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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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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종수
댓글 0건 조회 1,435회 작성일 25-05-12 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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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 인간

유현준 지음


나와 다른 경험과 전문지식을 가진 사람과 특정 주제로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일은 늘 새롭고, 어딘가 잠들어 있던 미지의 감각을 흔들어 깨우기에, 나는 그런 대화를 좋아한다.


얼마 전 이례적인 기회로 AI 시대에 맞춘 고속, 고성능 어플리케이션에 쓰이기 위해 현재의 NAND 기술이 어떤 식으로 발전해 나가면 좋을지 방향성을 제시하는 세미나를 들었다. 강연자는 컴퓨터 사이언스를 백그라운드로 시스템 아키텍트 연구를 하시는 교수님이셨다. 메모리는 원래 이렇게 가야지라는 어떤 정형화된 기존의 틀을 깨는 파격적인 내용들이 있었고, 어떤 내용은 납득이 어려운 부분도 일부 있었다. 다만, 예전에 비해 발전속도가 포화되어 정체되어가는 상황에서 새로운 관점과 방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신선한 자극을 얻었다. 분명, 미래에는 이를 기반으로 새로운 먹거리와 연구거리들이 충분히 창출될 수 있겠다는 상상을 하게 되었다.


책의 저자인 유현준 교수님은 건축가다. 일전에 여러 저서나 운영하시는 유튜브를 몇 편 재밌게 본 적이 있는데, 대부분의 주제는 건축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에 관한 이야기가 많다. 예를 들면, 교회나 성당이라는 곳은 단지 예배를 드리러 가는 목적의 장소로만 인식하는, 다소 1차원적인 나의 평범한 사고를 넘어, 종교 시설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이 들도록 하며, 대중의 행동이나 인지를 어떤 식으로 통제하는지에 대하여, 건축가가 의도를 가지고 빛을 이용하거나 창문의 모양, 배치, 구도를 설계해 나가는지 그런 기술적인 접근들을 소개한다. 내가 굳이 힘내어 타인에게 소리를 내어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대로 군중이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자연스럽게 움직이도록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은 고도로 지능적이면서도, 우아하고, 한편으로는 섬뜩하다. ‘공간 인간’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공간 발전의 역사와 함께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 둘을 밀접하게 연결시켜 해석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종로 뒷골목의 간판이 정신없지만, 외국인 친구는 그 간판을 흥미롭게 바라본다. 나에게는 한글이 모국어 글자니까 종로의 간판이 주는 정보가 넘쳐나는 피곤한 공간이 된다. 반면 한글을 읽지 못하는 외국인에게는 종로의 간판이 장식이 잘된 조명일 뿐이다. 이렇듯 공간은 내가 아는 지식 배경에 따라서 다르게 해석되는 정보가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다른 문화권을 배척하기보다 이해하려는 오픈 마인드는 어떤 사람들에게는 먹고사는 일이 달린 굉장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코미디언은 이런 것들에서 발생하는 간극을 이용해 개그의 소재로 삼지만, 비즈니스를 해외로 확장하려는 큰 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거액의 수입을 벌어들일 중요한 기회가 되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너와 내가 가진 생각이 정반대이기에, 상대 생각의 본질을 듣고 이해해보려고 하기도 전에, 차단하고 등을 지려는 행위는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개인의 시야를 좁히고, 사고의 확장을 막고, 창의성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겪었던 재밌는 경험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어떤 사람이 탁월한 아이디어를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비난하거나 관심이 없다는 무미건조한 반응을 보여주고, 검증과 인정에 목마른 당사자의 생각이 형편없음을 스스로 느끼도록 만들어 좌절하게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나중에 보니 정작 그 사람은 그곳에서 영감을 얻어 본인의 것으로 응용하거나 이득을 취했다. 이런 행태를 전략적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사악한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소수의 비난이면 소신대로 밀고 나갈 것 같은데, 요즘 같은 매스 미디어나 대중의 비난 덩어리를 마주하면 아무리 내면이 단단하더라도 시험대에 오른 한 사람의 인생은 결국 흔들린다.


누군가를 숨어서 훔쳐보거나 내려다보는 것은 권력을 만든다. 지구라트나 뉴욕의 고층 건물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등이 건축물로 권력을 만드는 방식이다. 지금은 카메라가 내 눈을 대신해서 어디나 훔쳐볼 수 있게 해 준다. 스마트폰의 각종 카메라는 세상 구석구석 수없이 많은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서 SNS에 올려 준다.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그런 일을 한다. 그런 장면을 보는 사람은 누군가를 숨어서 보는 권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그렇게 자신을 편집해서 보여 주는 사람도 권력을 가진다. 팬옵티콘 감옥이나 회사 말단 사원의 자리처럼 내가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노출되는 것은 권력을 빼앗기는 일이지만, 내가 보여 주고 싶은 좋은 모습만 편집해서 보여 주는 것은 권력을 만드는 일이다.


정말 요즘 사회를 제대로 통찰한 대목이다. 예전에는 방송국에 출연한 소수의 연예인들만 권력을 가졌다면, 요즘은 방송국 도움 없이도 누구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 SNS로 권력을 가질 수 있게 되었고, 누구나 쉽게 댓글을 쓴다. 불특정 대다수가 익명성에 가려져 있기에 말의 무게는 무책임하리만큼 가볍다. 최근에는 효과적인 마케팅의 수단으로 잘 이용되는데, 내용이 자극적인 것인 것을 넘어 진실성 자체가 의심되는 경우가 많다. 편집되고 연출된 장면들은 일방적으로 대중의 인지를 조종한다. 보이는 것도 있는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는 무서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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