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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오늘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가 - 인생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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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택용
댓글 0건 조회 6,021회 작성일 11-04-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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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나는 인생을 잘살고 있는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죽음에 임박하게 된다면 내 인생을 돌아볼 때 후회하진 않을까. 아직 생의 반도 살지 못했지만 이따금씩 나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인생에 관련된 걱정과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에 대한 정확한 해답은 아니지만 그 답에 대해 어느 정도 가까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책을 발견했다. 제목에서 이를 느낄 수 있게 하는 퀴블러 로스의 ‘인생수업’이라는 책이다. 호스피스 운동의 선구자이며 20세기를 대표하는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누구도 하지 못할 일을 해냈다. 그녀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그들이 말하는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살아 있는 우리에게 강의 형식으로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의 경험들을 통해서 인생에 있어 우리가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역설하고 싶어 하는 듯하다. 그 논리는 죽음을 앞둔 여러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려줌으로써 간접적으로 전해지는데, 이것이 독자로 하여금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좀 더 삶에 대해서 깊은 고찰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생수업의 강의실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머무는 이 세상이고, 과목은 사랑, 관계, 상실, 두려움, 인내, 받아들임, 용서, 행복 등이다. 그리고 이 수업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수업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이다. 너무 늦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살라,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하고, 별을 볼 기회를 준 바로 지금을 말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숨이 멎을 때까지를 흔히 삶, 혹은 인생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도 하고 가르치게도 하는 수업과도 같은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의 저자도 말했듯이 죽음을 앞둔 사람들은 위대한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다. 왜 일까?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 우리와는 달리 내일이라는 시간은 기약할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오로지 현재의 시간만이 그들에게는 의미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대해서 후회와 반성하는 것에 집착하거나 불확실한 미래의 시간에 대해서 걱정하거나 준비하기보다는 현재, 지금 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현재라는 뜻과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 Present 라는 단어가 곧, 현재라는 시간은 신이 우리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인 것 이라는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그 위대한 스승들은 죽음을 앞둔 지금, 우리에게 바로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인생의 모든 것들을 겸허히 받아들일 줄 알고, 해야 할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배우는 학생들이 자신들처럼 수업이 마치는 종이 울리려는 죽음에 임박해서 그 사실을 깨닫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말이다.
사실 나는 아직 이 책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이야기와 내가 처해있는 현실의 생활 사이에 높게 쌓여 있는 벽을 내가 만들어낸 자신에 대한 제한 때문인지 허물기가 싶지가 않다. 작가는 나 자신을 귀히 여기라 했는데 그러고 보면 나는 이 인생 수업의 스승에게서 좋은 점수를 받을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충분히 뭔가를 배우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현실의 제약 안에서 최대한의 행복을 찾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직 내 인생 수업의 남은 시간은 아직 상당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부터 지금 이 시간도 인생 수업에 충실 하려고 한다. 어차피 우리 인생에서는 과외나 학원 같은 것은 기대하기 힘들 테니까.
가끔씩은 억누르고 있던 충동에 몸을 맡기고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을 시도해 봐야겠다. 그것은 내가 진정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또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무엇을 할 지 스스로 물어볼 생각이다. 결과에 신경 쓰지 않고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내가 누구인지, 또는 적어도 내 자신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것이다. 내 자신의 대답은 스스로에 대한 부정적인 믿음의 증거일수도 또는 진정한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배워야 할 교훈일 수도 있다. 이 삶의 가장 큰 상실은 죽음이 아니다. 가장 큰 상실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우리 안에서 어떤 것이 죽어 버리는 것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들과 뛰어난 사상가인 저자가 공통적으로 말하는 바는 삶이 우리에게 사랑하고, 일하고, 놀이를 하고, 별들을 바라볼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충실하게 살라는 단순한 메시지가 단순하게만 들리지 않는 까닭은, 그것이 죽어가는 사람들의 진심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이리라. 말년에 이르러 온몸이 마비되며 죽음에 직면하는 경험을 한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70세가 되던 해에 쓴 자서전 『생의 수레바퀴』를 이렇게 시작한다.
“사람들은 나를 죽음의 여의사라고 부른다. 30년 이상 죽음에 대한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나를 죽음의 전문가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다. 내 연구의 가장 본질적이며 중요한 핵심은 삶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 있었다.”
항상 현재를 감사히 생각하고 헛되이 보내지 않아 나중에 내 자신의 수업시간이 끝을 내려 할 때 당시의 내 제자들에게 “매순간을 항상 소중히 여겼기 때문에 모든 배움을 제 때 얻을 수 있었다.”라고 하며 편안히 눈을 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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