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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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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택용
댓글 0건 조회 7,046회 작성일 14-04-11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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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누구나 한번쯤 TV를 통해서 기아의 처참한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팔다리가 마치 거미와 같고 배만 볼록하게 나와서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아이들의 모습. 나는 그들을 보면서 막연하게 일시적으로 안타깝다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일은 곧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가에 대한 문제를 깊게 생각하려 들지 않고 채널을 변경하는 동시에 잊어버리고 또 다시 나는 풍족한 생활 속에서의 부족함을 탓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아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새롭게 하는 작은 출발점이 되기를 소망하며 장 지글러라는 사회학자는 기아의 진실에 대해 숨김없이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기아가 가장 심한 아프리카가 굶주림에 죽어가는 이유를 단지 그들이 가진 황폐한 토양, 부족한 근면성에 무게를 두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전혀 무관했다. 그들은 농업이 가능한 충분한 토양을 가지고 있고 누구보다 근면하고 성실한 민족이었다. 비단 아프리카 사람들뿐 아니라 굶주려 죽어가는 기아는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인구는 60억명이나 현재 120억의 인구를 거뜬히 먹여 살릴 식량이 생산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세계적으로 기아가 지속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신자유주의의 잔인한 폐해라고 말을 하고 있다. 경제성장만을 추구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신자유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가져온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는 시장원리와 자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서 공평한 사회가 실현됨을 추구한다. 하지만 합리성만 추구하는 이 생각은 불평등과 몇 억 인구의 절망만을 낳았다. 경제성장국들은 남은 식량들을 대량으로 폐기처분하거나 농산물의 생산을 제한하기도 한다. 선진국은 식량이 남아돌아 폐기처분하고 이에 반해 개발도상국은 굶어죽는 것은 다반사인 것이다. 기아의 현황을 살펴보면 아프리카,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지역 등에서 발생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식민지 과정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식민지 과정으로 인해 경제적 불평등을 야기 시킨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은 착취로 인한 가난을 낳고, 가난은 다시 분쟁을 낳고 분쟁은 다시 가난을 낳는 악순환 속에서 빈곤과 기아를 확대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더 나아가 신제국주의, 전쟁, 군사독재, 자본주의적인 착취, 부패, 민족감정 등이 더해져 더욱 그 나라들을 못살게 만들었고, 가장 약자인 아이와 여자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자본이 문제인 것이다. 자원의 착취로 생긴 부는 서구 열강의 발전을 도모하고 불균형적인 빈부 격차를 확대시켰다. 하지만 소위 서구 열강의 지도층들은 적극적인 지원은커녕 이를 무시하고 방관한다. 그들이 제창한 '자연도태설'이라는 이론이 그 예이다. 영국의 성직자 토머스 멜서스가 주장한 이 이론은 기아가 넘쳐나는 지구 인구수를 조절해 주고 있다고 말한다. 기아문제를 인구조절장치로서 단순화 시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이 이론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합리화에 불과하고 이기주의적인 인종차별의 관점을 갖고 있다. 참으로 엉터리가 아닐 수 없다.

과거 대학을 졸업하기까지 16년의 교육을 받아오면서 이 세상에 배고픔의 존재 이유에 대해 이처럼 자세하게 배웠던 기억이 없다. 단지 후원자들이 많아지면 언젠가는 해결되겠지 라고 낭만적으로 생각했다. 각종 매체에서 기아를 접할 때도 언젠가 부터는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접한 실태는 훨씬 충격적이었고 그 배후의 원인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단지 환경, 질병, 전쟁, 자연재해 등의 ‘경제적 기아’보다는 그 나라를 지배하고 있는 사회구조로 인해 빚어지는 필연적 결과인 ‘구조적 기아’ 문제가 훨씬 크다는 것이야 말로 핵심 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로 인해 필연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생각하니 더욱 아프게 느껴졌다. 하지만 저자의 소망처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느낄 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인 인간의 의식 변화에 희망을 건다면 이러한 반인도적 범죄가 언젠간 해결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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