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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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 나의 한 줄을 보태는 것을 마치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내 마시는 것처럼 쉽게 한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잘 못 해도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어 말을 삼가하는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는 무척 용감해지고 대담해지나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기술이 더 뛰어나거나 혹은 말 한마디라도 가다듬은 뒤 어렵게 작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너무 가볍고 무책임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정보 공간에서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다양하게 충돌하여 사람들의 여러 가지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어떤 이야기에 쉽게 자기 생각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면 더 칭찬받고 싶어서 자기를 더 부각시키는데, 반대로 악플이 많아지면 썼던 글을 삭제해버리거나 익명성 뒤로 숨어버리려고 한다. 게임에 익숙해서 쉽게 지웠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한창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그 때 예전의 선배들은 서로 어떻게 약속을 하고 만났을까 궁금했었다. 지금처럼 언제든지 연락을 할 수 있고, 쉽게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어릴 때 우리들의 삶이 참 답답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지만, 옛날 분들은 오히려 예전이 더 살기 좋았다고 한다.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보다 가벼운 옷을 살짝 걸친 여인의 모습이 더욱 관능적으로 보이듯이, 너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절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신경숙 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휴대전화나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시대의 산물들이 아직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하는 격동의 시대 환경에 있는 네 남녀들의 사랑과 고독, 쓸쓸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까웠던 사람을 잃어버리는 동안 그들은 너무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고 만다. 그 사람을 잃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던 것인가, 내가 너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20대, 젊은 청춘의 시절에는 다양한 일과 감정의 변화를 겪어가면서 나의 정신을 더욱 성숙시켜가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데, 그 과정은 너무나 찬란한 젊은 날뿐 아니라 슬프고 아픈 날들도 많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겪은 정윤은 도시에 와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편하게 주지 못해 친구 하나 없이 지내고 있다. 같은 학교의 미루와 명서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붙어 다닌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친하게 자란 단이도 정윤을 보기 위해 잠깐 올라온다. 정윤은 우연히 윤교수를 통해 미루와 명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긴 이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과의 감정 교류가 많아지게 된다. 둘의 친구가 생기고 곧 또 다른 친구들이 생기면서 정윤은 어머니를 잃었던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 같지만 곧 미루와 명서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서 또 다른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미루는 미루의 언니가 항상 찾던 남자를 항상 찾고 있었다. 미루의 언니가 사라진 그 남자 때문에 분신자살을 하던 그 곳에 미루가 있었다. 미루는 서로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윤에게 함께 지내자고 하여 정윤을 보기 위해 찾아온 단이와 함께 넷이 같이 지내며 서로의 아픈 곳을 보다듬으며 살아가게 된다. 입대한 단이는 군에서 의문의 총기 사고로 인해 죽고 만다. 단이가 윤에게 몇 번의 편지를 썼지만 윤은 한 번도 제대로 답장을 해주지 못하였다. 미루는 어머니에게 그토록 언니와 함께 살던 집을 팔지 말 것을 부탁했지만 결국 팔리고 난 이후로 상실감과 죄책감에 거식증과 대인 기피로 인해 결국 죽고 만다. 인간은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인가. 어릴 적에 그토록 친하게 지내었던 친구였는데 네가 얼마나 고독해하는지 왜 몰랐던가, 네가 그렇게 괴로워하였는데 왜 그때 네 곁에 내가 없었는가. 남은 윤이와 명서는 과연 그 상실감들을 극복해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가까웠던 사람을 잃었던 경험은 없어서 큰 상실감을 느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공감을 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등장 인물들의 상황에 깊게 빠져서 나의 가슴도 아파하였다. 감정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워서 책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고 지금 내 감정과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요즘 인터넷에서 그렇게 쉽게 모르는 사람에게 한 마디씩 하는데, 그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은 너무 커서 쉽게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나의 정신과 감정의 방어 수준이 너무 약할 것이라 생각된다. 생각이 생각을 낳듯이 혼자서 흔들리는 감정과 정신을 잡아주기 위해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혼자서 갇혀 지내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와 나의 존재를 알고, 서로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의 고민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예전에는 내가 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나 편지 밖에 없었다. 편지는 한 방향성만 가지면서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 또는 답장은 해 줄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집에 하나 있는 전화는 그 시간에 네가 없으면 받지 않으니 너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어떤가, ‘언제든지’ 너에게 갈 수 있고 너와 이야기 할 수 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수가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자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잘 보살펴주자. ‘내가 너에게 갈까?’ ‘내가 너에게 갈게.’
