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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라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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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1,115회 작성일 25-08-18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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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인원으로 구성되는 단체 스포츠와 달리, 포뮬러 원은 단 한 명의 드라이버의 천부적인 주행 능력으로 결승선의 통과 시점이 좌우된다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의외로 팀의 최고 속도는 드라이버의 발에서만 결정되지 않는다. 다음 그랑프리를 위해 공기역학 패키지와 셋업 변수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계속되는 실패조차 데이터로 환류시켜 결국엔 재현이 가능한 속도로 구현하는 엔지니어들의 탐구. 단 한 명의 오차가 순위 하락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2초 남짓의 피트스톱에서의 수 명의 완벽히 발맞춰진 호흡. 노면 혹은 경기의 흐름에 따른 주행 전략에 맞는 타이어 콤파운드 선택을 위한 집단 지성의 산물. 0.01 초로 승패가 갈리는 트랙의 뒤편에는 수많은 엔지니어, 메카닉과 그리고 전략가의 노고와 판단이 있었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불가결한 존재다. 즉, 개인의 재능은 이런 세심한 체계 위에서야 비로소 증폭되고, 기록은 ‘한 사람’이 아닌 ‘한 팀’의 문장부호로 성취되는 것이다.

 

 

연구실 생활을 시작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난 요즘, 졸업을 위한 연구 그리고 과제에 오롯이 몰두하는 것만으로도 벅찬 나날임에도 불구하고 연구 외적인 상황들에 생각이 자주 머물곤 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은 주변 동기들과 가벼운 대화 속에서도 적잖게 보였고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연구실에 입학한 순서로 결정되는 선배와 후배 사이의 보이지 않는 간극이다. 회사에서는 수직적인 직급 체계나 나이가 그 간극에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할지 모르겠다만,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모인 연구실에서는 그 어떠한 정당성과 근거도 분명해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잠기곤 한다. 때문인지 나는 말을 아끼며 침묵을 선택해 갈등을 최대한 줄여 보고자 했다. 하지만 묵언으로 질문이 사라진 자리에는 추측이 자라나고, 그로 인해 체계화되지 못하고 경직화된 관계 속에서 선배와 후배라는 호칭의 의미에 선뜻 답을 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어느새 나는 후배보다 선배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편에 속하게 됐다.

 

 

한 명이 아닌 두 명의 드라이버가 한 경기에 출전하는 포뮬로 원에서 공공연하게 알려진 한쪽의 페이스 메이커라는 의미를 넘어, 둘 사이에서 피어날 시너지 효과는 시니어의 넓은 시야와 주니어의 과감함이 맞물릴 때 비로소 극대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도치 않게 알게 됐다. 시니어의 가치는 정답을 많이 아는 사람일 때가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기준을 선명히 하고 맥락을 제공할 때 의의가 있다. 고속으로 진입하는 코너에서 노면에 붙들어 주는 다운포스처럼, 정답을 강요하지 않는 선두에서의 시니어의 노련함은 후미에서의 주니어의 속도를 지탱하는 안정성을 마련해주어 그 어떠한 순간보다 빠른 속도로 나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렇다. 팀의 최고 속도는 보이지 않는 두 역량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호칭에 주어진 의미를 확인하려 애쓰기보다, 역할과 책임을 명료하게 나누되 실패를 함께 검토할 수 있는 리듬을 만들어야 한다. 질문은 순서가 아니라 필요에 열려 있고, 결정은 근거와 데이터로 기록되어 다음 사람의 속도를 더하게 해줘야 한다. 시니어는 기준과 맥락을 제시하고, 주니어는 실험과 실행으로 가설을 검증하는 선순환이 굴러갈 때, 보이지 않던 간극은 자연스레 좁혀지고 그 속도는 어떤 순간보다 빨라지며, 결승선은 조금 더 앞 당겨진다. 최고 속도는 나만의 것이 아니라, 함께 달리는 그들 사이의 정밀함에서 발생한 시너지의 부산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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