손녕에게 있어서 서희의 행동은 강한 인상을 남겼고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시키게 했다는 점에서 향후의 협상과정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러한 첫인상이 협상의 결과까지 이끌어내지는 못한다. 왜냐하면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여 생긴 협상장이기 때문에 결코 대등한 위치를 가질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서희는 거란의 의도를 빨리 파악하고자 했다. 거란이 일으킨 전쟁의 명분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거란이 고구려 땅에서 일어났으니 고려가 가진 옛고구려 땅을 내놓으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중국 송나라와는 교역을 하면서 왜 자신들과는 교역을 하지 않는가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첫번째 명분의 경우 사실 고려라는 나라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구려를 계승하여 세운 나라라는 점에서 손쉽게 대처할 수 있었지만, 송나라와의 교역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물자거래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 당시 북중국은 거란이, 남중국은 송나라가 지배하고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어서 자칫 송나라와의 교역을 중단하고 거란과의 교역만 하게 될 경우 송나라와의 외교관계 단절을 가져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유교를 중시하는 고려 사회에서 송나라와 대치중인 거란은 공동의 적과 같은 의미였었다. 따라서 이 부분을 잘 설득시키지 못할 경우 자칫 거란이 요구하는 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서희는 그 당시 국제사회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비록 고려가 거란이나 송나라에 비해 약소국인 것은 사실이지만, 거란과 송나라의 대치상황에서 보면 힘의 균형을 좌우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거란의 입장에서는 송나라와만 교역하는 고려로 하여금 자신들과의 교역을 하게 만들어서 차후 송나라와의 전쟁 시 고려로 하여금 거란을 돕게 하거나 적어도 송나라를 돕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이 전쟁의 진짜 목적이었음을 서희는 간파하였다. 이에 고려와 거란 사이에 있는 여진족을 거론하며 이들 때문에 교역을 할 수 없었다고 하면서 고려가 여진족을 쫓아내고 그 땅에 성과 보를 쌓아 교역을 하겠다고 제안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거란의 입장에서 보면 서희와의 협상에서 얻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또한 서희의 협상 전략 중 하나였다. 협상의 상대자로 하여금 자신의 손해가 더 크지 않음을 믿게 만드는 것이다. 서희는 소손녕으로 하여금 고려가 여진족을 쫒아내기만 하면 거란과 교역을 하겠다는 의견을 왕에게 보고하게 함으로써 소손녕도 함께 이길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준 것이다. 즉, 협상에서 자신만을 위해 유리하게 이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방이 양보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 줌으로써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에 소손녕을 만족하고 돌아갔으며 고려는 압록강 일대의 옛 고구려 영토인 강동 6주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나서 고려는 강동 6주에 성을 쌓아 방어를 준비하는 한편 군사력을 키울 시간을 벌었다. 훗날 거란이 재차 쳐들어 왔을 때 이 성들로 하여금 최전선의 방어 거점이 되었고, 퇴각하는 거란군을 귀주성에서 전멸시킨 유명한 귀주대첩이 벌어진 곳 또한 서희가 얻은 강동 6주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처럼 서희의 외교력 덕분에 짧게는 거란의 침입을 저지하고 강동 6주를 얻었고 길게는 훗날 다시 쳐들어온 거란의 칩략마저 저지할 수 있었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게 만든다. 앞서도 언급하였듯이 우리나라는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조건에 놓여 있어서 어느 나라보다 외교와 협상의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협상으로 인해 오히려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우리는 서희가 했던 협상을 되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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