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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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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홍슬기
댓글 0건 조회 5,790회 작성일 12-01-01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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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를 읽고

흔히 한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날에는 TV에서 연기대상 시상식을 진행한다. 신인상, 우수상과 같이 많은 상들을 새해 맞이 타종 전에 시상을 하고 타종이 끝난 후에는 가장 큰상인 대상이 수여된다. 항상 이맘때가 되면 인터넷에서는 한해의 연기대상이 누구일지 예측하는 기사들이 올라오고 다양한 네티즌들의 설전이 오고간다. 하지만 올해는 이러한 설전속에서도 압도적으로 수상가능성이 점쳐지는 배우가 있었다. 바로 올한해 하반기 드라마로 수, 목요일은 뿌요일이라는 신드롬을 일으켰었던 그리고 사람들에게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한번 일깨워 주었던 “뿌리깊은 나무”의 한석규였다. 드라마속에서 그가 바로 세종이었고 세종이 한석규로 느껴질만큼 우수한 연기를 보여준 그의 수상에 반발하는 의견은 없었으며 다른 후보를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한석규는 수상소감으로 한 배우가 이렇게 만들어 지기 위해서 네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는데 바로 우수한 원작을 쓰는 작가와 대본을 쓰는 작가, 무대를 만들어 주는 제작팀, 시청해주고 호응해주는 관객, 그리고 함께 극을 만들어 가는 동료배우들을 꼽았다. 그중에 가장 첫 번째로 언급한것이 바로 작가이다. 뿌리깊은 나무는 이정명 선생님의 동명의 원작소설 “뿌리깊은 나무”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이다. 드라마는 원작과는 달리 많은 인물들과 사건이 추가되었고 또 24부가 끝날때까지 긴장을 놓치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는데 소설 역시 영상이 아닌 글로 전달된다는 점에도 불구하고 독자를 한순간에 집중시키고 쉽게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 책은 역사속 사실과 허구를 적절히 섞어서 소설적 재미를 이루어낸 한국형 펙션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의 뜨거운 시대의식과 디테일한 자료조사를 통한 생생한 시대구현 또한 매우 돋보이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과학이나 기간산업의 발전이 융성했던 세종 시대, 한글반포 전 7일간 경복궁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을 소재로 하여 역사추리소설을 구성하였다. 이러한 설정은 많은 이들의 호기심 또한 불러일으키고 단순히 한글이 반포되었다라는 결과만 알고 있는 독자들이 과연 어떠한 과정이 있었을 지 호기심을 일으키게 하며 세종 시대를 어느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내용 전반적인 흐름을 이끌어 가는 겸사복 채윤이고 극의 무게로 보면 세종이라 할 수 있다. 집현전 학자의 반복적인 죽음으로 이어지는 극의 내용은 채윤의 끝없는 끈질김과 탐구욕으로 인해 사건의 계속적으로 실마리가 제공되고 결국 마지막 살해 대상이던 학자 성삼문을 구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과정에서 채윤은 처음부터 의문을 품은 여러가지 궁에 대한 비밀을 듣게된다. 계속되는 죽음, 어느샌가 어렴풋 알게된 임금의 개입, 처음보는 마방진과 여러가지 과학, 수학, 해부학과 같은 잡학까지 모든 것이 한번에 섞여 궁의 비밀이 풀리는데 바로 임금인 세종이 하고 싶은 것은 글자를 모르는 백성들에게 우리만의 '글'을 알리고 반포하려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명나라가 알게되면 언제라도 조선을 침략할 명목을 주기 때문에 백성을 구제하기 위한 글자가 백성을 죽이는 꼴이 되기 때문에 세종은 어쩔 수 없이 비밀스레 진행했던 것이다. 그것을 눈치 챈 친명 학자가 그 진행과정을 잡기 위해 비밀의 서책을 가지고 있던 인물들을 차례로 죽인 것이다. 내용이 진행될 수록 한나라의 왕인 세종마저 죽이려는 친명세력의 암살자에 의해 책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된다. 최고조의 긴장감을 팽팽히 유지하며 작가는 마지막에 반전을 보여주며 지금까지의 일들의 원인과 궁금증에 대해서 말끔히 해결해 준다. 자신의 다짐을 확고히 하는 세종의 모습을 보며 자신이 죽을 위험에 처했을 때도, 하루하루 잠을 못 이루며 백성을 걱정했던 세종, 그는 과연 깊고 굵은 뿌리를 가진 진정한 뿌리깊은 나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비록 책이 펙션이라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책을 덮고나서 남는 잔상은 생생한 세종의 모습 그것이었다. 임금, 모든 권한을 누리는 것 같지만 그 권한은 단순한 개인의 권한일 뿐이었다. 그 권한을 가짐으로써 지게된 책임은 개인의 책임이 아닌 이천만 모든 민중의 책임이었다. 큰 책임과는 반대로 외롭고 고독한 정점의 자리를 작가는 꽤나 소호력있게 표현했다.
