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남이 되어 남처럼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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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동일한 사람은 없다. 유전적으로 아주 비슷한(?) 일란성 쌍둥이 조차 그들이 자라나 성인이 되었을 때는 같은 생각과 같은 행동을 항상 하지 못한다. 즉, 사람들은 저마다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경험 및 능력에서 차이가 있고, 이 때문에 이 세상에는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 운동을 잘 하는 사람 등과 같이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중 특출 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많은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단지 그 사람의 능력 뿐 만 아니라, 그 사람이 위치한 환경 또한 중요한 부러움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지 못하는 것들을 가진 사람들을 동경하고 그 사람이 되어보는 것을 꿈꿔본 적이 한 번씩은 있을 것이다. 많은 영화나 소설 등에서 자주 소재로 등장하는 영혼 체인지는 바로 이러한 동경으로부터 시작된다. 하지만, 이성적으로 생각해 볼 때 단순히 영혼 체인지만으로는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이 가진 능력을 똑같이 발휘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영혼 체인지는 단순히 그 대상과 나의 몸만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소재를 다루는 작품들은 현실성이 많이 떨어진다. 그렇다면 보다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높은 경우는 어떤 경우일까? 그리고 그런 경우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는 현실성 낮은 영혼 체인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 나의 의식이 들어 갈 수 있는 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는 실제로 현실에서도 유명한 영화배우여서 좀 더 현실감 있는 상황을 설정했다. 다만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다분히 만화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층 건물의 7층도 8층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7 1/2 층에 있는 이상한 통로를 통해서이다. 이렇게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들어가더라도 15분의 시간적 제약이 있고, 그 시간이 지나면 강제적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영혼 체인지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법, 생각하는 법 등은 말코비치의 의식을 따르지만, 그의 의식 속에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감정, 보는 것, 듣는 것 과 같은 인식론적 현상들은 똑같이 공유하게 된다. 나아가 말코비치의 의식보다 강하게 되면 비로소 말코비치가 의도하지 않는 행동까지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들어가는 세 사람의 심경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 영화의 방법론적 접근방식에 더 초점이 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느낄 수 있는 자아 의식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가 거의 없다. 실제 세상에서 영혼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은 있지만 좀처럼 믿겨지지 않고, 또 역사적인 문헌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기록된바 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지어낸 하나의 소설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의 의식 속에 나의 의식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을 나 또한 인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결국 내가 그 사람이 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람의 의식 속에서 나의 의식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순적인 문제가 발생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마냥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직까지 미지의 세계로 알려져만 있는 뇌 속에 자아 의식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에서는 현실성 낮은 영혼 체인지가 아닌, 다른 사람의 의식 속에 나의 의식이 들어 갈 수 있는 좀 더 현실성이 있어 보이는 소재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영화배우 존 말코비치는 실제로 현실에서도 유명한 영화배우여서 좀 더 현실감 있는 상황을 설정했다. 다만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들어가는 통로는 다분히 만화적으로 설정되어 있다. 고층 건물의 7층도 8층도 아닌 그 사이에 있는 7 1/2 층에 있는 이상한 통로를 통해서이다. 이렇게 말코비치의 의식으로 들어가더라도 15분의 시간적 제약이 있고, 그 시간이 지나면 강제적으로 빠져 나오게 된다. 영혼 체인지 형식이 아니기 때문에 말코비치가 말코비치의 의식 속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법, 생각하는 법 등은 말코비치의 의식을 따르지만, 그의 의식 속에 같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가 느끼는 감정, 보는 것, 듣는 것 과 같은 인식론적 현상들은 똑같이 공유하게 된다. 나아가 말코비치의 의식보다 강하게 되면 비로소 말코비치가 의도하지 않는 행동까지 할 수 있다.
영화에서는 말코비치의 의식 속에 들어가는 세 사람의 심경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이 영화의 방법론적 접근방식에 더 초점이 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느낄 수 있는 자아 의식의 실체에 대해서는 학문적으로 알려져 있는 바가 거의 없다. 실제 세상에서 영혼이 바뀌었다는 뉴스를 접한 적은 있지만 좀처럼 믿겨지지 않고, 또 역사적인 문헌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기록된바 있다고는 하지만 그 또한 지어낸 하나의 소설일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해왔다. 누군가의 의식 속에 나의 의식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겪는 모든 일을 나 또한 인지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결국 내가 그 사람이 된 것과 같기 때문이다. 다만, 그 사람의 의식 속에서 나의 의식을 인지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모순적인 문제가 발생할 따름이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면서 마냥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라고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아직까지 미지의 세계로 알려져만 있는 뇌 속에 자아 의식을 담당하는 부분이 있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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