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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를 읽고
‘한비야’란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내가 대학교 때이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글을 접했을 때였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한비야란 사람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국제 홍보회사에서 근무하며 안정된 삶을 살다가,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표를 내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인 세계 일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꿈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 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존경하는 한비야씨가 구호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상당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불쌍한 난민들이나 힘들게 살고 있는 후진국들의 사람들을 생생히 담은 책을 봐서 그런 것일까? 작년에 우연히 접한 한비야씨의 구호활동을 담은 이 책을 봤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나에겐 딸이 셋 있습니다」라는 큰 제목 속에 「‘우리’의 범위를 조금만 넓힌다면」이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던 수혜국이었다가 다른 나라에 물자를 지원하는 원조국으로 바뀐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외에 원조한 금액은 22억 달러로 이는 우리가 어려울 때 원조 받았던 130억 달러의 20퍼센트도 안 되는 금액이다. 아직까지 갚아야 할 ‘은혜의 빚’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은 그리 풍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2009년 기준으로 우리는 국민소득의 0.06퍼센트, 즉 1인당 한 달에 4백원 정도를 원조금으로 내고 있다.
긴급구호를 하다보면 가장 안타깝고 곤란한 상황을 긴급구호 요원 아무한테나 물어봐도 대답은 같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사정의 마을들인데 한정된 자금과 턱없이 부족한 물자 때문에 어떤 마을은 긴급구호가 도착해서 살고, 바로 옆 마을은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것이다. 물질보다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고들 말하지만 여기선 자금이나 물자가 없어서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조금씩만이라도 그들을 도와준다면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한비야 씨는 한 달에 6만원이 월드비전이란 이름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2만원씩 3명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맺어진 아이의 부모는 2만원을 받고 보건소에 가서 살아났다고 한다. 또한 그 뒤로도 학교도 다니고 집안의 사정도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두 번째 아이는 담보노동을 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풀려나게 해주고 아버지의 릭샤를 마련해 주고 아이의 학교까지 다니게 해주는데 필요한 돈이 단돈 2만원이다. 세 번째 아이도 마찬가지로 다리가 좋지 않았던 아이였는데 단돈 2만원으로 바르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만원은 우리에게는 단돈 2만원이지만 이들에게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다. 몇 달 전 부터는 3만원으로 올라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지는 않은 금액인데, 어떤 이들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돈인 것이다. 그 돈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 자신들이 일어날 수 있는 밑바탕을 누군가가 마련해 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느끼고 삶의 의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 안 먹고 조금씩 양보해서 만든 돈이 한 가족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보람된 일이 아닐까?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 것 즉, 욕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에 자신의 꿈을 버리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추구하는 사람들만 가득한 현대사회, 욕심 때문에 무한히 경쟁하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더 심화되어 국가끼리의 욕심으로부터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또 조금씩만 아껴 쓰고 양보해서 만들 수 있는 돈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이라는 것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욕심이라는 것만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유 없이 죽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 이상 마음의 상처 속에서 고통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한비야 씨가 베푼 몇 만원으로 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욕심을 조금은 버리고 소외된 곳에 눈길을 돌린다면 모두가 삶의 의욕을 되찾고 희망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한비야’란 사람을 처음 접한 것은 내가 대학교 때이다.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이라는 글을 접했을 때였는데, 그때의 나에게는 한비야란 사람은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국제 홍보회사에서 근무하며 안정된 삶을 살다가, 어렸을 적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표를 내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인 세계 일주를 하는 모습을 보고 말이다. 아마 그때부터 나의 꿈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을 갖는 것 보다는,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으로 바뀐 것 같다.
그렇게 내가 존경하는 한비야씨가 구호활동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상당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일주를 하면서 불쌍한 난민들이나 힘들게 살고 있는 후진국들의 사람들을 생생히 담은 책을 봐서 그런 것일까? 작년에 우연히 접한 한비야씨의 구호활동을 담은 이 책을 봤을 때 나는 망설임 없이 집어들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가장 마음에 와 닿는 부분은 「나에겐 딸이 셋 있습니다」라는 큰 제목 속에 「‘우리’의 범위를 조금만 넓힌다면」이라는 소제목의 글이다. 이 글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의 지원을 받던 수혜국이었다가 다른 나라에 물자를 지원하는 원조국으로 바뀐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해외에 원조한 금액은 22억 달러로 이는 우리가 어려울 때 원조 받았던 130억 달러의 20퍼센트도 안 되는 금액이다. 아직까지 갚아야 할 ‘은혜의 빚’이 이렇게 많은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우리의 마음은 그리 풍족하지 못하기 때문인지 2009년 기준으로 우리는 국민소득의 0.06퍼센트, 즉 1인당 한 달에 4백원 정도를 원조금으로 내고 있다.
긴급구호를 하다보면 가장 안타깝고 곤란한 상황을 긴급구호 요원 아무한테나 물어봐도 대답은 같다고 한다. 비슷비슷한 사정의 마을들인데 한정된 자금과 턱없이 부족한 물자 때문에 어떤 마을은 긴급구호가 도착해서 살고, 바로 옆 마을은 식량이 없어서 죽어가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안타깝다는 것이다. 물질보다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고들 말하지만 여기선 자금이나 물자가 없어서 생명이 사라져가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우리가 조금씩만이라도 그들을 도와준다면 티끌모아 태산이라는 말처럼 그들의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것이다.
한비야 씨는 한 달에 6만원이 월드비전이란 이름으로 빠져나간다고 한다. 2만원씩 3명의 아이들을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처음 맺어진 아이의 부모는 2만원을 받고 보건소에 가서 살아났다고 한다. 또한 그 뒤로도 학교도 다니고 집안의 사정도 나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두 번째 아이는 담보노동을 하는 아이였는데 그 아이를 풀려나게 해주고 아버지의 릭샤를 마련해 주고 아이의 학교까지 다니게 해주는데 필요한 돈이 단돈 2만원이다. 세 번째 아이도 마찬가지로 다리가 좋지 않았던 아이였는데 단돈 2만원으로 바르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2만원은 우리에게는 단돈 2만원이지만 이들에게는 생명이 왔다 갔다 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다. 몇 달 전 부터는 3만원으로 올라버리긴 했지만, 여전히 부담스럽지는 않은 금액인데, 어떤 이들에겐 희망이 될 수도 있는 돈인 것이다. 그 돈으로 말미암아 그 아이들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도와주고 지켜봐 주고 있다는 것, 자신들이 일어날 수 있는 밑바탕을 누군가가 마련해 주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 느끼고 삶의 의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조금씩 안 먹고 조금씩 양보해서 만든 돈이 한 가족에게 희망이 될 수 있고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보람된 일이 아닐까?
무언가를 얻고 싶어 하는 것 즉, 욕심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빼앗아 간다. 돈에 대한 집착과 욕심 때문에 자신의 꿈을 버리고 돈 많이 버는 직업을 추구하는 사람들만 가득한 현대사회, 욕심 때문에 무한히 경쟁하고 서로 미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더 심화되어 국가끼리의 욕심으로부터 전쟁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마음의 상처 속에서 살아간다. 또 조금씩만 아껴 쓰고 양보해서 만들 수 있는 돈으로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욕심이라는 것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본다면 욕심이라는 것만 없으면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서로 미워하지 않아도 될 것이고, 이유 없이 죽지 않아도 될 것이며, 더 이상 마음의 상처 속에서 고통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한비야 씨가 베푼 몇 만원으로 한 생명이 다시 태어나는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욕심을 조금은 버리고 소외된 곳에 눈길을 돌린다면 모두가 삶의 의욕을 되찾고 희망을 나누어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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