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치국가 조선 오백년 장기집권의 비밀 - 왕가의 전인적 공부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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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조선시대나 조선의 왕들에 대한 평균적인 이미지는 어떠할까? 드라마 영향인지 당파 싸움이 끊이지 않고 그 안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어리숙한 왕 때문에 나약하고 부패한 나라 정도로 여기기도 하며 일본 제국주의 지배 아래 잘못된 교육의 영향으로 망해야 마땅한 썩어빠진 나라라며 입에 침을 튀기고 욕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편견에 불과하다. 조선은 1392년에 건국하여 1910년 멸망할 때까지 518년 동안 존속했다. 이는 천년의 로마 제국이나 1299년부터 1922년까지 623년 동안 나라를 유지했던 터키의 오스만 제국 정도를 제외하면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경우이다. 게다가 500여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좁고 고립된 불리한 지리적 요건 안에서 여진족과 같은 변방 민족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같은 외세의 침입들을 겪어내면서 국가를 존속시켰다. 게다가 큰 전란기를 제외하면 조선은 비교적 평화와 번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러한 조선의 오백년 장기집권의 비밀이 작가는 왕실만의 체계적이고 훌륭한 교육 체계와 공부법에 있었다 한다.
흔히 알기로 조선의 왕은 장자로 태어나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것은 7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머지 4분의 3중에서도 반정이나 난을 통해 왕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4명 정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 20명의 왕들은 어떻게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이는 세자 시절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육인 서연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치러내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었다. 실제로 서연교육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세종, 성종, 정조 등은 후에 왕의 자리에 올라서도 조선의 태평성대를 일구어 냈지만 그렇지 못한 양녕대군, 사도세자 등은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나야 했다. 또한 왕이 된 후에도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술이 차려진 잔칫상이나 받으며 무위도식하는 게으름뱅이로 사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하들과 함께 학문과 통치를 배우고 국사를 토론하는 경연이라는 교육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경연을 잘 하지 않거나 혹은 연산군처럼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에는 사대부와 신하들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들어야 했으며, 끝내는 폭군이라는 악명을 쓰고 왕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조선 왕가의 대표적인 교육인 서연과 경연을 보면 현재의 시각으로 보아도 굉장히 선진적인 교육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나 왕자들은 대신들과 함께 주입식으로 경전을 읽고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논쟁이 아닌 토론을 통해 보다 나은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역사를 배우고 성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혹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의 왕자와 왕이기에 삼강오륜을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야 했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활쏘기와 격구를 해야만 했다. 진정 지, 덕, 체를 모두 겸비할 수 있는 교육법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어가면서 조선의 시스템이 현재의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첫째, 조선은 유교를 숭배함으로써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인 ‘인’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으로써 백성의 평안함을 다스림의 원칙으로 삼았다. 연산군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인을 근간으로 하는 다스림의 원칙에는 한 번의 예외가 없었고 이는 조선이 수 백년 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둘째, 토론의 문화가 있었다. 서연과 경연은 항상 토론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비록 왕과 신하의 상하 관계가 분명하더라도 중의를 모아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는 왕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신하들의 동의 없이는 어느 것도 왕이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셋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있었다. 실제로 수많은 정책이 결정된 경연에서는 왕 또한 학생에 불과 했기 때문에 신하가 왕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라고 생각하기 쉬운 왕은 사실 이런저런 제약을 많이 받았었고 이는 봉건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교육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집중체로서 전인적인 공부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은 외세의 침입에 불구하고 몇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제도와 문화의 발전과 함께 500년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며 역사의 중요성에 다시 한 번 놀랄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물론 취업이나 승진을 위해 전공이나 영어책을 무수히 읽지만 조선사나 고려사와 같은 인문 역사서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앞으로의 일을 경계하여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말한 대로 토론을 기초로 하여 지식을 얻고 덕을 쌓으며 신체를 단련하는 조선 왕가의 교육법은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한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또한 봉건 체제로 뒤쳐져 있다 생각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은 소통을 외치는 현재의 시스템보다 훨씬 소통과 교류가 많았으며 견제와 균형이 잡혀있었다.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요즘 우리는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할 때마다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고 그들의 제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와 문화도 다르고 실정도 다른 남의 나라를 본받으려 하기 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진짜 모습, 우리가 간직 했던 미덕부터 먼저 되살리는 것이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조선과 같이 역사적 문화적 유산 중에서 얼마든지 본받을 것들이 있을 것 같다.
