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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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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1,023회 작성일 25-08-16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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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를 추억하며

장 그르니에


 자신의 분신같이 비슷한 사람을 겪어본 적이 있는가. 낯선 타인에게서 문득 익숙한 자신의 모습이 투영되는 반가운 느낌을 맞이할 때 소설 같이 묘한 느낌을 받아본 적 말이다. 장 그르니에와 카뮈는 그런 사이였다. 교사와 학생, 철학자와 부상으로 꿈을 접은 운동선수, 서른두 살 성인과 열일곱 살 소년, 부유한 프랑스인과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이라는 크나큰 차이가 있었던 두 사람은 세상과 인간을 향해 절망했다는 점에서 그르니에와 카뮈는 유일하게 닮아있었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달랐지만, 절망이라는 단어 앞에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대학에서 철학 박사를 받고 생계를 위해 적성에 맞지도 않은 교사 생활을 이어 가던 그르니에에게 수업을 듣던 알제리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한 학생이 장기결석으로 관리 대상에 오른다. 그 학생이 바로 카뮈였다. 카뮈가 사는 마을은 사회에 불신과 불만이 가득한 이민자들로 가득했고, 카뮈의 유일한 탈출구는 축구 선수로 돈을 벌어 성공하는 것이었지만 무릎 부상으로 그 꿈이 좌절된다. 카뮈에게는 학교에 나올 이유도, 그르니에의 철학수업 따위를 들을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가정 방문을 마치고 헤어지기 직전에 카뮈가 물었다. 범죄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그르니에는 그런 그에게 책을 읽고 창작을 해보라고 조언해준다. 카뮈는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던 그르니에의 글을 읽고 싶어했고, 그 글을 읽고 따라서 카뮈만의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알베르 카뮈의 목소리가 왜 폐부를 찌르는지 잘 알고 있다. 그에게는 숨김도 암시도 없다. 방백으로도 어중간한 목소리로도 말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이것이 첫 번째 이유다. 그는 말해야 할 것을 직접적으로 말한다. 술책이 없다.

다음으로 그는 자기 자신의 전부를 걸고 말을 한다. 말을 하는 것은 그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는 타인에게 말을 걸 때 자신은 이것이고 타인은 저것이라는 식으로 걸지 않는다. 인간 대 인간으로 그들에게 말한다.

자기 자신의 진실이 아닌 모든 이들에게 타당한 진실을 표현하려 애썼기 때문에 그만큼 더 광범위하게 읽혔던 것이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이방인’에도 잘 드러나듯이 카뮈의 글은 삶의 부조리함에 대해 적나라하고 대담한 표현이 많다. 특히 인간과 기성 사회에 대한 절망, 분노가 노골적이다. 그러나 카뮈의 시선은 언제나 인간을 향해 있었다. 본인을 내친 세상이 원망스럽다 하더라도 카뮈는 절망에서 희망을 노래하였고 좌절에서 벗어나려 애썼다. 그르니에 역시 어린 카뮈를 보면서 과거에 좌절했던 자신의 모습을 투영했고, 그로써 오랫동안 그를 가둬두었던 절망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카뮈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0년간 235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우정을 이어갔다.

 

Don’t walk behind me; I may not lead.

Don’t walk in front of me; I may not follow.

Just walk beside me and be my friend.

 

 하지만 두 사람이 지향했던 철학은 그 어떠한 점도 전혀 닮아 있지 않았다는 점이 흥미롭다. 그들은 결코 서로를 이해하여 동화되거나 타협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문학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관계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름’을 분열과 배척의 수단이 아닌 각자의 철학과 삶을 더 깊게 우려내는 원동력으로 삼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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