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마더’에 비친 빗나간 자식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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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더’에 비친 빗나간 자식 사랑
부모와 자식간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끈이 있다고 하여 이를 천륜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천륜은 부모든 자식이든 선택 불가능한 것으로 그래서 더욱더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짧은 연륜이나 경험 때문에 이러한 천륜의 가치를 알기 쉽지 않으나, 부모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에 대해 무한정한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부모들의 자식들은 소중하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가지고 또 사랑을 주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사회에서는 대개 한 가정에 적어도 셋 이상의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되 편중되지 않은 사랑을 주게 되고 따라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 및 사랑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지만, 현대사회와 같은 핵가족화 사회에서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한, 두 명의 자식들에 집중되게 되고 그에 따른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영화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의 빗나간 자식 사랑처럼.
마더로 등장하는 ‘윤도준’의 어머니의 삶의 유일한 낙은 윤도준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자신의 가계인 약재상에서 약재를 칼로 다듬을 때도 그녀의 시선은 아들 윤도준에 맞춰줘 있고, 자신의 손이 그 칼에 베일 때 조차 아픔을 느끼기는커녕 자식에게 일어난 일을 우선시 하는 모습에서 마더의 전부는 아들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는 비단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처럼 자식이 하나 또는 둘 인 집안에서는 언제나 부모님들의 시선은 자식들을 향해 있다.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 항상 주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청소년, 성인이 된 시점에서조차 부모님들의 시선은 자식을 향해 있다. 아마도 어렸을 때 가졌던 자식에 대한 관심의 중독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관심이 지나치게 될 경우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주로 반항)을 얻게 된다. 사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사소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고 또 어느 정도 자유를 누르고픈 욕망이 있기 마련이어서 부모와 자식간의 이러한 모순점은 늘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아들 ‘윤도준’이 살인범으로 지목되는 순간부터 영화 속 마더는 더 이상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오직 자식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오직 자기자식이 살인을 했을 리 없다는 신념 하나로 마더의 수사(?)는 진행된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정말 (우발적이어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이후에도 이제는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길 대신 살인 사건의 목격자를 마더가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범하게 된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목격자를 죽이는 짓까지 한 마더의 덕분으로 아들 ‘윤도준’은 풀려나지만 이 모든 사건의 진행이 아들 윤도준이 마더를 시켜 목격자를 없애 자신이 감옥 밖으로 나가는 수단임이 슬며시 제시된다. 왜냐하면 과거에 마더는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아들과 농약을 마시고 죽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데, 아들은 그때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복수를 한 것이다. 즉,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이 부모 자식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서로 상처가 되는 행동을 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받는 슬픔은 적지 않았다. 영화의 끝은 잔인하게도 아무도 모르는 마더의 살인 행각을 아들이 일깨워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그 간의 두 사람간의 갈등은 해소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도한 사랑과 관심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내가 부모가 되더라도 반드시 염두해두고 싶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보이지 않는 영혼의 끈이 있다고 하여 이를 천륜이라 일컫는다. 그리고 이 천륜은 부모든 자식이든 선택 불가능한 것으로 그래서 더욱더 그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자식의 입장에서는 짧은 연륜이나 경험 때문에 이러한 천륜의 가치를 알기 쉽지 않으나, 부모의 입장은 완전히 다르다. 세상의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들의 자식들에 대해 무한정한 사랑을 베푸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만큼 부모들의 자식들은 소중하기 때문에 더 애착을 가지고 또 사랑을 주게 된다. 하지만 과거의 사회에서는 대개 한 가정에 적어도 셋 이상의 자식들이 있기 때문에 사랑을 주되 편중되지 않은 사랑을 주게 되고 따라서 자식들에 대한 관심 및 사랑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였지만, 현대사회와 같은 핵가족화 사회에서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한, 두 명의 자식들에 집중되게 되고 그에 따른 많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영화 ‘마더’에 나오는 어머니의 빗나간 자식 사랑처럼.
마더로 등장하는 ‘윤도준’의 어머니의 삶의 유일한 낙은 윤도준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자신의 가계인 약재상에서 약재를 칼로 다듬을 때도 그녀의 시선은 아들 윤도준에 맞춰줘 있고, 자신의 손이 그 칼에 베일 때 조차 아픔을 느끼기는커녕 자식에게 일어난 일을 우선시 하는 모습에서 마더의 전부는 아들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는 비단 영화 속에서뿐만 아니다. 현대 사회에서처럼 자식이 하나 또는 둘 인 집안에서는 언제나 부모님들의 시선은 자식들을 향해 있다.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는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 항상 주시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시간이 흘러 청소년, 성인이 된 시점에서조차 부모님들의 시선은 자식을 향해 있다. 아마도 어렸을 때 가졌던 자식에 대한 관심의 중독이라고 표현해도 무방할 정도다. 이러한 관심이 지나치게 될 경우 자칫 잘못하다가는 자식들로부터 예상치 못한 반응(주로 반항)을 얻게 된다. 사실 자식 입장에서는 부모님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사소한 관심을 받고 싶지 않고 또 어느 정도 자유를 누르고픈 욕망이 있기 마련이어서 부모와 자식간의 이러한 모순점은 늘 갈등의 원인이 되곤 한다.
아들 ‘윤도준’이 살인범으로 지목되는 순간부터 영화 속 마더는 더 이상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오직 자식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오직 자기자식이 살인을 했을 리 없다는 신념 하나로 마더의 수사(?)는 진행된다. 그리고 마침내 아들이 정말 (우발적이어도) 살인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난 이후에도 이제는 아들의 무죄를 증명하는 길 대신 살인 사건의 목격자를 마더가 죽이는 일까지 서슴지 않게 범하게 된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목격자를 죽이는 짓까지 한 마더의 덕분으로 아들 ‘윤도준’은 풀려나지만 이 모든 사건의 진행이 아들 윤도준이 마더를 시켜 목격자를 없애 자신이 감옥 밖으로 나가는 수단임이 슬며시 제시된다. 왜냐하면 과거에 마더는 삶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아들과 농약을 마시고 죽으려고 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는데, 아들은 그때 엄마가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고 그래서 이렇게 복수를 한 것이다. 즉, 자식에 대한 잘못된 사랑이 부모 자식간의 갈등을 유발하고 서로 상처가 되는 행동을 하게끔 한다는 점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 받는 슬픔은 적지 않았다. 영화의 끝은 잔인하게도 아무도 모르는 마더의 살인 행각을 아들이 일깨워주는 것으로 끝나는 것으로 보아 그 간의 두 사람간의 갈등은 해소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과도한 사랑과 관심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향후 내가 부모가 되더라도 반드시 염두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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