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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으로는 친구를 읽고, 귀로는 친구를 얻는다’라는 말이 있다. 특히, 앞부분의 구절은 자신의 입 때문에 친구를 잃거나 상대방의 입 때문에 상대방을 멀리하게 되는, 누구나 한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중요한 내용임에도 정작 잘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특히, 말수가 많아질수록 그만큼 더 실수할 확률이 높아지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대인관계의 위험성 또한 높아지기 때문에 말수를 줄이는 것이 한 방법처럼 여겨지지만, 정작 사람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관점에서 볼 때 말수를 줄이는 것은 개인간의 사회생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따라서 말 그래도 ‘적당한’ 언어 사용만이 대인관계를 향상시켜줄 수 있다. 한편, 앞서의 말수와 대칭되는 개념으로, 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스킬 또한 커뮤니케이션의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말수를 늘이고 줄이는 것은 대개 개인의 사소한 노력으로 쉽게 조절 가능한 부분이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는 것은 말수 그 이상의 노력을 요한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시시각각 변하는 말에 대한 자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개인의 의지력으로 조절 해야 함과 동시에 상대방의 말을 집중해서 들어야 하는 능력 또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고지식함의 표본이 될 수 있는 ‘이토벤’이란 별명을 가진 남자는 현악기 전문 제조업체의 홍보팀 과장을 맡고 있다. 그의 별명이 ‘이토벤’이 된 이유는 베토벤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베토벤과 같이 뛰어난 음악이나 작곡에 뛰어난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베토벤과 같이 귀머거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베토벤과의 공통점에서 결정적인 차이점이 있는데, 베토벤은 실제로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린 경우이고, 홍보팀 과장 ‘이토벤’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은 가졌지만 이를 의식적으로, 무관심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처럼 남의 말을 중요치 않게 생각하던 그에게 어느날 이명현상과 어지럼증이 찾아오고 급기야 쓰러져 병원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진단되는 뇌의 악성 종양. 그에게는 허락된 시간은 채 몇 달이 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며칠의 방황 후 내린 남은 인생의 방향은 그 동안 신경 써 주지 못했던 하나뿐인 아들의 음악치료를 위한 바이올린을 직접 제작하려고 한다. 과거 외국으로 출장을 갔을 때 바이올린을 만드는 명인으로부터 어깨 넘어로 배운 지식이 있긴 하지만, 정작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회사의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자신이 찬성했던 강원도의 제조 공장 인원의 감축 및 해외 이전에 반대를 하던 제조 공장 직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자신의 뒤 돌아볼 수 없는 현재 상황 때문에 무작정 강원도로 떠나는 것을 결심한다. 이와 중에 별거 중인 아내와도 갈등이 나타나는데, 아내는 희망을 버리지 말고 치료를 하자고 설득하지만, 그는 치료를 해도 그리 오래 살 수 있지 않다고 생각한 나머지 자기 의지대로 강원도 행을 택한다. 자신이 뒤돌아 볼 수 없는 인생을 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내의 조언을 진심으로 고려하기 보다는 자신이 아들에게 뭔가를 해주고 싶은 욕구를 우선시 여기는 것을 볼 때 왜 그의 별명이 ‘이토벤’이 될 수 밖에 없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일생 일대의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그의 아들을 위한 바이올린 제작은 시작부터 순조롭지 못하다. 여전히 그는 남의 말을 귀 담에 듣는 데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동안 행동의 변화를 몸소 느끼게 된다. 바이올린에서 나오는 소리는 현의 길이 뿐만 아니라, 몸통부분의 모양(어떻게 깍았는가)과 재질 및 후처리에도 크게 영향을 받으며 심지어 제작자의 개인적인 성향조차 소리에 영향을 준다고 한다. 한때 비상대책위원회에서 자신의 의견에 반대발언을 했던 제조 담당 책임자의 말을 단순히 현실감각이 전혀 없는, 회사 경영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그러한 무책임한 직원으로만 여겼던 ‘이토벤’이 바이올린을 제작하게 되면서 차가운 제조 담당 책임자의 발언 조차 무심코 넘기지 않고 귀담아 듣는 모습으로 변화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왜 예전에는 자신이 그렇게 고지식하게 남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를 반성하는 모습까지 보여주는데, 사실상 이러한 감정을 느낄 때 즈음 바이올린은 완성하게 되고 자신은 병으로 죽게 된다.
앞의 이야기처럼 한번 정해진 자신의 커뮤니케이션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를 바꾸기 위해서는 성격 개조와 같은 큰 일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격 개조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점점 더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늦지 않은 젊은 나이 때에 한 번쯤 깊은 고찰을 해 볼 필요가 있다. 남의 말에 휘둘리는 줏대가 없어서도 안되겠지만, 그렇다고 남의 말을 타당한 이유 없이 부정하는 것 또한 저질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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