흔히 알기로 조선의 왕은 장자로 태어나면 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역대 27명의 왕 중에서 장자가 왕이 된 것은 7명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머지 4분의 3중에서도 반정이나 난을 통해 왕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은 4명 정도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약 20명의 왕들은 어떻게 장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까. 이는 세자 시절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교육인 서연을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치러내느냐 하는 것에 달려있었다. 실제로 서연교육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세종, 성종, 정조 등은 후에 왕의 자리에 올라서도 조선의 태평성대를 일구어 냈지만 그렇지 못한 양녕대군, 사도세자 등은 장자라 하더라도 왕이 되지 못하고 궁궐에서 쫓겨나야 했다. 또한 왕이 된 후에도 공부는 멈추지 않았다. 그저 맛있는 음식과 술이 차려진 잔칫상이나 받으며 무위도식하는 게으름뱅이로 사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신하들과 함께 학문과 통치를 배우고 국사를 토론하는 경연이라는 교육에 참석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경연을 잘 하지 않거나 혹은 연산군처럼 아예 없애버리는 경우에는 사대부와 신하들에게 끊임없는 비판을 들어야 했으며, 끝내는 폭군이라는 악명을 쓰고 왕좌에서 쫓겨나야 했다.
조선 왕가의 대표적인 교육인 서연과 경연을 보면 현재의 시각으로 보아도 굉장히 선진적인 교육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왕이나 왕자들은 대신들과 함께 주입식으로 경전을 읽고 외우는 데 그치지 않고 논쟁이 아닌 토론을 통해 보다 나은 진리를 깨달았다. 그리고 역사를 배우고 성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과거를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했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혹한 시험을 봐서 통과해야 했다. 그렇다고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교를 숭상하는 나라의 왕자와 왕이기에 삼강오륜을 몸소 실천하여 모범을 보여야 했고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활쏘기와 격구를 해야만 했다. 진정 지, 덕, 체를 모두 겸비할 수 있는 교육법이 아니었나 싶다.
책을 읽어가면서 조선의 시스템이 현재의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첫째, 조선은 유교를 숭배함으로써 인간을 사랑하는 마음인 ‘인’을 최고의 가치로 여김으로써 백성의 평안함을 다스림의 원칙으로 삼았다. 연산군과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인을 근간으로 하는 다스림의 원칙에는 한 번의 예외가 없었고 이는 조선이 수 백년 동안 나라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다. 둘째, 토론의 문화가 있었다. 서연과 경연은 항상 토론식으로 진행이 되었으며 비록 왕과 신하의 상하 관계가 분명하더라도 중의를 모아 결정을 하는 상황에서는 왕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신하들의 동의 없이는 어느 것도 왕이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없었다. 셋째,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있었다. 실제로 수많은 정책이 결정된 경연에서는 왕 또한 학생에 불과 했기 때문에 신하가 왕의 잘못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일은 일상적이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자라고 생각하기 쉬운 왕은 사실 이런저런 제약을 많이 받았었고 이는 봉건국가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견제와 균형이라는 민주주의의 원리가 숨겨져 있던 것이다.
한 마디로 교육 시스템과 그 시스템의 집중체로서 전인적인 공부법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은 외세의 침입에 불구하고 몇 백 년 전의 일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제도와 문화의 발전과 함께 500년의 왕조를 유지할 수 있었다. 책을 덮으며 역사의 중요성에 다시 한 번 놀랄 수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거의 읽지 않는다. 물론 취업이나 승진을 위해 전공이나 영어책을 무수히 읽지만 조선사나 고려사와 같은 인문 역사서를 보는 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역사는 현재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거나 앞으로의 일을 경계하여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가 될 수 있다. 작가가 말한 대로 토론을 기초로 하여 지식을 얻고 덕을 쌓으며 신체를 단련하는 조선 왕가의 교육법은 오로지 대학입시만을 위한 우리의 그것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또한 봉건 체제로 뒤쳐져 있다 생각될 수 있는 사회시스템은 소통을 외치는 현재의 시스템보다 훨씬 소통과 교류가 많았으며 견제와 균형이 잡혀있었다.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둔 요즘 우리는 우리사회의 바람직한 방향을 논의할 때마다 서구 선진국과 비교하고 그들의 제도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우리와 문화도 다르고 실정도 다른 남의 나라를 본받으려 하기 보다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진짜 모습, 우리가 간직 했던 미덕부터 먼저 되살리는 것이 어떨까? 위에서 언급한 우리의 조선과 같이 역사적 문화적 유산 중에서 얼마든지 본받을 것들이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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