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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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학부 마지막 학기 글쓰기 수업을 나는 기억한다. 글쓰기 수업답게, 중간/기말에 내는 서평 및 소논문, 그리고 1페이지 정도의 글쓰기 과제가 총 4번이 주어졌었다. 다른 학생들은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오히려 그러한 글쓰기 과제들에게서 이름 모를 '해방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URP(학부생 연구 프로그램)에서 벌였던 작은 연구를 마무리하고, 전공 수업에 치이는 와중에 글을 쓰느라 사색할 수 있는 (기숙사가 아니라 당시 자주 가던 단골 커피숍에서면 더욱 좋았더랬다)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 정도였던 것 같다. 책에 대한 감상문을 쓰기에 앞서 뜬금없이 이런 내용으로 글을 시작하는 이유는 이 소설 또한 '글쓰기'가 단순한 표현의 수단을 넘어 그 자체가 '치유'와 '성장'의 과정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희원'은 에세이 수업에서 강사가 던지는 질문들, 즉 “당신은 어떤 고통을 보았는가?”, “당신은 무엇에 침묵했는가?” 등을 통해 자신의 과거를 직면한다. 외면하고 싶었던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글로 써내려가면서 비로소 스스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된다.
이야기는 주인공 '희원'이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뒤늦게 대학교에 진학하여, 당시 대학원에 다니던 한 강사의 에세이 수업을 듣게 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수업은 강사가 내주는 과제와 학생들의 발표, 그리고 그에 대한 강사의 피드백으로 진행된다. 강사는 학생들에게 자신만의 경험과 생각을 진솔하게 글로 표현하도록 은근히 유도하며, 주인공 역시 글을 쓰면서 글을 쓰는 행위가 은행에서 겪었던 경험, 특히 용산 참사 관련 시위에 참여했던 기억을 되짚어보는 과정과 연결된다. 과거 은행에서 일하던 시절, 주인공은 업무와 무관하게 용산 참사 시위 현장을 직접 목격하고, 그곳에서 느꼈던 무력감과 죄책감, 그리고 어딘가에 닿지 못하는 감정들을 품고 있었다. 이 기억은 그녀의 삶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는 일상 속에서도 그녀를 맴돌던, 매듭짓지 못한 감정들이었다.
"그녀(강사)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건 그저 무관심일 뿐이고, 더 나쁘게 말해서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일 뿐이라고,
글쓰기는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와는 반대되는 행위라고 말했다." - 본문 中
이 대사는 최은영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관통하고 있다. 주인공의 에세이 수업 경험을 통해 글쓰기가 단순한 자기표현을 넘어, 세상의 부조리에 대한 '의심'과 '저항'의 행위임을 강조한다. 주인공은 은행에서 겪었던 경험, 그리고 소설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 용산 참사 현장을 목격하며 느꼈던 무력감과 죄책감을 내면에 품고 있었다. 이는 어쩌면 강사가 말한 '자기 입장이 없는 상태', 즉 '무관심' 또는 '순응주의'의 한 형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여기며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주인공은 자신의 글을 통해 용산 참사 현장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토해내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고통에 대한 자신의 무지와 무책임함을 인정하게 된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그녀를 과거의 그림자로부터 해방시키는 치유의 과정이 된다.
소설은 글쓰기를 통해 주인공이 '의심하지 않는 순응주의'에서 벗어나 능동적으로 세상의 문제에 개입하고, 자신의 입장을 정립해나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강사의 가르침처럼, 글쓰기는 단순히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행위가 아니라, 세상의 불의에 눈을 감지 않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용기 있는 행위인 것이다. 주인공은 비록 세상의 거대한 고통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지만, 아주 희미한 빛으로나마 그 고통에 공감하고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이는 어쩌면, '기득권에 대한 능동적인 순종'을 거부하고, 작은 등불 하나라도 밝히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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