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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항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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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5,845회 작성일 11-07-20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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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 우짖는 새"로 이름을 들었던 현기영 작가를 책으로 처음 만났다. "지상에 숟가락 하나"는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자신의 유년과 사춘기 적 기억을 더듬어 쓴 그의 자전적 소설이다. 독자에게 찻잔을 앞에 두고 들려주는듯한 어투와 양해를 구하고 샛길로 잠시 갔다가 다시 양해를 구하고 돌아오는 이야기 방식은 나로 하여금 그저 개인의 역사를 다소곳한 그의 목소리로 맞아들이는 느낌이 들게 했다. 해 묵은 기억이라는 것은 어느 정도 미화되기도, 과장되기도 또는 축소되기도 하며, 일상의 대화까지 소상히 건져 올릴 수는 없을 정도로 모호한 안개와도 같은 것일 게다. 이 자욱하고도 포근한 안개는 작가의 소설적 기법을 통해 조금이나마 구체화 되어 조용하고도 편안하게 다가온다.

이 소설은 현재에서 과거, 다시 현재로 돌아오는 시간적 구성을 하고 있다. 세상과 불화한 아버지의 육신을 손수 만지며 이제는 자신에게 돌아올 죽음이라는 손님을 차분히 맞으려는 황혼의 영혼이 작가이자 주인공이다. 정신적으로 늘 가까이 있지 못한 아버지라는 존재가 이제 빈껍데기만으로 남아, 그러나 자신의 영혼에 벗어버릴 수 없는 생의 그림자로 따라 붙은 채,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한다. 그 길에는 배고픔과 역사적 폭력이 짓누르고 치유될 수 없을 지도 모를 상처를 남기고 간 흔적, 제주의 고통스런 과거와 그때마다 굴하지 않고 버티는 민초들, 또한 이와는 어울리지 않게 제주의 비상한 신화와 신비로운 자연의 풍광과 그곳에서 발가벗고 놀았던 유년의 아이들 모습, 그리고 처음으로 여체를 보고 흥분했던 사춘기의 기억들이 시커멓고 구멍이 제각각 난 현무암처럼 얼기설기 얽혀 있다.

작가는 자신을 성장시킨 것들에 감사하며 그런 것들을 하나씩 되짚어 자신에게 묻고 있다. 아픈 역사에 대한 책임을, 변해버린 자연의 모습과 친구의 모습을, 문학과 독서의 영향, 그리고 변화무쌍한 성장의 길에서도 변하지 않고 내부에 존재하는 '인간 성장의 방정식'에 있는 '항수(恒數)'에 대해서 말이다. 이것을 작가는 '생성 최초의 것, 그 무엇으로도 변화시킬 수 없는 본질적인 것'이라 했다.

뜨거운 불씨 같기도 하고 안온한 모태 같기도 한, 나를 내보낸 품으로 돌아가려는 주인공이 제주도로 명명한 '자연'은 궁극적으로 돌아가야 할 고향으로 명명되고, 결코 만만하지 않은 삶을 살아온 작가는 성장소설 -그래서 중학생 때까지로 기억은 멈추어있다- 을 통해 유독 심했던 열병과 격정으로 아버지를 상처 입게 한 것을 슬퍼하고 있다. 책을 덮고 난 후, 불안정한 생의 고개를 넘어 담담하게 귀향을(혹은 죽음을) 떠올리는 주인공의 흰 머리카락은 내게 묘하게 아름다운 여운을 남겨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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