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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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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5,998회 작성일 11-01-17 17:43

본문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고등학교 시절.
가끔 라디오에서 들려주는 짤막한 글을 들으면서 공감이 되고, 그 공감을 통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 적이 많았다. 그러면서 항상 들었던 생각은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어느정도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구나' 였다.

그런 마음의 정화조와 같은 글들을 모아 강세형이라는 작가가 책을 냈다. '나는 아직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 강세형 작가는 원래 라디오 작가이다. 김동률, 테이의 '뮤직아일랜드', 이적의 '텐텐클럽', 스윗소로우의 '텐텐클럽'에서 쓴 자신의 원고들을 모아 만든 라디오 에세이가 바로 이 책이다. 그녀는 당시 방송되었던 코너의 제목인 '청춘, 그길에 서서', '기억, 한 컷', '어떤하루'를 소제목으로 썼다.

그녀의 책을 처음 펴면 자신이 왜 이런 작가가 되었는지가 나와 있다. 무엇이든 보고 듣는 걸 좋아하는 그녀는 그저 글을 쓰기에는 돈을 벌어야 했고, 그래서 아르바이트로 방송작가를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자신이 작가라 불리는 것을 즐긴다고 하며 다음 말을 전한다. "라디오 에세이는 소설과 에세이, 그 사이 어딘가쯤에 놓인 글 같다. 내가 쓰고 있지만, 나를 드러내진 않는다. 마치 이 글을 읽고 있는 DJ 의 이야기인 듯 나는 그 뒤로 숨는다. 그래서 재밌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 제목과 이 부분을 보면서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독자인 나로 하여금 큰 기대치를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나는 글 하나하나를 읽어가며 그 기대치보다 훨씬 큰 만족감 혹은 편안함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강세형 작가의 말이 이해가가기 시작했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가 아닌 이야기'. 강세형 작가는 이 글에서 대부분 청춘이라는 테마아래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지극히 일상적이어서 독자들은 아마 이 글을 보면서 어렵지 않게 공감을 가지게 된다. 그리고 끝에 항상 늘어놓은 자신의 생각 한 마디, 한 마디... 그 한 마디로 사람들의 가슴을 울컥하게 만들고 여러가지 생각에 잠기게 한다.

나는 항상 이런 글들을 듣고 보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이 글들을 모아 놓은 이 책은 나에게 그야말로 마음을 정화시켜 주는 하나의 매개체와 같았다. 나는 이 번 독후감을 쓰면서 모두 좋은 글이었지만 나에게 가장 감명깊었던 4가지 글들을 같이 전하려 한다. 독후감에 책의 내용을 쓰는 것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에 최고의 책을 만났기 때문에 이 내용을 공유하고 싶은 욕구가 강해졌다. 다소 이 글이 길지라도 이 내용들을 읽으면서 편안한 감상이 되기를 바란다.


[나는 지금 열일곱의 세상밖에 볼 수 없으니까]

"세상은 참 살기 힘든 거죠?"
열일곱 소녀가 어른에게 물었다.

"열일곱 나이로 그런 말 말아라."
어른이 대답했다.

"열일곱도 세상은 살기 힘들어요."
소녀가 말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독백.
'나는 지금 열일곱의 세상밖엔 볼 수 없으니까...'

내가 참 좋아하는 만화의 한 장면이다.

이 만화를 처음 읽은 건
아마도 내 나이 열일곱 그 즘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참 좋았다.
'나는 지금 열일곱의 세상밖에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이 왠지 멋져 보였다.

조금 더 세월이 흘러 이 만화를 다시 봤을 때
나는 또 한 번 그 말에 반해버렸다.

남들 보기엔 별거 아닌 고민일지라도
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어쨌든 내 눈에 보이는 내 세상뿐.

그러니 내 세상에선 내가 가장 힘들다는 것을,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그 만화가 이해해주는 것만 같았다.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별거 아닌 일에도 많이 고민하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힘들어하던
이십 대, 조금은 치기 어렸던 그 시절에.

그리고 얼마 전 다시 보게 된 그 만화.
나는 그 말에 또 한 번 위로 받았다.

무심코 돌아보니 어느덧 삼십 대,
갑자기 내가 너무 늙어버린 느낌.
이제는 더 이상 어리다고 말할 수 없는 내 나이가
짐 처럼 느껴지는 기분.

그때였다.
'나는 지금 열일곱의, 아니 서른의 세상밖엔 볼 수 없으니까.'
그 말이 나를 다독여주는 것만 같았다.

너의 세상에선
너의 시선으로밖에 볼 수 없는 거라고.
그러니 서른,
너의 시선으로 많은 나이라면 많은 것이고
어린 나이라면 어린 것이라고.
그러니 다시 한 번 네 멋대로 살아보라고.

어차피 너는 너일 뿐이니까.
그것이 열일곱의 너이든. 이십 대의 너이든. 서른의 너이든.

--> 나는 이 말에 항상 공감한다. 우리나라는 20살을 기점으로 보통 성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나는 이 기준으로 보면 올해 28살, 성인으로 8년째 살아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과연 어른일까? 부모님께 나는 아직 그저 어린 아이에 불과하고, 나보다 단 한 두살 많은 친한 형들은 나를 평생 어린 동생으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싫지는 않았다. 강세형 작가의 말대로 나는 아직 28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어진 환경에 따라서 어른이 되었다가 아이가 되었다가 하는 것 뿐이니까...


[쉼표]

난 이럴 떄 참 억울하다.
'내일은 기필코 늦잠이다!'
굳게 마음먹고 잠자리에 들었건만
다음날 아침, 습관처럼 꽤 이른 시간에 눈이 번쩍 떠질 때.

