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남용되는 긍정에 말한다 - 긍정의 배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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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남용되는 긍정에 말한다 - 긍정의 배신
시크릿, 긍정의 힘, 마시멜로우 등 서점에는 긍정에 대한 자기계발서가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 SNS에도 긍정, 긍정적으로 긍정긍정 이란 문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긍정은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과연 자의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나 사회에게 강요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다수 우리의 긍정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강요되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긍정이라는 단어는 보통 좋은 의미의 단어들과만 쓰인다. 그 때문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조금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제목으로 사용한 긍정은 맹목적이거나 병적인 낙관론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미국 문화에 깊이 스며든 병적인 긍정주의의 횡포에 눈을 뜨고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전방위적으로 파헤친다.
긍정주의는 원래 가혹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청교도적 칼뱅주의에 반발하는 '신사상 운동'으로 태동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칼뱅주의의 독소를 그대로 물려받음으로써 인간이 가진 비판 의식과 분노를 긍정이라는 끊임없는 강한 암시를 통해 최면을 걸어 억누르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그럼으로써 현실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고 무조건적인 낙관론을 요구하며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것을 멀리하고 실패의 책임은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각종 동기유발 프로그램과 책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를 깊이 새기며 퍼져나갔다.
이러한 긍정 이데올로기는 악용은 사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는 낙천성이야 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원리로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나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들이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 보장의 미비함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먼저 탓하게고 동기 유발에 더욱 매진하게 유도하여 다독임으로써 긍정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용한 방패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연설에서 ‘젊은이들이 세계 국가 대한민국의 주역이니 도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 말고 지금 당장의 처지가 어렵더라도 인내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극복해야 한다.’ 했다. 정부가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긍정의 힘을 악용하여 젊은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어떤 횡포일까.
또한 긍정주의는 소비를 부추기고 기업의 성장에 유리한 문화를 조장하며 긍정을 맹신함으로써 위험에 대비하지 않아 경제 위기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모기지 산업이 침체에 빠진 시기에 기업은 긍정에 의한 동기 유발을 이용해 국민의 소비를 독려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증가를 불러왔고 결국 개인 파산의 급증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긍정의 힘은 더욱 견고해져 경제 붕괴 위기의 경고를 묵과하더니 결국 2008년 말 세계 경제의 침체를 불러일으켰다. 경제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 예가 있다.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비판, 비관적인 시각 자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연방수사국 등 여러 곳에서 테러에 대한 징후를 감지했음에 불구하고 대통령의 병적인 긍정주의 때문에 그런 불편한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9. 11 테러를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개인의 책임을 점점 더 강요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주의의 메시지는 불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더 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인 평가 후에 만들어지는 자의적인 긍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절대적인 긍정 앞에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내 모습과 그로 인해 나태하고 방관적인 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은 너무 비판적이기도 한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병적인 긍정주의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계의식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측면에서는 더 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시크릿, 긍정의 힘, 마시멜로우 등 서점에는 긍정에 대한 자기계발서가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베스트 셀러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개인 SNS에도 긍정, 긍정적으로 긍정긍정 이란 문구는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물론 긍정은 좋은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과연 자의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일까, 아니면 타인이나 사회에게 강요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대다수 우리의 긍정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강요되어 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긍정이라는 단어는 보통 좋은 의미의 단어들과만 쓰인다. 그 때문에 '긍정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을 접했을 때 조금 위화감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제목으로 사용한 긍정은 맹목적이거나 병적인 낙관론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은 것이다. 이처럼 저자는 미국 문화에 깊이 스며든 병적인 긍정주의의 횡포에 눈을 뜨고 사람들을 옥죄고 있는 긍정 이데올로기의 문제점을 전방위적으로 파헤친다.
긍정주의는 원래 가혹한 자기성찰을 요구하는 청교도적 칼뱅주의에 반발하는 '신사상 운동'으로 태동했다.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와 칼뱅주의의 독소를 그대로 물려받음으로써 인간이 가진 비판 의식과 분노를 긍정이라는 끊임없는 강한 암시를 통해 최면을 걸어 억누르는 것으로 변질되었다. 그럼으로써 현실 문제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는 것을 막고 무조건적인 낙관론을 요구하며 비판적이고 비관적인 것을 멀리하고 실패의 책임은 개인의 긍정성 부족으로 돌리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게다가 각종 동기유발 프로그램과 책들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이를 깊이 새기며 퍼져나갔다.
이러한 긍정 이데올로기는 악용은 사회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는 낙천성이야 말로 성공의 열쇠이며 훈련을 통해 누구나 갖출 수 있는 덕목이기 때문에 실패한 사람에게는 이것이 부족하다는 원리로 개인의 책임을 가혹하게 강요한다. 예를 들어 일자리가 없는 젊은이나 구조 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은 직장인들이 제도의 불합리성과 사회 보장의 미비함에 대해 생각을 하는 것보다 자신의 긍정성 부족을 먼저 탓하게고 동기 유발에 더욱 매진하게 유도하여 다독임으로써 긍정을 신자유주의 시대의 유용한 방패로 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 연설에서 ‘젊은이들이 세계 국가 대한민국의 주역이니 도전하는 것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주저 말고 지금 당장의 처지가 어렵더라도 인내하고 미래를 내다보며 극복해야 한다.’ 했다. 정부가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긍정의 힘을 악용하여 젊은이들에게 무조건적인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어떤 횡포일까.
또한 긍정주의는 소비를 부추기고 기업의 성장에 유리한 문화를 조장하며 긍정을 맹신함으로써 위험에 대비하지 않아 경제 위기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 모기지 산업이 침체에 빠진 시기에 기업은 긍정에 의한 동기 유발을 이용해 국민의 소비를 독려했다. 이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증가를 불러왔고 결국 개인 파산의 급증을 불러왔다. 하지만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긍정의 힘은 더욱 견고해져 경제 붕괴 위기의 경고를 묵과하더니 결국 2008년 말 세계 경제의 침체를 불러일으켰다. 경제뿐 아니라 국가의 안보에도 영향을 미친 예가 있다. 언제나 낙관론을 요구한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은 비판, 비관적인 시각 자체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는 연방수사국 등 여러 곳에서 테러에 대한 징후를 감지했음에 불구하고 대통령의 병적인 긍정주의 때문에 그런 불편한 단서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9. 11 테러를 눈 뜨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무조건적인 긍정주의는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지 못하고 개인의 책임을 점점 더 강요하게 될 것이다. 게다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밝은 면만 보고 자신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라는 긍정주의의 메시지는 불편한 사회 현실을 외면하고 저마다 자신의 쳇바퀴에만 열중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의 매트릭스로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더 큰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인 긍정적 사고라는 대중적 환상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하고 객관적인 평가 후에 만들어지는 자의적인 긍정이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절대적인 긍정 앞에 비판적인 시각을 잃어버린 내 모습과 그로 인해 나태하고 방관적인 내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가끔은 너무 비판적이기도 한 저자의 말에 전적으로 찬성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으나 병적인 긍정주의가 만연한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경계의식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측면에서는 더 없이 좋은 책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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