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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과연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가. - ‘3 idi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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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택용
댓글 0건 조회 5,906회 작성일 11-02-1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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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공학자의 길을 걷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한 나에게 친구 하나가 ‘3 idiots’라는 인도영화를 소개해주었다. 나 또한 몇 편의 인도 영화를 보았는데 대부분의 인도 영화에는 다소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는 어색하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는 뮤지컬과 같은 군무가 등장한다. 이러한 인도 영화를 맛살라 영화라고 하는데, 맛살라는 온갖 향신료를 집합해 놓았다는 뜻으로 인도 음식에 자주 쓰이는 향신료다. 이러한 이름이 붙은 이유는 영화 안에 뮤지컬적인 요소 뿐 만 아니라 영웅, 권선징악, 로맨스 따위의 것들이 총체적으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종류의 영화를 접하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인도식 영어와 유치한 느낌의 군무에 거부감이 들어 이후로 인도영화에 대한 관심이 점점 줄어갔고 그래서 친구에게 추천을 받았을 당시 사실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이 ‘3 idiots’라는 영화는 160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게 한다. 아마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 다름 아닌 나와 같은 공대생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 이다.

영화의 시작과 동시에 보여 지는 인도의 사회적 관념은 우리의 그것을 반영하여 옳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공계 위기라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아들은 엔지니어로 키우는 것이 집안을 일으키고 아이의 출세를 보장한다는 관념이 팽배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인도 최고 명문 공대를 배경으로 어릴 적부터 부잣집에서 자라고 기존의 관습을 부정하며 공학을 사랑하여 공대를 온 란초, 진정 자신이 원하는 사진사라는 꿈을 접고 집안의 강력한 권유에 못 이겨 공대에 온 파르한과 집안형편이 어려운 부담을 짊어지고 자신의 성공을 노력과 열정보다는 미신에 의지하려는 라주가 입학하면서 시작 된다. 실제로 많은 수의 학생은 파르한이나 라주와 같은 마음으로 공대에 온다. 자신의 적성과 흥미와는 관계없이 입시 성적에만 맞추어 공대에 입성하였으나 결국 본인의 그것과 크게 다름을 느끼며 방황을 하고 힘들어 하다가 결국 의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다른 여러 길을 찾는 친구를 많이 봤기 때문이다.
영화 속 공대의 비루라는 총장은 경쟁심이 매우 강하며 틀을 정하고 규칙적인 것을 좋아한다. 진정한 공학에 대한 교육보다는 ‘Life is race.'라는 말을 자주하며 치열한 경쟁과 창의성 보다는 점수를 위한 교육방식을 쫓는 인물로 그려진다. 영화 속에서 결국 이러한 총장의 틀에서 견디지 못해 미래가 유망한 조이라는 학생은 자살을 선택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을 계기로 란초는 이러한 교육방식을 비판하고자 총장에게 직접 찾아간다. 하지만 이에 화가 난 총장은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그를 데려가 직접 수업을 진행토록 한다. 여기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는 공학책의 중간을 펴고 바라보며 칠판에 두 단어를 쓴다. 그리고 모두에게 단어의 정의를 30초안에 찾고 1등과 꼴찌를 체크하겠다고 지시한다. 모두가 빠르게 책장을 넘겨가며 이 잡듯이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었다. 단지 그것은 공학용어가 아닌 친구들의 이름을 공학적인 느낌이 나도록 그럴듯하게 변형시킨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란초는 말한다. “제가 질문을 드렸을 때 호기심이 생겼나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에 흥분 됐나요? 모두들 미친 듯이 레이스를 펼쳤죠. 이런 방식이 무슨 소용 있나요? 만약 제일 먼저 풀었다고 해도 그게 지식을 늘게 해주나요? 아니요 스트레스만 주죠. 여기는 대학입니다.” 이 말을 들으며 얼마 전 KAIST에서 로봇영재로 장래가 밝았던 모군이 입학 1년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생각났다. 대부분의 학교가 진정한 공학을 배운다기보다는 학생으로 하여금 경쟁을 부추기고 학점이라는 숫자에 얽매이게 만들어 어느 한 가지에 긴 시간을 매달릴 수 없게 한다. 그럼으로써 특정한 분야에 특출한 재능을 가진 인재를 보석으로 만들기는커녕 죽음으로 까지 이르게 했으니 이는 국가적 손실로도 이어질 것이다. 이와 같은 스트레스를 받아 가진 재능마저 잃게 된 학생은 그 뿐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할 때 가장 즐겁고 일의 효율성이 높으며 열정을 쏟을 수 있게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교육과 사회적 현실이 그와 같지 못한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야기의 후반부로 가면서 란초는 자신의 친구인 파르한과 라주에게 자신의 적성에 잘 맞고 원하는 것을 해야 하며 그것에 사랑과 열정을 쏟는다면 성공은 따라온다는 것을 설득하고 두 친구를 옳은 길로 인도한다. 또한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진 교장과의 관계도 극적 화해를 이끌어내고 공학을 사랑하고 열정을 쏟은 결과 최우수 학생으로 졸업을 하게 된다. 게다가 부잣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란 줄 알았던 란초의 숨겨진 과거가 나오며 그가 보여주었던 대범함과 공학에 대한 열정은 더욱 란초라는 인물에 빠져들도록 한다.
이 영화는 비단 공학도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득 취업난이라 해서 모두가 각종 자격증과 학점 등과 같은 흔히 일컬어지는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여 진정한 학문에 대한 즐거움은 잊은 우리네 대학생들이 떠오른다. 나 또한 학부시절 학점에 얽매여 진정한 학문의 즐거움을 모두 느끼지 못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모두 이루지 못했다. 사실 이는 우리나라의 발전에 큰 기여를 했을지 모르지만 과거 오랜 시간동안 우리사회가 만들어낸 1등 의식과 점수매기기라는 물질적 성공에 대한 갈망과 경쟁의 분위기에 대한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자식에게도 이러한 같은 시련을 겪도록 해줄 생각을 하니 안타까움을 감출 수 없다.
영화로부터 얻을 수 있는 다른 한 가지 점은 진로에 대한 것이다. 단순히 모두가 선망하고 안정적인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 원하고 맞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다. 물론 현실에 대한 문제와도 견주어야하기 때문에 비록 극 중 주인공인 란초와 같이 모두가 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자신의 적성을 깨닫고 현실적 조건이 공존하는 범위 내에서 선택을 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 뒷받침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행복과 사회의 발전을 꾀하는 일이 아닐까.
비록 글로 모두를 적지는 못했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 뿐 아니라 다른 등장인물들의 여러 요소들은 더욱 영화로 몰입하게 하고 많은 것들을 느끼게 해준다. 비록 ideal case이긴 하지만 이상을 쫓고 그에 따른 매력, 의리가 강하게 그려지는 란초는 우리를 충분히 매료시킬 만하고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줄 뿐 아니라 진정 나 자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하고 있으며 그것에 사랑과 열정을 쏟고 있는가라는 반성을 이끌어주는 인물이다. ‘알 이즈 웰’(All is well). 영화 속 란초가 주문을 외우듯 자주 말하는 이 말처럼 자신에게 어울리고 간절히 원하는 것에 사랑을 쏟는다면 성공은 당연히 뒤따라서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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