더 잘 거야. 더 잘 거야. 더 잘 거야.
억울해. 억울해. 억울해!

이리 뒹굴 저리 뒹굴.
아무리 자세를 바꿔가며 다시 잠을 청해봐도
피곤하긴 한데
정신 또한 몽롱하긴 한데
가수면 상태에서 절대 깊은 수면으로 들어가진 못할 때,
정말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다.

할 일이 없는건 아니다.
아니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빠듯한 일상을 생각하면
이것저것 미리미리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은 시점.
하지만 늦잠까지 빼앗겨버린 억울함에
나는 이 하루를
온전히 나만을 위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밀린 드라마부터 몇 편 몰아보고 나니 꼬르륵.
부산스럽게 찌개까지 끓여 한 끼를 챙기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뒹굴뒹굴 아이스크림 입에 물고 만화책 보기.
꾸벅꾸벅 졸다 깨다를 반복하며 보내는 나른한 오후.

...

다시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침대에 늘어져 책을 본다,
그때쯤 밀려오는 졸음.
그 졸음과 함께 찾아오는 이런저런 생각들.

아,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아, 내일 할 일 되게 많은데.
아, 오늘 좀 미리 해뒀어야 하는데.

하지만 별로 한 일도 없이 지나가버린 오늘 하루를
먹다 자다 놀다 그렇게 흘리듯 보내버린 나의 오늘 하루를
후회할 마음은 없다.

지나친 게으름이 만들어낸 자기 합리화라 불러도 좋다,
나를 둘러싼 모든 걱정, 고민들을 잠시 뒤로 밀어둔 채
딱 하루쯤,
내 일상에 쉼표 하나 찍어주는 게 그리 큰 잘못은 아닐테니까.

--> 빠른 하루하루가 지나가면 1주일, 그 1주일이 쌓여 1년, 그 1년이 쌓여서 수년의 세월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리고 우리는 매일매일을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간다. 그런 나날들 속에 자신에게 하루 정도 휴가를 주는 것은 절대 나쁜 일이 아닐 것이다.


[NG]

...
사진을 찍으면 바로 확인이 가능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로 삭제가 가능하고.
디지털 카메라의 최대 장점.

하지만 그 장점 때문에
더 방심하게 되는 사람들이 꼭 있다.
하나 둘 셋, 하는 순간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깜박.

내 친구가 꼭 그런다. 매번 그런다.
"에이 너 또 눈 감았다! 다시 찍을게. 하나 둘 셋!"

그런 적이 정말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였다.
친구의 눈 감은 사진을 지우지 않고 그냥 블로그에 올렸다.
그것도 눈을 뜬 사진과 나란히 붙여 'NG컷과 OK컷' 이란 제목으로.

그런데 며칠 후
친구가 사진 아래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 그 댓글에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혼잣말.

'정말, 그러게....'

친구의 댓글은 바로 이거였다.

'NG! 이렇게 외친 다음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이게 우리 인생에도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 인생에는 NG가 없다. 나는 항상 후회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지만 문득문득 드는 이 생각때문에 바보같은 시간을 보낼 때가 많다. "아, 고등학교 시절로만 돌아갔으면, 혹은 단 1년 전으로만 돌아갔으면...". 그러나 그런 시간은 절대 돌아오지 않는다. 시계바늘은 오른쪽으로 쉼없이 돌아가니까...


[눈이 좀 천천히 녹았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는 눈을 참 좋아하신다.

어린 시절 늦잠을 자도 되는 겨울방학.
아침 먹을 시간도 안 됐는데 엄마가 날 깨우는 건
밤새 눈이 왔다는, 혹은 지금 눈이 오고 있다는 뜻이었다.

"밖에 눈 온다. 얼른 일어나."

그땐 나도 눈이 참 좋았다.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 엄마를 따라 쪼르르 창문가로 달려가
한참을 그렇게 엄마랑 창가에 앉아 눈 구경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머리가 조금 굵어진 이후부턴 난 눈이 좋지 않았다.
차 막히는 것도 싫고
질척질척해진 땅을 조심조심 걸어야 하는 것도 귀찮고
또 눈이 뭐 별거라고
꼭두새벽부터 날 깨우는 엄마가 좀 짜증스럽기도 했다.

...

하지만 올해는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을 정도.
백 년만의 폭설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사방이 그냥 눈,눈,눈!

걱정그런 맘에 집에 전화를 넣었는데
어딜 가신 건지 도통 전화를 받지 않는 엄마.
늦은 저녁에나 간신히 통화가 돼
이렇게 사방이 눈인데 위험하게 어딜 갔다 온 거냐고 조금 화를 냈는데
울 엄마 천연덕스러운 말투로,

"눈 구경 하고 왔지."

그냥 집에 있지!
날도 춥고 그러다 넘어져 어디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잔소리를 시작한 내게 엄마는 말했다.

"엄마가 백 살까지 살아도
앞으로 눈 볼 날이 채 50번도 안 남은 건데
아까워서 어떻게 집에만 있니."

갑자기 가슴 한쪽이 욱신.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도 우린 가끔 잊고 산다.
우리가 백 살까지 살아도
우리에게 남은 겨울은 고작 몇 십 번도 안 된다는 사실.
그리고 엄마에겐 그 남은 겨울이 더 적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눈이 좀 천천히 녹았으면 좋겠다.
이번 주말엔 집에 잠깐 다녀와야 할 것 같으니까.
엄마와 나란히 걸으며 눈 구경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나에게 그리 많이 남아 있는 것 같진 않으니까.

--> 오늘이라도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야겠다. 어느덧 우리 어머니 아버지도 60대에 가까워지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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