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법치주의의 양면성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065회 작성일 11-10-31 20:20

본문



법정 스릴러 영화를 통해 본 ‘법치주의의 양면성’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하다.” 대한민국 헌법 제 2장 국민의 권리와 의무 조항 중 제 11조 1항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법’이란 사회의 혼란을 해결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기 위해 사람들이 만든 하나의 약속이다. 그리고 국가권력에 의해 강제됨으로서 그 효력을 강화해 놓은 것이 바로 ‘법’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법’은 얼마나 평등하게 적용되고 있는가? 그리고 그러한 ‘법’은 과연 깨끗한가?

최근 대한민국에는 일명 ‘도가니법’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최근 개봉한 <도가니>라는 영화는 지체 장애인을 대상으로 성폭력을 자행한 광주 인화학교 교장 및 교사들을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 <도가니>는 사람들의 입을 통하면서 엄청난 흥행을 이루었고, 영화를 본 국민들은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리고 결국 서명운동과 수많은 언론플레이로 이어지며 ‘도가니법’이라는 장애인 여성과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처벌에 관한 강화규정을 내 놓게 하였다. 이 영화를 통해서 국민들을 분노시킨 배경은 바로 판사의 판결. 판사는 말 그대로 제정된 ‘법’을 통해서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다. 판사는 용의자인 인화학교 교사들의 범죄를 인정하면서도 사회적으로 그동안 베푼 그들의 공헌을 인정하여 매우 약한 처벌만을 판결하였다. 사회에 베푼 것이 많으면 그만큼 죄의 무게는 작아진다는 것이다. 한쪽으로는 기부 등의 선행과 다른 한쪽으로는 장애인 성폭력을 일삼은 이 교사들에게 처벌은 너무 가볍게 처리되었다. 법의 적용이 상대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처벌은 일상에서 뉴스를 통해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거대 기업 총수들의 소환 및 조사, 그리고 그 결론은 사회적 공헌에 따른 고작 추징금 몇 푼 정도... 사회에 기여도가 높으면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다는 것일까? <도가니>는 최근의 이러한 모든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분노를 한꺼번에 분출시킨 매체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최근 보았던 또 다른 영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와 <의뢰인>은 이러한 법치주의 국가의 양면성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준 영화이다. 두 영화는 모두 법정 스릴러로서, ‘법’이 가지는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이다.

먼저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면서 자신을 과시하고, 정의보다는 돈만을 위해 일하는 속물 변호사의 변호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내용은 변호사의 ‘비밀유지의무’에 착안하여 전개된다. 강간미수 혐의를 받고 있는 한 남자를 변호하게 된 변호사는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변호하고 있는 남자가 사실은 악마 같은 존재임을 알게 된 후 변호사로서 지켜야 할 ‘비밀유지의무’로 인해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정의를 위해 사건을 포기한다면 변호사로서의 이력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을 것이고, 그렇다고 명백한 범죄 행위를 무죄로 이끌어내는 것은 개인적인 양심이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딜레마는 긴장감을 자아내며 이야기를 이끌고 가는데, 장르적인 특성을 드러내는 구조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어차피 정의보다 돈을 위해 일한다는 이미지로 포장된 사람이기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왜 스스로 그러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을까?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면서 피해자에 대한 최소한의 동정심이 발동한 것일까? 아니면 악마 같은 의뢰인을 대하면서 일말의 양심이 되살아난 것인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것은 영화의 의미에 있어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딜레마를 풀어나가는 과정은 장르적인 재미를 주지만, 사실 이 영화는 ‘법’이라는 제도의 양면성을 고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법으로 인해 죄 없는 자가 유죄로 판결되고, 또 범인이 혐의를 벗는 것 역시 법의 논리를 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였다. 법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존재로서 주인공의 변호사 캐릭터 자체는 법의 양면성을 잘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국내에서 최근 개봉한 <의뢰인>이란 작품 역시 법정 스릴러물로서, 연기파 배우들이 출연해 인기를 끌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 역시 비슷한 상황에 놓인 변호사가 주인공이 된다. 이 변호사는 아내를 집안에서 살인한 혐의로 체포된 용의자인 남편을 변호하게 된다. 사건을 수사하는 도중 검찰의 증거 없이 이어지는 강압수사에 반발하며 배심원 재판을 요청하게 된다. 그리고 사건을 풀어가며 자신이 변호하는 용의자를 잠시 의심하지만, 결국 자신의 의뢰인을 믿고 변호를 이어가며 결국 무죄판결을 받아낸다. 이후, 무죄를 받은 의뢰인이 결국 아내를 살해한 진짜 범인임을 알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다시 의뢰인을 체포한다. 이 두 이야기는 내용적인 차이는 있지만 전달하는 의도는 같다. ‘법’이라는 긍정적이자 동시에 부정적이 될 소지가 있는 수단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그리고 이를 통해서 법치주의가 가지는 양면성에 대해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검찰 스폰서 사건을 통해 드러난 일이지만, 사회적 정의를 세우고 또 실현하는 법철학적인 의미에서의 법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는 듯하다. 정의는 이상과 달리 실제적으로는 임의적인 것일 뿐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삶의 현실에서 뼈저리게 경험하는 일이지만, 실제로 법과 연루된 경험이 있는 사람 중 일부는 소위 “빽”이 없어서 당하는 설움을 느껴보았을 것이다. 법이 해석의 논리와 논증의 설득력에 좌우되다보니, 법은 결국 해석의 주체인 권력과 자본의 힘에 제압될 뿐이다. 많은 정치인들은 자기들에게 유익이 돌아가지 않는 법안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법치주의 사회에서 궤변으로 여겨지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나온 것은 이런 배경에서 이해될 수 있다. 한편,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의 입맛에 따라 규정되는 정의로 인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힘없고 돈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사람들의 권리는 누가 보호해줄 것이며, 진정한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 것인가?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