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죽음에 대한 자기결정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신윤상
댓글 0건 조회 5,919회 작성일 11-01-22 01:50

본문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민주사회의 가장 큰 가치를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자유’일 것이다. 이 자유의 의미는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형태의 어떠한 구속을 받지 않을 가치를 말한다. 이러한 자유의 가치는 대개 영,유아 및 청소년기에는 형성된 가치관이 불완전하기에 성인이 된 시점에서부터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물론 이 자유가 무책임을 포함하는 자유를 뜻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러한 자유로부터 자기 자신에 대한 결정권이 주어지고, 무슨 일을 하던지, 얼마나 하던지 와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보장 되어진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유는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개인의 죽음에 대한 자유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해진다. 왜냐하면, 죽음이라는 사건은 비가역적인 것이어서 죽음을 선택한 당시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었다거나 잘못 판단했을 경우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는 법적으로 이를 엄격히 규제하고 있다. (자기 결정에 의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상황을 유도하거나 방조하게 되면 처벌될 수 있다.) 그런데 만약 죽음을 선택한 당시의 의사결정이 잘못되지 않았거나 잘못 판단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개인의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부여해야 할까?

위와 같은 부분들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치는 이슈가 바로 안락사이다.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이 안락사의 허용 여부를 놓고 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안락사의 경우 환자 본인의 결정이 잘못되지 않고 또 잘못 판단하지 않을 경우에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져 있다. 하지만 환자 개인의 의견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늘날의 법은 그렇게 널리 그 의견을 받아주지 않는다. 대부분의 안락사를 희망하는 환자들의 경우 처한 상황이 절망적이고 또 견디기 힘든 고통을 겪고 있다. 병원에서 의사들이 해 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는 생명 연장 및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약물을 투여하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환자들을 고통 속에서 자연사 할 때까지 인위적으로 살려줘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고통 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인가? 특히 환자 본인과 가족들이 고통 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간절히 원할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근본적인 배경 및 사회 갈등을 그린 영화가 작년 말 등장했다. 이 영화는 1990년대 안락사를 시행하여 큰 물의를 일으켰던 잭 케보키언 박사의 실화를 담고 있다. 케보키언 박사는 고통 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고 있는 환자들이 병원에서 해주지 않는 조용한 죽음을 환자 및 환자 가족들의 100% 동의 및 확인, 재확인을 거쳐 안락사를 시켜준다. 환자에게 의사의 의견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본인이 절실하게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이를 실행하고, 케보키언 박사 말에서와 같이 의뢰건의 95%이상은 거절할 정도로 정말로 안락사가 필요한 사람들에게만 실시해준다. 하지만, 사회구조를 지탱하는 입장에서는 이러한 자살 방조 행위는 얼마든지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고 하지만, 번번히 재판에서 지게 되고 결국 영화 결말에 다다를 때 까지도 케보키언 박사의 논리와 신념은 사회로부터 인정받는다.(물론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 케보키언 박사의 적극적인 의료행위(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영화내에서는 대부분 종교 윤리에 기반한 사람들로 나온다. 즉,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생,사를 선택할 수 있기에 케보키언 박사의 의료행위는 지탄받아 마땅하다고 그래서 중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케보키언 박사를 구속하려는 검사 또한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종교관을 피력하면서 안락사의 부당함을 얘기하는 것을 보았을 때 결국 안락사의 문제는 종교의 논리와 충돌하기에 사회적인 이슈가 되는 것으로 판단되어진다. 그래서 케보키언 박사는 이를 시정하고자 대법원까지 재판을 이어가게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안락사를 신청한 환자 가족들의 증언 기회가 거부되면서 유죄를 받게 되고 실제로 약 8년간 감옥에 수감된다. (이 재판 과정 부분은 다분히 법적인 부분이어서 나로써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특히, 마치 변호사의 능력이 부족해서 케보키언 박사가 감옥에 가게 되는 듯한 상황으로 묘사되는 점은 결국 감독 자신은 안락사를 지지하는 입장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결론적으로 케보키언 박사의 적극적인 의료행위는 금지되고 따라서 많은 수의 안락사를 원하는 환자들은 어쩔수 없이 계속 고통속에서 살아가던지 혹은 다른 방법을 찾게 될 수 밖에 없어졌다. 환자 입장에서 보면 결국 해결책은 제시해주지 못한 채 마치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는 식의 결과가 되어버린 것이다. 악용의 소지를 걱정한 나머지 허용하지 않는 재판 결과가 실제로 있었다는 점에서, 그래서 케보키언 박사의 행위가 결론적으로 위법하다, 안락사는 허용되어서는 안된다 는 식의 결론이 나버린 영화 뒷부분에서는 허무한 느낌 마저 들게 된다. 좀더 사회가 이러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를 해야 된다고 생각되고 정작 자기 자신이 안락사를 원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현재를 고통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환자의 행복추구권 및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