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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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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1,059회 작성일 25-07-2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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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캐럴

-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고 -




 '크리스마스 캐럴'은 1843년에 쓰여진 찰스 디킨스의 소설로,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빈부격차가 심화되던 사회 분위기를 배경으로, 자선, 연민, 인간애의 가치를 일깨우기 위해 디킨스가 의도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춰 발표한 작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에벤에저 스크루지는 돈과 성공에 집착하는 구두쇠로, 타인에 대한 배려나 따뜻함을 전혀 갖지 않은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그는 크리스마스마저 무의미한 낭비로 치부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어느 날 죽은 동료 말리의 유령이 나타나 그의 비참한 미래를 경고하고, 이어지는 과거, 현재, 미래의 유령들이 나타나 스크루지로 하여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과거의 따뜻했던 순간들, 현재의 힘겹지만 행복한 가족들, 그리고 외롭고 처참한 자신의 미래를 마주하면서 그는 큰 충격을 받고, 마침내 자신이 살아온 방식을 깊이 반성하며 진심 어린 변화를 결심한다.


 거의 200년전에 씌여진 작품이지만, 현대 사회에서도 해당 작품에 담긴 메시지의 무게는 줄어들지 않은 것 같다. 산업혁명 시대 만큼이나,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부를 최고 가치로 두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감정이나 상황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그러한 삶의 태도가 지향해야 할 것으로 취급되는 느낌마저 들기 때문에, 오히려 개과천선 전의 스크루지처럼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삶의 방식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개인주의가 팽배해지고, 인간관계의 중요성보다 업무 성과와 물질적 이익을 우선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팽배해 지면서, 스크루지적 태도는 현대인의 주요한 삶의 방식 중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


 스크루지는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타인의 고통과 감정을 무시했으며, 그 결과로 미래에 누구에게도 애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죽음을 맞이했다. 현대 사회, 특히 우리나라는 그것보다 더 큰 스케일로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스크루지라는 개인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자체가 점점 죽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나중에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문화의 죽음을 애도해줄 사람도 없어질 것 같은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이 스크루지와 같이 자신의 욕심과 물질적 풍요를 위해 멀리 보지 않고, 바로 앞에 놓인 이익만을 쫓는 삶을 지향해 왔고, 사회적으로 그것이 일종의 '정의' 인 것 마냥 취급되어 왔다. 그 결과 문제점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저출산 국가가 되었고, 이제 한국인들과 외국인들 모두, 나라가 쇠퇴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더 안타깝게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본인들의 삶의 태도를 바꿀 생각이 딱히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롤' 에서는 스크루지에게 유령들이 나타나 변화의 계기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는 작품에 등장하는 유령과 같은 명확한 계기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물질적 가치를 최고로 두고, 다른 가치를 모두 등한시 하는 태도는 이제 버릴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물론, 그러한 악착같음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강국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소설에서와 같이 명확하진 않지만, 잘 보이지 않는 유령들이,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그러한 태도가 옳지 않고, 오히려 사회를 퇴보시키고 있다고. 돈을 최고로 생각하고, 자신의 욕심과, 물질적 이익에 매달리는 것이 과연 진짜 본인을 위한 것이고, 본인이 원한 삶의 방식인지,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러한 분위기를 조장하는 사람들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인지 잘 판별할 필요가 있다.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서, 우리나라가 유독 물질에 집착하는 것은 맞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유일하게 물질을 삶의 중요도 1순위로 뽑기도 하였고.) 많은 사람들이 물질적 가치를 원하고, 스크루지적 삶을 지향하지만, 실제로 스크루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물론 물질적 풍요를 쫓는 것은 삶의 태도 중 하나가 될 수 있겠지만, 마치 그것이 유일한 정의인 양 취급하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스크루지들이, 당신도 스크루지가 될 수 있다며 속삭이며 시야를 좁게 만들어 세상의 다양한 삶의 가치에 대한 가능성을 말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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