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과 거짓 사이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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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 라이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보고, 가장 많이 알려진 연극 라이어. 대학로를 찾았다가 항상 매진이어서 놓쳤던 연극 라이어를 대전에 와서 접하게 되었다.
연극 라이어의 원작은 `Run for your wife‘로, 지난 1983년 영국 런던의 샤프테스베리 극장에서 코미디극단 창단 공연으로 오른 작품이다. 8년 반 동안 끊임없는 호응 속에 장기 공연 됐고, 40개국의 언어로 번역돼 세계 각국에서 공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라이어’라는 제목으로 한국적으로 각색되어 5000회 국내 공연을 넘기며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관람했고, 현재도 대학로 소극장 연극 중 가장 사랑받는 몇 안 되는 연극 중 하나이다. 객석점유율 100%, 연극부문 예매율 1위 등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관객층은 물론 직장인과 중년층까지 그 명성이 확산되고 있으며, 모든 관객이 웃고 즐길 수 있는 대중화된 국민연극으로 자리 잡고 있다.(라이어 공식 홈페이지 : http://www.iloveliar.com)
라이어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배경은 영국. 윔블던과 스트리트 햄에 메리와 바바라라는 두 부인을 두고 정확한 스케줄에 따라 두 집을 바쁘게 들락거리던 택시 운전사 존 스미스의 이중생활이 어느 날 그가 가벼운 강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무너지기 시작한다. 존은 경찰서와 병원에 서로 다른 주소를 적어서 그를 메리의 집까지 바래다 준 트로튼 형사의 의심을 사게 되고 당황한 존은 스케줄을 지키려고 바바라에게 갈 기회를 엿보지만 그의 영웅담이 신문에 사진과 함께 실리는 등 일이 커지게 된다. 존 스미스의 친구 스탠리는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농부 흉내도 내는 등 존을 감싸려 하지만 오히려 거짓말은 자꾸 이상한 거짓말을 낳고 급기야 존과 스탠리는 호모로까지 몰린다. 존의 첫 번째 부인 메리가 존을 찾기 위해 두 번째 부인인 바바라의 아파트로 가 결국 마주치게 된 존의 두 부인은 존의 거짓말 때문에 서로를 수녀와 여장남자로 오해한다. 결국 바바라, 메리, 스탠리, 트로튼 형사, 포터하우스 형사와 바바라의 윗집에 사는 게이 바비까지 뛰쳐 나가버리자 자포자기한 존은 모든 사실을 고백하지만 오히려 그의 진실은 거짓말이 되고 마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지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연극의 특징은 희극성과 스피드에 있다. 관객들은 스피디한 전개에 계속 웃게 되고, 이러한 상황은 종반부로 갈수록 고조된다. 라이어는 수차례 웃고 넘겨버리기에는 허전한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진실이라는 것의 무력함과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다는 것이다.
택시기사 존 스미스는 자신의 상황을 전혀 무마하지 못하고 계속 거짓의 늪에 빠져 헤맨다. 나비효과처럼 최초 병원과 경찰에서 주소를 잘못 적은 하나의 실수로 상황은 계속해서 악화된다. 줄 곳 거짓이 진실을 밀어낸다. 나중에는 거짓이 진실이 되어 버린다. 여기서 과연 정직이 최선의 방법일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거짓말이 지니는 함의는 무언가를 감춘다는 것이다. 그 무엇은 일탈이다. 주인공은 이중결혼이라는 숨겨야 하는 행복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존 스미스는 두 아내 메리와 바바라를 똑같이 사랑한다. 두 명과 살면 두 배로 행복해 질 수 있다고 믿는 존 스미스 나름의 철학이다. 그러나 그는 그런 솔직함을 숨겨야 한다. 일종의 사회 부적응이기 때문이다. 극에서 이런 이중 결혼의 소외감은 동성애보다 더 납득이 힘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중 결혼을 고백하는 스미스의 말을 그의 성적 취향을 숨기는 변명 혹은 거짓말로 간단하게 치부해 버린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는 것, 알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노래 가사처럼 단순한 환상일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대중은 자신의 환상을 보고 산다. 존 스미스가 자백을 해도 믿지 않는다. 이것이 이 연극의 포인트다. 거짓의 매력이다.
연극 라이어는 코미디다. 코미디는 항상 무언가를 놀려야 한다. 소극의 본질은 풍자이다. 그렇다면 이 연극은 무엇을 풍자하는가? 그것은 바로 대중의 어리석음을 풍자한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 진실을 말하는 사람... 외모로는 그들을 구분할 수 없다. 그래서 대중은 서로 다가서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머리와 그들의 마음으로 지레짐작하고 생각하고 말한다.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그들은 그들의 환상 안에서만 살아간다. 그런 환상들이 진실을 몰아낸다. 이렇듯 사람들 사이에는 섬이 있다. 두 아내를 사랑하는 존 스미스가 멍청한 동성애자가 되어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닌 게 되는 것이다.
섬 속에 살고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언제나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들의 대책 없는 호기심이다. 대표적인 예가 일탈을 쫓아다니는 기자와 형사들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것에서 벗어난 오차만을 쫒는다. 그들의 가치는 대중의 호기심 충족이다. 물론 진실이 아닌 호기심, 이것 역시도 거짓이다. “글쎄... 그럴까...?” 하는 대중의 타인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과 의심 덕에 두 배로 행복했던 존 스미스는 절망적으로 불행해졌다. 잃은 것은 사랑이고, 얻은 것은 불명예다. 연극 라이어는 보호될 사생활에 대한 현대세계의 관음증을 풍자하고 있기도 하다. 세상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허용할 수 있는 한계를 정해야 한다. 그것이 제도다. 사회에 적응하는 최소의 기준이다. 그러나 대중은 옳은지 그른지 판단을 유보하고 단지 일탈에 대한 폭력만을 행사한다.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옳은 것만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과 다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을 누른다. 물론 그들은 사회의 거대한 지원을 받는다. 축첩의 불허용도 그런 제도의 하나다. 이 연극은 두 배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너무나 간단하게 포기하는 대중의 치졸함을 약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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