책 뿌리깊은 나무는 단순히 한글 창제 뒷 배경에 대해 쓰여진 추리소설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요즈음의 세계의 우리사회와 관련된 이야기도 전해주는것 같다.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게 굴복하는 약육강식의 논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서라도 뭐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돌리려는 이기주의, 그리고 능력과 관련 없이 힘세고 돈 많은 자만이 모든 것을 가지고 약하고 힘없는 자들을 무시하고 상대할 가치도 없는 존재라고 믿는 자신들만의 우월사상. 이 모두가 우리 사회에서 난무하는 것들이다. 이 소설은 그런 것들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언뜻 보면 단순한 추리소설인 이 소설이 사람들에게 그렇게 주목 받았는지도 모른다. 강채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들을 살펴보면 우리사회의 모습이 대변되 있다는 느낌을 더 지울 수 가 없다. 강채윤은 살인사건을 수사하려는 자신에게 닥치는 여러 신분차별과 대면하면서, 자신이 높은 위치의 양반이었다면 쉽게 얻을 수도 있었던 사건의 단서들마저 자신에게서 등을 돌리는 어려움을 맞는다. 이러한 모습들이 반복되어 보여지면서 만약 강채윤이 일개 겸사복이 아닌 높은 위치의 관리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로 나뉘었을 것이다. 강채윤이 경학파 쪽이었을 경우, 아니면 실용학파였을 경우. 만약 전자였다면 강채윤은 콧대 높은 관리였기에 자잘한 단서를 잡지도, 경학파였기에 성삼문이나 소이, 혹은 반인 가리온에게서 많은 단서를 잡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후자였다면 실용학파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쉽게 알아내긴 하겠지만 그래도 자존심이 있는 관리이기 때문에 겸사복 강채윤이 했을 많은 일들을 하지 못해 많은 것들을 놓쳤을 것이다. 어쨌든 어느 쪽이든지 높은 관리의 강채윤이었다면 강녕전으로 세종을 구하려 뛰어 들어가지도 못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어떻게 보면 경학파의 관리들은 자신들이 근본이 있는 관리들, 뿌리깊은 나무인것 처럼 행동하지만 마치 갈대와도 같아 세상의 여러 문명에 길들여져 이리저리 바람결을 따라 흔들린다. 하지만 세종과 실용학파 사람들이 진정 깊은 뿌리를 가지고 튼튼한 나무와 같이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새로운 문자를 창조하고 새 종류의 학문을 지향한다.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 이미 쓰여진 과거의 역사를 보는 입장이기에 지금 현재 우리나라의 언어를 창제한 세종과 실용학파를 지지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당시의 시대상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하고 당시 전해내려오던 학문을 주도하고 이끌어 나가려던 경학파를 비판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진정 뿌리깊은 나무라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신념을 곧게 가지고 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아우르는 말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뿌리깊은 나무에서는 그시대의 시대상과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하여 독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최고의 직책과 책임 두가지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고독이 가득한 '왕'을 비롯해 비록 출신은 미천하나 끝없는 도전정신과 탐구력으로 결국에는 만족스런 결과를 얻은 채윤과 같이 극과 극의 인물을 통해 배울 수 있던 것이 있을 뿐 아니라. 또한 비록 고집쟁이와 같이 표현 되었지만 자신의 의지를 꺾지 않고, 자신이 어려서 부터 각인 되어 있던 사실에 대해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학자들의 정신또한 본받을 만한 것이었다. 새로운 변화를 시도를 할 때에는 어느 역사에서나 큰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 책은 자주적인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조선의 미래를 위해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다시한번 생각하고 또 그로인해 현재를 살 고 있는 사람들에게 한글의 중요성과 우수성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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