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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가는 기차 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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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291회 작성일 14-04-29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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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씩은 우주와 별 같은 것들에 대한 동경을 가져 보았을 것이다. 수능 시험을 치르는 11월 즈음이면 이제는 널리 알려진 사자자리 유성우가 극대기를 가지는데, 어릴 적 나도 동생과 옥상에서 이불을 덮어 쓴 채 컵라면을 나눠 먹어가며 떨어지는 별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런 추억들과 더불어 나의 밤하늘에 대한 관심은 대학을 입학한 후 천체 관측 동아리에 가입하도록 만들었다. 예쁜 성운 성단들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한 경험이지만, 그런 아름다운 별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경우는 그다지 많다고 볼 수 없다. 특히 별이 잘 보이도록 달빛이 가장 적은 그믐 근처의 주말 정도에 화창한 날을 기다리는 것이 그 중 한 이유이다. 더더욱 부산이나 대전 같은 대도시에서는 광해가 워낙 심하기 때문에 도시에서 별보기란 정말 별 볼일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가끔씩 비가 쏟아지고 난 후 개인 뒤에 하늘의 먼지가 많이 없어진 깨끗한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은 맨눈으로도 예쁜 별자리를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멋진 밤하늘이 펼쳐지곤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요즘도 습관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대기 투명도나 가시 거리 정도를 가늠하곤 하는데, 날씨가 화창해서 저 멀리 있는 산들도 뚜렷이 보이는 날에는 아직도 예전처럼 오늘 밤에 별을 보면 정말 멋질 거라는 생각을 하며 설레는 느낌을 가지곤 한다.
7월 말, 요즘은 날씨가 너무 괴팍해서 햇볕이 내리 쬐더라도 금방 어둑한 구름들이 하늘을 덮고 비를 뿌렸다가는 다시 흩어지고는 한다. 그래도 덕분에 하늘의 먼지는 많이 없어서 공기는 참 깨끗한 것 같다. 오늘 대전을 떠나 부산으로 가는 열차를 타러 대전역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바깥 하늘은 특히 너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은 아니지만 정말 새파란 하늘과 뭉실뭉실 떠 있는 구름들이 너무 멋있어 계속 시선이 가게 된다. 창가 쪽 좌석을 미리 예매해 둔 게 너무 잘 한 일이라 생각이 든다.
바깥이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던 지하철을 나선 뒤 대전역에 도착 했을 때 열차가 도착하기까지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승강장의 의자에 앉아 독서남 흉내를 내기 위해 가방에서 보통 씨의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바로 전에 그 분의 ‘우리는 사랑일까’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그의 다른 작품들을 접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은 사람과 사람 또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일상적인 사건이나 대화들에서 그들의 미묘한 심리적인 변화와 관계에 대해 위트 있게 표현하여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 동시에 철학적으로 접근하여 너무 가볍지는 않아, 약간 읽기 어려우면서도 묘하게 재미가 있다. 이 책은 더더구나 주인공 이사벨에 대한 이야기를 ‘전기’의 형식을 빌려 그녀가 말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이 보는 그녀의 이야기 등에 대해 풀어가는 독특한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진짜 그녀의 옛 남자친구들의 사진까지 있다니 이거 실화인가 궁금하다. 그리곤 몇 장 넘기지 않았는데 열차가 들어온다. 책을 덮으며 나의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리든지 책이 너무 어렵던지 라는 의심을 한다.
승강장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것은 항상 새로운 설렘을 가지게 만든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열차에서 같이 앉아 가는 건 얼마나 가까운가.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운이 없는지 옆 자리에 항상 아저씨들께서 앉으시거나 빈자리였던 것 같다. 오늘도 역시 어떤 사람이 앉아 있는지 궁금해 하며 자리를 찾아 들어가는데, 이런 역시 아저씨가 앉아 계신다. 그런데 그 옆에 다른 사람이 앉아 있는 것이 보여 다시 한번 좌석을 확인하니 다행히도 이곳은 옆 칸이다. 다시 내 자리를 찾아가 보니 옆자리가 비었다. 앉아서 창 밖을 보는데,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고 빗 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고 있다. 음료랑 책을 꺼내 독서남으로 돌아간다.
주인공 남과 여는 프루스트적인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이사벨은 ABBA의 음악들을 들으면 옛날 ABBA를 들으면서 알가브 지역을 여행을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잠수함 엔지니어인 독일 남자를 만나 어울리며 일상의 탈출을 찾던 이사벨은 그 남자가 유부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같이 동이 트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나도 예전 호주에서 여행하며 들었던 Coldplay의 음악들이 생각난다. 가끔씩 어쩌다가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놀랍게도 내가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면서 그때 만났던 친구들이 떠오르곤 한다.
옆자리에 어떤 할머니께서 짐을 들고 오시며 앉으시려 하신다. 그리고는 짐을 의자 앞에 놓고 건너 좌석을 한번 보시면서 나에게 ‘총각, 나 같은 할미가 앉아서 미안하우’ 라고 하신다. 힐끔 그곳을 보니 아가씨 둘이 앉아 있다. 내가 당황해 하며 인사를 건네었는데 아마도 할머니가 자리에 오셨을 때 내가 지었던 표정이 마음에 안 들으셨던가 보다. 사실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왠지 억울한 느낌이 들었다. 곧 있다가 할머니께서 웃으시면서 삶은 달걀 두어 개를 주신다. 달걀을 까 먹으면서 할머니께서 위트가 있으셔서 농담을 하신 건지 아니면 내가 진짜 표정이 안 좋았는지는 소심하게 속으로 살짝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물어보는 것도 우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할머니가 내가 열차 탈 때 생각했던 것을 어떻게 읽기라도 하셨는지 놀라워 했다.
열차에서 창가 자리라도 두 종류가 있다. 한 가지는 정말로 창문 옆 자리이지만 다른 경우에는 창문과 창문이 만나는 곳의 옆자리인데 그럴 경우에는 앞뒤 모두 어중간하게 창문이 보여져서 창가에 앉은 기분이 나질 않는다. 오늘은 다행히 창문 옆 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느 새 창 밖에는 비가 그치고 난 하늘이 보이고 있다. 회색 빛 어두운 구름이 낮게까지 내려온 모습이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그리고 곧 있으니 어두운 구름들은 떠나가고 하얀 구름들이 파란 하늘과 함께 나타난다. 저 멀리 뭉게구름이 피어 오른 모습이 보여지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진다. 새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들 그리고 햇살. 내가 제일 좋아하는 하늘의 모습이다. 이건 장난일까, 덮어두었던 알랭 드 보통의 책 표지에 내가 바라보고 있는 하늘이 그려져 있다. 왜 이때까지 그걸 몰랐을까. 갑자기 나는 할머니께서 농담으로 나에게 그런 말씀을 하셨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오늘 하루는 청명한 하늘처럼 나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날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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