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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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속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대표적인 책이 바로 <사랑의 기술> 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을 처음 접한 것은 2013년, 학부 1학년 때 처음 수강한 교양 수업인 <사랑의 담론> 이라는 수업에서 다뤄서였다. 사랑, 이라는 단어만 보고 뭔가 굉장히 낭만적일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주제로 논하는 '철학'도서이다. 대중을 대상으로 하므로 전공자 만큼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어렵고 굉장히 심오한, 그래서 낭만적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 행위
사랑은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랑은 훈련, 집중, 인내, 믿음,
그리고 자기 중심성의 극복을 필요로 한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다. - 본문 中
프롬은 사랑을 흔히 생각하는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이야 사랑은 주는 것이라는 말이 이리저리 퍼져 있지만, 이 책이 쓰여진 것은 1956년임을 기억하자.) 사랑은 저절로 생기거나 우연히 찾아오는 감정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 습득해야 하는 기술임을 역설한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랑을 ‘사랑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사랑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사랑을 기술로 본다는 것은, 사랑 역시 악기 연주나 운동처럼 배우고 연습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프롬은 사랑의 실패 원인을 ‘사랑의 기술 미성숙’에서 찾는다. 사랑에 실패했을 때, 우리는 상대나 상황 탓을 하기 쉽지만, 프롬은 사랑의 본질을 깨닫고 배우는 노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랑의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는 이론적 이해와 실천, 그리고 인내와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프롬은 진정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요소로 ‘보호, 책임, 존경, 지식’을 제시한다. 이 네 가지 요소는 사랑을 단순한 감정에서 성숙한 인간관계로 발전시키는 데 필수적이다. 또한 이 네 가지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면 사랑은 쉽게 왜곡되거나 소유, 지배, 착취 등 건강하지 못한 형태로 변질될 수 있다.
보호: 사랑하는 대상의 생명과 성장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다. 단순한 감정적 애착이 아니라, 상대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실제로 돌보고 보살피는 태도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꽃을 사랑한다면 물을 주고 가꾸는 행동이 반드시 뒤따라야 하듯, 사랑하는 사람의 삶을 세심하게 살피고 지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와 요구에 응답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책임은 단순히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가 처한 상황에 진심으로 응답하는 태도이다.
존경: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의 고유한 개성과 성장 가능성을 존중하는 것이다. 존경은 상대를 지배하거나 소유하려는 마음이 아닌, 그가 자유롭게 성장하도록 돕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지식: 사랑하는 사람을 피상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깊이 이해하고 그의 내면을 알고자 노력하는 태도이다. 이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그의 감정과 생각을 공감하는 데서 출발한다.
사랑의 다양한 형태와 실천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에 대한 태도, 성격의 방향성이다.
만약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확대된 자기애일 뿐이다. - 본문 中
프롬은 사랑을 여러 형태로 나누어 설명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사랑, 형제애, 자기애, 이성애 등 각기 다른 사랑의 모습이 있지만, 이들 모두가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요소를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건강하게 발전할 수 있다. 특히 프롬은 ‘생산적 사랑’을 강조한다. 생산적 사랑이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의 성장과 행복을 진심으로 바라는 사랑이다. 이는 소유적 사랑이나 조건적 사랑과 달리, 상대를 지배하거나 통제하려는 욕구가 배제된, 가장 성숙한 사랑의 형태이다. 생산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부터 배워야 하며, 자기 이해와 자기 수양이 선행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자기 수양이란 크게 4가지가 있는데,
(1) 타인의 존재에 집중하기 (2) 공감 능력 기르기 (3) 책임감 갖기 (4) 자유를 존중하기
가 그것이다. 다시 말해, 사랑이란 단순히 좋은 감정을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 수양과 타인에 대한 깊은 이해, 그리고 적극적인 실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의도적인 실천이며, 이를 위해서는 자기 이해와 타인에 대한 존중, 책임, 보호, 지식이 필수적이다.
결국,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이나 우연히 빠지는 대상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능력’이며 ‘기술’이라는 점이다. 프롬은 사랑을 받는 것에만 집착하는 현대인의 태도를 비판하고, 진정한 사랑은 주는 데서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사랑은 결의이고 판단이며 약속이며, 자기 수양과 인격적 성숙, 그리고 적극적인 실천을 통해서만 진정으로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맨 앞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에는 노래 가사에서도 (사랑은 주는 거니까, 그저 주는 거니까, ..) 볼 수 있을 정도로 흔한 말이 '사랑은 주는 것이다' 이지만,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생물이기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받고자 하는 욕구를 투철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말은 쉽지만 행동과 실천이 어려운 것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오늘날에도 이 책은 자기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읽힐 만한 가치는 조금도 퇴색되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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