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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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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6,163회 작성일 14-04-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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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셰익스피어가 있다면 일본에는 나쓰메 소세키(1867~1916)가 있다고들 한다. 그는 일본 근대문학사에 있어 정신적 지주로까지 칭해지는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일본의 천 엔 지폐에 그의 초상화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사실을 보면 그에 대한 일본 사람들의 관심과 존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다. 1867년에 태어나 격변의 메이지 유신 시대를 몸으로 겪어나가면서 그는 훗날 본인의 작품들을 통해 일본의 근대화를 고스란히 그리고 생생하게 토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한문학과 영문학을 전공하여 교편을 잡은 후 영국으로의 유학길에 올라 영문학자로써 높은 평가를 받는 지위에 까지 다다랐다. 이는 그의 작품 안에 동양적 사상과 서양의 지성이 적절히 융화될 수 있는 데에 중요한 밑거름이 되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1905년 “호토토기스”에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연재하면서 작가로서 이름을 알리게 되었으며 그 후, “도련님”이 연재되면서 인기가 급부상하였다. 그런 그가 불혹을 갓 넘은 나이에 교수직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의 길에 몰두하게 되면서 그의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작들이 탄생하였는데 “마음”역시 이 시기의 작품 중 하나이다.

이 책은 일본 근대 문학의 뚜렷한 지표로 인식된다.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를 표출하는 장치로서 삼각관계의 연애에 담긴 남성중심주의, 당시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데이코쿠대 출신끼리의 지적인 교류, 그리고 거기에 개입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복의 이야기가 일본의 근대상을 부족함 없이 나타내 주며, 삶의 풍경의 사실적인 표사가 마치 사전조사를 통해 이루어진 듯 완벽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다소 감상적이고 가볍게 느껴지는 일본의 타 소설들에 비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와 인간 존재의 정체성에 대한 성찰과 같이 철학적이고 깊이 있는 논의를 시작하였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소세키 자신의 예민한 정신세계의 표출이었다는 점과 자기 부정의 정신 및 다소 염세적인 인간상은 근대의 격변기를 사는 보편적 지식인으로서의 고뇌를 응축해낸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마음』을 소세키의 12년 작가활동 중 후기의 정점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결코 내면적인 움직임만을 담지 않고 인간과 인간 간의 관계, 즉 마음의 교류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준다. 급격한 속도로 변화하는 오늘날의 정보화 사회는 인간을 점점 더 고립되게 한다. ‘나’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 노력함으로써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인 ‘선생님’의 사상을 존경하게 되고 ‘선생님’에게 부모보다 더 애착을 느끼게 됐다는 사실은 피상적인 관계만을 낳는 오늘날의 현실에 회복 가능성을 비춰준다.

이 책은 크게 3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1장 선생님과 나’, ‘2장 부모님과 나’는 메이지 시대 말엽인 1910년대를 배경으로 도쿄데이코쿠대에 다니는 ‘나’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3장 선생님과 유서’는 선생님이 나에게 보내는 고백의 서간체이다. ‘나는 그분을 언제나 선생님이라 불렀다.’ 소설의 1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나’는 여름 피서를 갔다가 바닷가에서 낯선 서양 남자와 있는 ‘선생님’을 발견하고는 단순한 호기심을 느껴 의도적인 접근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관계가 지속됨에 따라 ‘나’는 조금이라도 ‘선생님’의 사상과 과거에 대해 더 배우고 싶어 하는데 ‘선생님’은 좀처럼 마음을 열려하지 않음으로 지속적인 만남과 대화가 진전이라 할 별다른 사건 없이 전개된다. 2장은 건강이 악화되신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내려가 있는 동안의 일을 담았다. 그러나 ‘나’는 소위 배운 지식인의 태도를 고수함으로써 무지한 시골사람인 부모님과 진실된 이해관계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선생님’을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의 임종을 눈앞에 두고도 선생님의 편지글에 곧장 도쿄행 기차를 타버린다. 앞의 두 장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3장은 ‘선생님’이 자신의 삶의 태도와 인간관의 변화에 기인한 과거를 다른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다가 ‘나’에게만 마음을 열고 구구절절이 읊어 놓은 편지이자 유서이다.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다가 청년기에 부모님을 여의고 작은 아버지께 의지하게 되는데 유산을 사기 당함으로써 ‘선생님’은 그 배신감이 되돌릴 수 없는 상처가 된다. 가장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실망감은 곧 인간 자체에 대한 증오로 바뀐다. 하지만 하숙집 딸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기 시작하면서 친구K와 암묵적인 삼각관계에 놓이게 되고 결국 질투와 이기심의 발로로 친구K를 자살에 이르게 한다. 자신이 그토록 혐오했던 인간의 속성이 자기 안에도 내재해 있음을 발견하고 ‘선생님’은 현실 도피를 꾀한다. 하지만 메이지 천황의 승하와 노기대장의 순사가 잇따르면서 ‘선생님’은 끝내 존재의 불안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택하고 만다.

이 소설에서는 1장과 2장의 주인공이 ‘나’인 동시에 3장에서 선생님이 또 다른 ‘나’로 등장한다. 단순히 두 명의 ‘나’가 등장하는 소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나 소세키는 이 둘을 애써 구분하려 하지 않고 독자의 머리 속에 겹치게끔 하려고 시도한다. 특수상황속의 개인보다 인간이라는 보편적 존재 자체를 탐색하려 한 의도에서이다. 그리고 소세키는 이 책에서 1장과 2장에서 넌지시 던져 놓는 복선들이 3장에 이르러 드러나면서 궁금증이 극적으로 해소되는 형식을 취한다. 예컨대 3장에서 친구K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고서야 비로소 1장에서 오고가는 재담 중 ‘사랑은 죄악이다’라고 말한 ‘선생님’의 심중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1장과 2장이 별다른 사건 전개가 없어서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3장을 위해 조용히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소세키의 세심하고 철저한 구성 방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 속 비중에 비해 ‘사모님’에게 허락한 인격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점에서 가부장적 질서를 고수하였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 근대 여성의 성격을 수동적이고 순종적으로 형상화 하는데 그친 것이다. 게다가 ‘선생님’의 자살을 메시지 천왕의 승하와 노기 대장의 순사에 관련지어 미화함으로써 메이지 시대의 윤리와 가치로 근대 일본을 규정하였다는 점에서도 비판의 여지가 있다. 무엇보다도 도쿄행 기차를 타버린 ‘나’에 대해 2장을 끝으로 더 이상의 언급이 없고, 선생님 또한 자살로 끝을 맺음으로써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교류는 다룰 수 있었던데 비해 존재적 불안감과 인간 본성에 대한 회의 등의 개인 내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뚜렷이 제시하지 못하고 결국 최후의 고민과 판단을 유보해 버린데 대해서도 못내 아쉬움이 남는다.

몇 가지 아쉬운 부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일본 문학의 담담하고 소소한 맛의 기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비록 책의 전반부에 늘어놓는 이야기들을 읽어 내려면 많은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실질적인 전개가 일어나는 3장까지 다다르게 된다면 비로소 숨겨진 소세키의 미학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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