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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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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188회 작성일 14-04-2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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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평소에 텔레비전을 자주 보지는 않는 편이지만, 예전 어느 날 탤런트 김정은이 진행하는 ‘초콜릿’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그 방송은 주로 가수가 나와서 노래 한 두 곡을 부르고 이런 저런 이야기도 나누는 예전의 ‘이소라의 프로포즈’ 같은 프로그램인데, 내 기억에 따르면 그날 아마 처음 그 프로그램을 접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가 마침 보았던 그 날에는 대한민국 삼촌들이 가장 좋아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 ‘소녀시대’가 나왔기 때문에 나도 채널을 고정하고 눈을 크게 뜬 채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제작진이 소녀시대를 위해 몰래 준비한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였는데, 당사자들도 전혀 몰랐던 이벤트 때문에 그날 그 무대는 발칵 뒤집어지고 진행자도 매우 당황하는 일이 일어났다. 몰래 준비했던 이벤트란 평소에 딸을 만나기 어려운 어머니가 나와 사연을 이야기하고 소녀시대가 잠깐 그 딸 역할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사실은 그 딸이 소녀시대의 한 멤버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이었다. 여기까지는 그럴듯한 일이지만, 문제는 ‘어머니’라는 주제 자체 때문이었다. 사실 김정은 씨가 그 이벤트를 시작하기 위해 엄마 이야기를 먼저 꺼내었을 때 그녀들에게서 돌아온 이야기는 ‘엄마 얘기는 자기들 사이에서 금지어예요’ 였다. 평소에 집에 가거나 부모님을 만나기 어려운 자기네들의 생활 때문에 가족 이야기, 특히 엄마에 대한 이야기 자체가 그들에게는 매우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 이벤트에서 어머니가 누군지 알게 된 후 멤버 한 명씩 안아주던 중 한 멤버가 특히 힘들어 하였는데, 그녀가 슬픔을 참으면서도 맘을 굳힌듯한 표정을 지으며 이야기를 꺼내었다. 그녀가 꺼낸 이야기는 먼저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것이었고, 그녀가 이야기를 끝내자마자 무대는 눈물로 채워졌다. 텔레비전 속의 관중들뿐 만 아니라 보고 있던 나도 그때 많이 울컥하였다.

나는 평소 사람 마음은 시소와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 매우 불안정하거나 어색하게 느껴져 한쪽으로 치우치기 쉬운데 그러다가 곧 마음을 바꿔먹으면 다시 균형점을 지나 다른 한쪽으로 그 균형이 넘어가 버리곤 한다. 특히 사람이 대할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찾기 쉬운데, 처음에는 모든 시각과 청각, 촉각 등의 데이터가 한쪽으로 치우쳐진 필터를 거쳐 모두 긍정적으로만 느껴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시소 같은 필터는 다시 제자리를 찾으며 균형을 옮기게 된다. 그러면 우리는 쉽게 다시 다른 균형점으로 넘어가 처음의 좋은 느낌은 거의 느끼지 못하고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는 시간에 따라 이러한 균형이 쉽게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느끼고 지내는데, 그 시소 같이 움직이던 균형이 한 쪽으로 치우쳐져 더 이상 움직이지 않게 되면 우리의 머리와 가슴은 더 이상 제대로 된 동작을 못하게 된다. 다른 균형에서 보이던 모습들은 잊혀지고 묻혀버리게 된다. 너무나도 익숙한 사람들과 익숙한 물건, 익숙한 행동 등의 대부분들이 이미 우리들에게는 한쪽으로 치우쳐진 균형을 가진 대상이며 처음에 느꼈던 반가움과 기쁨, 소중함은 잊어버리게 된다.

신경숙 씨의 소설 ‘엄마를 부탁해’는 너무나 당연하던 우리들의 엄마를 ‘잃어’버린 뒤 우리들이 엄마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들의 고해이다. 소설 속의 엄마는 우리들이 알고 있는 바로 그 엄마이자 아내이다. 그토록 잔소리도 많고 핀잔도 많았지만, 항상 돌아보면 있었고 부르면 대답하던 아내를 자신과 아내의 생일 잔치를 위해 서울로 올라온 그 날 지하철 서울역에서 잃어버렸다.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우리들이 가진 엄마의 사진 중에서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엄마는 어디로 갔나? 아내가 몇 년 동안 자식들에게 받은 대부분의 용돈을 소망원의 아이들을 위해 후원을 해 왔다는 것을 당신은 지금까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내가 언제부터인가 머리가 매우 아파해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당신은 모른 척 해왔다. 엄마의 실제 나이도 너는 모르고 있었다. 이 소설은 서울역에서 아버지 몇 걸음 뒤에서 따르던 엄마가 길을 잃은 뒤 그 가족들이 엄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가운데 각자가 엄마와 아내에 대한 기억을 되짚으며 가슴 아파하며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을 담고 있다. 우리에게 너무 편안하며 당연하였던 엄마가 가졌던 고독과 수고에 대한 생각을 하는 순간순간마다 우리들의 가슴은 그리움으로 터졌으며 엄마에 대해 얼마나 한쪽으로 치우친 균형을 가지고 대하였는지 알게 된다. 너무나 당연하던 것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을 때에는 믿을 수도 없고 너무 속상해지다 당연하던 때가 너무 소중하게 느껴진다. ‘있을 때 잘할 걸’이란 말은 바로 이때 해야 하는 말이 아닌가.

소설에는 큰 딸과 큰 아들 그리고 남편과 엄마가 이야기 하는 네 개의 장과 큰 딸의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이 소설의 독특한 특징은 각 장에서 큰 딸은 ‘너’이며 큰 아들은 ‘그’이고 남편은 ‘당신’이라는 독특한 관점에서의 전개이다. 그런데 실제 이야기는 마치 1인칭인 ‘나’인 것처럼 진행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너는 언제부터인가 엄마가 사진 찍히는 걸 매우 싫어한다는 걸 생각해냈다’ 에서처럼 표현되는데, 큰 딸에 대한 ‘너’의 관점은 마치 글을 읽는 나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같아 내 가슴이 아파졌다. ‘너’라고 부르는 당신은 글 속의 엄마인 것 같기도 하고 제 3자인 것 같기도 해 마치 문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된다. 작가의 이러한 표현으로 글을 읽는 나의 감정 이입은 극에 달하게 된다.

소설을 다 읽은 후 첫 장 제목을 다시 보았다. ‘아무도 모른다’. 엄마를 잃어버렸는데, 아무도 모른다니. 이 제목을 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글을 쓰는 중간중간 그 제목을 떠올리기만 해도 울컥한다. 우리들의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지 엄마라는 말을 들으면 가슴 한 켠이 울컥해지지 않는가. 이 소설을 읽고 난 뒤 가슴이 너무 아팠고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최근 부쩍 힘들어 뵈는 부모님 때문에 정밀검진을 한 번 받게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비용을 알아 보았다. 생각보다 큰 비용에 놀라긴 했지만 무리를 해서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다 문득 이 생각이 들었다. 검진을 해서 문제가 없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정말 막막해졌다. 모르는 것이 나을 수도 있는가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5월은 가정의 달인가? 언제부터인지 어버이날이라는 특별한 날이 되면 의례적인 안부 전화만 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내 머리 속의 시소를 다시 움직여야겠다. 365일, 매일이 어버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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