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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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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다희
댓글 0건 조회 1,049회 작성일 25-07-1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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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또 한걸음

- F1 The Movie와 2025 F1 British Grand Prix를 보고 -



 Formula 1. 정해진 규정 안에서 누가, 얼마나 더 빠른 차를 만드는지 겨루는 경기.

 수많은 스포츠 경기들 중, F1을 챙겨보게 된 건 빠르게 달리는 차들의 속도감과 드라이버들의 치열한 경쟁이 주는 쾌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신체 능력으로 경쟁하는 여타 대다수의 스포츠들과 달리, F1은 차를 운전하는 드라이버의 신체적 능력 뿐 아니라, 어떤 차를 어떻게 설계하고, 어떤 팀이 얼마만큼의 전략과 데이터를 축적해 경기를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리는, 기술과 판단의 스포츠라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더 좋은 차를 개발해야 한다는 점이, 지금 우리가 대학원에서 하는 연구개발 과정과 다름이 없기에 그 구조적 유사성에 더 재미를 느끼게 된 것도 있다.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차량 개발에 예산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스폰서를 유치하거나, 서킷 별 최적의 차량 셋업 조건을 잡기 위해 레이스 전 연습 주행 시간에 다양한 조건으로 테스트를 시도해보는 것. 어느 부분이 문제가 되는지 만들어진 차량을 점검하고, 저/중/고속 각각의 동작 특성을 비교하며 주행 데이터를 검토하고 피드백 하는 과정들이 우리가 연구과제를 진행하며 연구 진행에 필요한 예산을 얻고, 목표로 하는 소자 성능 구현을 위해 실험하고 검증하는 과정과 유사했다. 심지어는, 시즌 막바지에 접어들면 예산 소진으로 인해 부품을 제작하거나 차량을 수리할 돈이 없어 덕트 테이프를 붙여가며 주행 테스트를 하는 팀이 나오기도 한다는 것과, 성능 향상을 위해 적용한 부품 업데이트들이 오히려 전체 시스템을 망가뜨려 성능 저하를 불러올 때도 많다는 점, 혹은 주행에 분명 문제가 있는데 어디가 문제인지 못 찾아 개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부분까지도, 지금 학위 과정에서 겪는 시행착오들과 유사하다. 형태는 다르지만 과정은 유사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개발된 누군가의 노력의 산물들이 연구실을 나와 트랙 위를 성공적으로 달리고, 경쟁한다.

지난 경기, 코너링이 되지 않아 고군분투하던 팀이, 이번 경기에서는 플로어 업데이트로 문제를 해결하여 높은 순위를 달성하는 것을 보면 괜히 함께 뿌듯해지고, 반대로, 대규모 업데이트를 가져왔음에도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어려움을 겪고 있거나, 연습주행까지는 문제가 없던 팀이 셋업 이슈로 레이스를 망치는 것을 보면, 괜히 내 동작하지 않는 소자가 떠오르거나, 열심히 만들어놓고 마지막 PMA 한번 잘못되어 죽어버린 소자를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이 들며 안타깝고 아쉬워진다. 내가 속한 현실을 닮지 않았으면서도 닮은 그 모습에, 모든 팀이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아 응원을 하게 된다. 



생명을 계속 이어가도록 해주는 것, 그건 오직 걸음을 내딛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언제나 다시 시작되는 바로 그 똑같은 발 걸음 말이야 

- 생텍쥐페리, 「인간의 대지」



 얼마전 F1 영국 그랑프리에서, 아마 전세계 F1 팬의 대다수가 응원하고 축하했을만한 일이 벌어졌다. 2010년 F1 데뷔 후 15년 간 238번의 레이스를 참전했지만 단 한번도 포디움(1-3위)에 올라보지 못 한 드라이버(Nico Hulkenberg)가 239 번째 레이스에서 3위에 들며 드디어 포디움에 올랐던 일이다. 15년만의 포디움이라는 것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점은 이 선수가 속한 팀(자우버)이 작년 2024시즌 단 4포인트만을 얻어 컨스트럭터 챔피언십 꼴등을 했던 팀으로, 포디움 가능성이 없던 팀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이었다. 

 F1은 10개의 팀이 참여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우승을 노리는 챔피언쉽 경쟁을 하는 팀은 상위 4개팀 정도이다. 그만큼 한 시즌 내에 차의 개선을 획기적으로 이루어 내기 쉽지 않고, 다른 팀들도 또한, 꾸준히 차량 개선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10위 안에 들어 포인트만 획득해도 기뻐하는 팀에서 3위의 결과가 나온 것은 운 좋게 비가 왔고, 좋은 타이밍에 진행된 팀의 피트스탑 전략, 앞 선 차량을 추월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선된 차량성능, 기회를 놓치지 않고 추월을 시도한 드라이버. 모든 것이 합을 이루며 이루어 낸 쾌거였다.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다.’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운도 준비된 자에게 오는 법이다. 낮은 순위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적으로 차를 개선하여, 적어도 빗길에서 분투하는 다른 차를 추월 할 수 있는 정도의 성능을 만들어낸 팀과, 15년이라는 시간을 버티며 언젠가 올 타이밍을 위해 매 레이스 최선을 다하며 다음을 준비한 드라이버였기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결과였다. 


스포츠는 몸을 움직여 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있지만, 경기를 하고, 준비를 하는 과정이 많은 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경쟁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준다면, 그게 스포츠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냐고 말한 e스포츠 선수인 이상혁 선수가 말한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번 Hulkenberg의 포디움에서 얻을 수 있는 영감은 꾸준한 노력이 아닐까 싶다. 


사실 요즘 실험을 하며 ‘이게 의미가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동작하지 않는 소자를 붙잡고 원인을 찾기 위해 처음으로 돌아가 검증하고, 조건을 조금씩 바꿔보아도, 원하는 결과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이 지난한 과정에서 아직 제대로 동작하는 소자를 얻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어떤 조건에서는 왜 동작하지 않는지 알아내기도, 필요한 기본 공정조건을 확보하기도 하는 작은 소득들은 있었다.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성능이 좋지 않은 차를 타고 15년을 달리며 기회를 엿본다, 어느 팀은 계속되는 성적 부진에도 포기하지 않고 차량 개발을 지속한다. 결국 꾸준히 시도하면 어느 순간에는 타이밍이 온다. 

종종 잘못된 업데이트로 성능 저하를 겪었던 팀이 차근차근 개선을 거듭해 결국 단상에 오르듯, 꾸준히 한 걸음 씩 내딛어보고자 한다. 




+ 최근, 이런 멋진 스포츠인 F1을 소재로 하는 영화가 개봉을 했다. 요즘 날씨가 너무 덥기도, 혹은 비가 너무 많이 오기도 하여 야외활동을 하기 썩 유쾌하지 않은데, 이번 주말은 시원한 영화관에서 F1을 감상해 보는 건 어떨까? 연인과의 주말 데이트로 추천해 본다.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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