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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샌델의 "JUSTICE"를 읽고 열린 토론에 대한 갈망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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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6,275회 작성일 14-04-1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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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란 무엇인가? 도덕심이란? 무엇이 옳은 일인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을 고민할 때면 우리는 어린 시절 기억 속의 도덕 시험을 떠올린다. 무엇인지 똑 부러지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냥 막연하게 옳은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정의일 것이다. 막연한 개념에도 불구하고 어린 시절의 기억에 따르면 도덕시험은 제법 쉬운 축에 속했었는데,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은 아마도 문제가 제출자의 편의를 위해 가공된 가상의 상황을 인용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실제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데, 2004년 여름 플로리다의 허리케인 피해 사례를 두고 이야기를 해보자.

거대한 허리케인으로 인해 그 해 플로리다는 110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을 입고 대부분의 주민이 부서진 가택과 전기 수도와 같은 공공서비스 미비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고통 가운데서 모텔, 상점, 재해 복구 용역업체 등에서는 평소보다 제품가격을 터무니 없이 높게 책정하여 집을 잃고 오갈 곳 없는, 그리고 더위에 지쳐 있는 사람들에게 또 다른 고통을 주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바가지 상혼에 분통을 터뜨리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뉴스와 방송매체에서도 이들은 ‘폭풍 뒤에 찾아온 약탈자’로 칭하며 이들에 대한 분노를 공론화 하였다.

국내에서도 해마다 피서철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이면 소비자의 선택권 부재로 인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이러한 바가지 상술에 대한 비난이 많은데, 이들의 의견에 따르면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은 가격 폭등은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이런 바가지 상혼을 다른 시각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의 의견에 따르면, 폭등한 가격은 소비자의 수요와 공급재의 가치에 의해 자연스럽게 매겨진 가치일 뿐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성수기의 숙박업소 가격이 올라가면, 그 수익을 위해 더 많은 숙박업소가 생겨나게 되어 결론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그 피서지에서 편하게 숙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된다는 논리이다. 거꾸로 말해서는 그들의 바가지 상혼을 막기 위해 가격을 제한 하게 되면 공급자의 공급 의욕이 떨어지게 되어 결국에는 소비자들이 충분한 공급서비스를 받지 못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바가지 상혼은 결론적으로는 ‘정의에 어긋나는 일’이 아니며, 소비자에게 서비스가 충분히 제공될 수 있는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는 오히려 ‘옳은 일’이 되는 것이다.

이렇듯 실생활에서는 옳고 그른 일을 쉽게 구별하기란 쉽지 않으며, 사실 도덕 시험 문제에서나 제출될 법한 상황은 실생활에선 거의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은 일인지 쉽게 판단할 수 있을까? ‘정의(justice)’에 대한 또렷한 정의(definition)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샌델은 하버드대에서 정의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데, 그의 수업은 지금까지 20여년 동안 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명강의로 꼽히고 있다고 한다. 그는 그의 저서 ‘Justice’에서 옳은 일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으로 유명한 제래미 밴담의 공리주의에서부터 이마누엘 칸트, 존 롤스 아리스토 텔레스에 이르는 다양한 이론을 소개하고 그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방대한 이론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옳은 일을 한마디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못하는 것일 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그는 수업 중에서 학생과 수 없는 토론을 거듭한다고 한다. 정의(justice)를 주제로 한 거듭되는 교수의 질문, 그에 대한 학생의 거침없고 날카로운 반박이 이어지는데, 교수와 학생이 다같이 정의(justice)를 추구하기 위한 동반자의 자세로 토론하다 보면 어느덧 옳은 일에 대한 개념에 한걸음 더 다가가게 된다는 식이다.

공학을 연구하는 우리의 입장에서는 바가지 상혼이 옳고 그르다 라는 것을 토론 하는 것은 아주 태평한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당장 내일 미팅을 준비하기도 바쁜데 어릴 때나 봤던 도덕 시험에 나올 법한 주제로 토론이라니! 하지만, 나는 이런 ‘열린 토론 문화’는 좀 배워야 하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다. 사실 우리 연구실에서 연구를 주제로 이런 저런 토론을 하다 보면, 마냥 자기가 옳다고 귀를 닫고 자기 생각만 이야기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막연하게 특별한 근거도 없이 상대방의 의견을 반박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는 토론을 좀 하다 보면 언성이 높아지는 사람도 있다. 거짓말 인 것 같겠지만, 실제로 있다! 부끄럽지만, 나도 그렇고.

책을 통해 저자가 독자를 향해 던지는 다양한 정의(justice)를 주제로 한 토론을 보면서 나는 새삼 하버드대 학생들이 부러워졌다. 누구나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서로의 의견에 대해 건설적이고 적극적인 논의를 벌일 수 있는, 그런 환경 말이다. 많은 수의 구성원이 함께 힘을 모아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우리 연구실에서도 이런 토론 문화가 정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의 연구 주제를 향해 밤새 화이트 보드를 끼고 토론 하고, 자신의 연구 계획에 대해 세미나를 열어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고 하다 보면 어느새 우리 연구실이 세계 일류 연구실의 대열로 올라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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