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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외톨이 김씨 표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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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윤상
댓글 0건 조회 6,433회 작성일 11-03-16 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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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듯 같은 두 외톨이 김씨 표류기

사회와 인간은 종속적인 관계여서 개개인의 인간들로 이루어진 것이 사회이다. 그런데 개개인의 인간들은 다행스럽게도 획일화되지 않아서 그들 사이의 분쟁이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서로 도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가 모든 개개인을 포용해주진 못한다. 흔히 말하는 사회적 약자 계층은 사회 구성원이긴 하지만, 사회가 돌봐줄 수 없는 혹은 오히려 사회가 그들을 밀어낸 사람들이다. 일본에서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것 중에 ‘하키코모리’라고 하여 은둔형 외톨이를 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깥 사회생활과 담을 쌓을 채 좁은 방 안에서만 생활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이들은 앞서 언급했던 사회가 미처 돌봐줄 수 없었던 사람들 이거나 오히려 그들을 그들의 방으로 밀어낸 사람들이다. 이러한 사회적 약자에 관해 주변의 시선은 늘 부정적이기만 하다. 하지만, 영화 ‘김씨 표류기’에 나오는 두 외톨이를 접하게 된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다.

사회로부터 밀려나 섬에 갇힌 남자 김씨 와 자신으로부터 사회를 밀어내고 방에 틀어박혀 사는 여자 김씨는 전형적인 두 가지 모습의 외톨이이다. 남자 김씨는 빛 독촉에 시달려 원금의 3배가 되어버린 이자를 값지 못하여 사회로부터 떠밀려 밤섬으로 오게 된 반면 여자 김씨는 ‘하키코모리’와 유사하게 자신으로부터 사회를 밀어낸 케이스이다. 이들은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는 싶어하지만, 그러기엔 너무 두려운 곳임을 알기에 차마 실천에 옮기질 못한다. 어떻게 보면 남자 김씨가 속해있는 세상은 여자 김씨가 바라보는 바깥 세상이고, 반대로 여자 김씨가 속해 있는 세상은 남자 김씨가 동경하는 세상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공통점이 전혀 없을 듯한 두 김씨 사이에는 영화 전반에 걸쳐 아주 사소한 것들의 연결고리가 이곳 저곳에서 발견되고 또 그것들이 가지는 의미를 한 번쯤은 곱씹을 만큼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예를 들어, 여자 김씨에게 있어서 옥수수는 그저 아침으로 먹던 통조림의 ‘죽은’ 재료이지만, 남자 김씨에게 있어서 옥수수는 ‘살아있는’ 것으로 그것을 심어서 키우는 존재의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남자 김씨를 주시하고 있던 여자 김씨는 자신이 먹고 방안에 버린 빈 옥수수 캔에 옥수수 씨앗을 뿌리고 그것을 키우게 된다. 남자 김씨를 만나기 전에 ‘죽은’ 의미의 옥수수가 남자 김씨를 통해 ‘살아나는’ 의미의 옥수수가 된 것이다. 이처럼 두 외톨이들 사이의 소통은 영화 전반에 걸쳐서 아주 서서히 나타나게 되고 그 결과 서로간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세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면서 동일한 사회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이처럼 세상에는 나와 다른 처지에 놓여있는 표류하는 김씨가 분명히 있다. 아니, 내 주위에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들을 그냥 모른 채 하거나, 관심을 가지고(영화에서는 여자 김씨가 남자 김씨를 주시하는 것처럼) 지켜보지 않는다면 결국 표류하던 김씨는 영영 나와 같은 사회에 들어 올 수 없게 된다. 자신의 여건이 허락한다면, 주변의 표류하는 김씨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주고 또 그들과 함께 사회 테두리 안에서 생활 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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