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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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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위주형
댓글 0건 조회 6,015회 작성일 14-04-2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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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시고기 >

가시고기는 작은 민물고기이다. 그 중 암컷 가시고기는 알들을 낳은 후에 어디론가 달아나 버리고, 수컷 가시고기 혼자 남아서 알들을 보호한다. 보호하는 보름 동안 수컷 가시고기는 먹지도, 자지도 않으면서 열심히 알들을 보호한다. 그렇게 해서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나면, 수컷 가시고기는 돌 틈에 머리를 처박고 죽어간다. 그 이유는 죽어서까지 사냥에 서툰 어린 자식들의 먹이감이 되어주기 위해서이다.

“가시고기”. 처음에는 가시고기에 대해서 전혀 몰랐기 때문에 베스트셀러라는 이유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시고기에 대해서 알고 난 후에 이 책를 다시 보니 제목이 왜 가시고기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책은 백혈병에 걸린 어린 아들의 고통을 지켜보며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이 가시고기의 사랑과 매우 흡사하여 제목이 이렇게 명명된 듯 하다. 이 책은 여자보다는 남자의 가슴을 더 들끓게 만드는 책이다.

백혈병에 걸린 10살의 꼬마소년 정다움. 그리고 그 옆에서 항상 버팀목이 되어주는 다움이 아빠. 그리고 다움이와 다움이 아빠를 버리고 도망간 다움이 엄마. 백혈병과 싸우면서 고통스러워하는 다움이. 그런 다움이를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마음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자신의 병과 투병하는 아이를 차마 지켜볼 수 없던 아버지는 다움이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잘 아는 다움이는 가정 형편을 잘 알기에 항상 아버지에게 퇴원하기를 부탁한다. 하지만 항상 아버지는 거절을 했다. 계속 병원비를 내지 못해 듣지 못할 소리를 들어도 말이다. 다움이는 골수 이식을 받지 않으면 살기 어려울 정도로 병이 많이 악화되었다. 하지만 다움이에게 맞는 골수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고, 결국 아버지는 다움이가 죽을 때까지 항암치료로 고통을 받는 것보단 병원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빠는 다움이에게 바다도 보여주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잠시 다움이와 아빠의 행복한 시간이 흐르지만 다움이의 몸은 다시 악화되고 만다. 다움이의 엄마는 다움이의 재능을 탐내고, 골수 이식이 가능한 루트를 찾아 돌아온다. 그러나, 이를 잘 알고 있는 아버지는 차마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결국 병원비를 위해, 다움이 아버지는 장기를 기증하고 돈을 마련하려 한다. 그러나, 다움이 아버지는 신장을 팔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본인이 간암말기였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도 아버지는 본인의 몸보다 다움이만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팔 수 없는 장기대신 눈의 각막을 팔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수술을 하게 되고, 다움이는 성공적으로 수술을 마친다. 그러나, 기뻐할 새도 잠시. 다움이 아버지는 다시 결심한다. 간암말기로 죽을 자신의 운명을 알기에 다움이를 매몰차게 하고 다움이 엄마에게 보내기로. 결국 다움이에게 자신의 비밀을 밝히지 않은 채 다움이를 엄마에게 보낸 후, 아버지는 쓸쓸히 이 세상을 마친다.

이 책의 다움이 아버지는 백혈병을 가진 아들의 가난한 아버지로 그려진다. 그러나, 이 책의 아버지는 좁은 범위의 아버지가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 그 아버지를 대변하고 있다. 작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들고 고난을 겪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 사회에서의 아버지란, 자식을 위해서 밖에서 열심히 돈을 벌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의무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있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느끼는 스트레스, 다른 여러 고충들은 가족들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마치 먹이를 기다리는 새끼 새들에게 먹이를 계속 물어다 주는 것과 흡사하다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렇게 생애의 대부분을 가족들을 위해서 살다가 점차 쇠퇴해가며 쓸쓸히 죽어가는 이 세상의 아버지를 가시고기로 표현하고 있다. 가시고기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수컷은 암컷이 부화한 이후부터 보름동안 알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육신을 바쳐 자식들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우리 사회는 모정에 친숙해져 있다. 드라마나 영화, 다른 다큐에서도 부정보다는 모정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그려진다. 실제로도 사람들은 부정보다 모정에 더욱 이끌려 살아간다. 생식적으로 어머니 몸에서 태어나면서 친숙한 것도 한 이유이나 이 사회는 희한하게 남자에게는 사회라는 짐을 더 많이 지어주고, 여자에게는 자식이라는 짐을 더 지어준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사회는 남자는 돈을 벌어 와서 가정을 이끌어야 하는 존재로만 여겨져 왔다. 직장의 스트레스를 잊기도 전에 가정에서의 스트레스 또한 고스란히 남자들의 몫이었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했을 것이다. 이미 아버지를 보면서 배워왔던 것을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그 자식들이 다시 아버지가 되어 순환한다. 남자들은 여자보다 사랑이라는 표현에 서툴고, 남자라는 이유로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남자의 속은 여자의 속보다 더 약할지도 모른다. 언제나 감정을 억제하며 살아가는 남자들 그러한 남자들은 항상 외롭게 이 세상을 살아간다. 과연 우리 남자들은 앞으로 우리가 살아갈 길을 20~30년 앞서가고 있는 아버지의 사랑을 제대로 느끼려는 시도조차 해 보았을까?



'내가 이 세상에서 사랑하는 사람은 아빠뿐이고, 아빠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언제까지나 함께 있어야 한다고 말한 건 바로 아빠에요. 그렇게 중요한 걸 왜 잊어버렸을까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어떻게 될까요. 아빠 말대로 속이 시원할까요. 자꾸만 가시고기가 생각납니다. 돌 틈에 머리를 박고 죽어가는 아빠 가시고기 말예요. 내가 없어지면 아빠는 슬프고 또 슬퍼서, 정말로 아빠 가시고기처럼 될지도 몰라요. 만약 내가 엄마를 따라 프랑스로 가게 되면은요, 아빠가 쬐금만 슬퍼했으면 좋겠어요. 쬐금만 슬퍼하면 우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죠.' - (책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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