요즘 사람들은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에 나의 한 줄을 보태는 것을 마치 냉장고에 있는 물을 꺼내 마시는 것처럼 쉽게 한다. 평소에 주위 사람들에게 말 한마디 잘 못 해도 쉽게 상처를 줄 수 있거나 일을 그르칠 수 있어 말을 삼가하는 사람들이 컴퓨터 앞에서는 무척 용감해지고 대담해지나보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말하는 것보다 글을 쓰는 기술이 더 뛰어나거나 혹은 말 한마디라도 가다듬은 뒤 어렵게 작성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너무 가볍고 무책임한 사람들일 것이다. 인터넷이라는 독특한 정보 공간에서는 자신을 숨기고 싶어하면서도 동시에 드러내고 싶어하는 욕구가 다양하게 충돌하여 사람들의 여러 가지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령 어떤 이야기에 쉽게 자기 생각을 던지고 많은 사람들이 공감을 해주면 더 칭찬받고 싶어서 자기를 더 부각시키는데, 반대로 악플이 많아지면 썼던 글을 삭제해버리거나 익명성 뒤로 숨어버리려고 한다. 게임에 익숙해서 쉽게 지웠다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처럼 인터넷에서 글을 쓰는 것이 너무나 가볍게 여겨지고 있다. 내가 처음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한창 휴대전화가 널리 보급되던 시기였는데, 그 때 예전의 선배들은 서로 어떻게 약속을 하고 만났을까 궁금했었다. 지금처럼 언제든지 연락을 할 수 있고, 쉽게 원하는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에 살아가는 우리들로서는 어릴 때 우리들의 삶이 참 답답하기도 하고 재미도 없을 것 같지만, 옛날 분들은 오히려 예전이 더 살기 좋았다고 한다. 벌거벗은 여인의 모습보다 가벼운 옷을 살짝 걸친 여인의 모습이 더욱 관능적으로 보이듯이, 너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시절이 더욱 애틋하게 느껴졌던 것은 아닐까.
신경숙 씨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휴대전화나 인터넷과 같은 디지털 시대의 산물들이 아직 영향을 거의 주지 못하는 격동의 시대 환경에 있는 네 남녀들의 사랑과 고독, 쓸쓸함 등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까웠던 사람을 잃어버리는 동안 그들은 너무 깊은 상실감에 빠져들고 만다. 그 사람을 잃는 동안 나는 무엇을 하였던 것인가, 내가 너를 잃어버리는 슬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20대, 젊은 청춘의 시절에는 다양한 일과 감정의 변화를 겪어가면서 나의 정신을 더욱 성숙시켜가며 정체성을 확립해 나가는데, 그 과정은 너무나 찬란한 젊은 날뿐 아니라 슬프고 아픈 날들도 많다.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을 겪은 정윤은 도시에 와서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편하게 주지 못해 친구 하나 없이 지내고 있다. 같은 학교의 미루와 명서는 어떤 숨겨진 이야기를 가진 아이들처럼 오묘한 분위기를 가지고 붙어 다닌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친하게 자란 단이도 정윤을 보기 위해 잠깐 올라온다. 정윤은 우연히 윤교수를 통해 미루와 명서와 가까워지는 계기가 생긴 이후 그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그들과의 감정 교류가 많아지게 된다. 둘의 친구가 생기고 곧 또 다른 친구들이 생기면서 정윤은 어머니를 잃었던 상실감을 극복하는 것 같지만 곧 미루와 명서에게 있었던 일을 알게 되면서 또 다른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미루는 미루의 언니가 항상 찾던 남자를 항상 찾고 있었다. 미루의 언니가 사라진 그 남자 때문에 분신자살을 하던 그 곳에 미루가 있었다. 미루는 서로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정윤에게 함께 지내자고 하여 정윤을 보기 위해 찾아온 단이와 함께 넷이 같이 지내며 서로의 아픈 곳을 보다듬으며 살아가게 된다. 입대한 단이는 군에서 의문의 총기 사고로 인해 죽고 만다. 단이가 윤에게 몇 번의 편지를 썼지만 윤은 한 번도 제대로 답장을 해주지 못하였다. 미루는 어머니에게 그토록 언니와 함께 살던 집을 팔지 말 것을 부탁했지만 결국 팔리고 난 이후로 상실감과 죄책감에 거식증과 대인 기피로 인해 결국 죽고 만다. 인간은 이토록 불완전한 존재인가. 어릴 적에 그토록 친하게 지내었던 친구였는데 네가 얼마나 고독해하는지 왜 몰랐던가, 네가 그렇게 괴로워하였는데 왜 그때 네 곁에 내가 없었는가. 남은 윤이와 명서는 과연 그 상실감들을 극복해내고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까지 가까웠던 사람을 잃었던 경험은 없어서 큰 상실감을 느껴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만큼 많은 공감을 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동안 등장 인물들의 상황에 깊게 빠져서 나의 가슴도 아파하였다. 감정적으로 많이 혼란스러워서 책을 읽다가 잠시 덮어두고 지금 내 감정과 생각의 정리가 필요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요즘 인터넷에서 그렇게 쉽게 모르는 사람에게 한 마디씩 하는데, 그로 인한 정신적인 충격은 너무 커서 쉽게 정신력이 강해야 한다는 말로 표현하기에는 나의 정신과 감정의 방어 수준이 너무 약할 것이라 생각된다. 생각이 생각을 낳듯이 혼자서 흔들리는 감정과 정신을 잡아주기 위해서 우리는 ‘친구’가 필요하다. 혼자서 갇혀 지내지 말고 내가 너와 함께 있으면서 너와 나의 존재를 알고, 서로 이야기 함으로써 우리의 고민과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예전에는 내가 너에게 연락을 하기 위해서는 전화나 편지 밖에 없었다. 편지는 한 방향성만 가지면서 수신 확인조차 되지 않기 때문에 나의 입장에서는 제대로 전달이 되었을지 또는 답장은 해 줄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집에 하나 있는 전화는 그 시간에 네가 없으면 받지 않으니 너에게 연락을 ‘할 수가 없다’. 지금은 어떤가, ‘언제든지’ 너에게 갈 수 있고 너와 이야기 할 수 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린다면 그것만으로도 기쁠 수가 있을 것 같다. 언제나 자기가 흔들리지 않도록 서로 잘 보살펴주자. ‘내가 너에게 갈까?’ ‘내가 너에게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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