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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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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6,826회 작성일 14-04-29 14:57

본문

내게 철학 관련 책은 쉽게 꺼내 들기 힘든 미지의 영역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철학과 관련된 책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점점 깨닫게 되는 것 같다. 예전 중고등학교 때나 대학교 교양수업에서 시험문제를 맞추기 위해서 공부해야 했던 수고스러운 짐이 아니라 나이 듦에 따른 나 스스로의 좁고 편협한 사고의 폭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겠다는 작은 바람 때문 이랄까? 그래서 더욱 어린 시절에 철학 얘기를 누군가 쉽게 풀어주고 설명해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렇다고 무슨 심오하고 현학적인 철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철학을 말이다. 나 역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 때문에 나중에 정작 삶의 어려움에 처했을 때 쉽게 방향성을 잃고 방황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랑은 없다” 라 이름 붙여진 이 책은 거창한 철학 도서는 아니지만 생각의 폭을 넓히기에는 제법 괜찮은 책일 듯싶다. 책 내용은 19세기 초반 활동한 철학가 쇼펜하우어가 사람의 인생에 관련하여 자신의 생각을 짧고 간결한 수필형식으로 정리한 에세이다. 그만큼 독자들이 읽기에 어려운 내용을 전달하기 보다는 사랑, 행복, 죽음, 정치, 처세, 종교 등 총 11개의 큰 범주로 나누어 자신의 생각을 비교적 쉽게 써내려 간다. 나 같은 경우 침대에 자기 전에 누워 에세이 두 세편씩을 읽어 내려갔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공감이 가는 대목보다는 내가 알고 평소 생각해왔던 부분과 상반되는 면이 많아서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생각을 통해 다른 시각에서 삶에 대해 성찰해 볼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책의 처음 도입부에 쇼펜하우어의 생애와 사상에 대해 역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쇼펜하우어의 허무주의적 염세 철학관에 대한 비판은 각자의 판단에 맡긴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다소 어두운 주제뿐만 아니라 사랑이라는 아직까지는 나에게 낭만과 환상을 가져다 주는 주제까지도 지나치게 무겁고 비관적으로 보는 그의 글은 책을 읽는 내내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갈망하는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물질적 재산과 명예을 얻기 위해 살아봤자 죽으면 모두 허망한 것이 될 뿐이라고 얘기하는 쇼펜하우어의 말은 쉽게 납득이 가지는 않는다. 뛰어난 사업가였던 아버지의 도움으로 평생 돈벌이를 위해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학문 연구와 사색에 몰두해있었던 저자가 가난한 자들의 물질적 욕망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삶의 어두운 부분을 군더더기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저자의 말이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진실 아닌 진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에 허무함이 밀려왔다.

사실 나는 모든 일에 비판적이거나 지극히 현실주의자는 아니다. 어딘지 마음 한구석에 행복한환상을 꿈꾸는 아직은 순수함을 깊이 새겨두고 싶어하는 긍정적 이상주의자에 가깝다. 인생은 초월적이고 고고한 하나의 정답에 끌려가는 것이 아닌 꿈과 신념을 추구하며 완성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쇼펜하우어의 인생론이 나와는 많이 다른 생각을 담고 있지만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닌 그의 생각에 대해 조금은 깊숙하게 들어가서 생각해보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 현자의 생각을 음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보니 끝없이 이어지는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적 가치관들을 마냥 거부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그가 산 시간과 현재가 조금은 차이가 날지언정 시대를 초월하는 진실의 눈은 언제나 통하는 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역시 인간이기에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진실 또한 불완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참고는 하되 자신의 삶의 가치에 맞추어 담드냐 마느냐 최종 판단은 결국 각자의 몫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슴에 와 닿은 고전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한 쇼펜하우어의 말을 옮기며 글을 마친다. “독자들은 새 책이고 신선하다는 이유로 가치의 검증도 받지 않은 채 열심히 읽으면서 위대한 사상가들의 책들은 책상 위에 방치시키는 것이 문제이다.” 짧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준 쇼펜하우어의 인생론. 앞으로도 나와 같은 범인은 생각해 보기 어려운 값진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오랜 역사를 통해 꾸준히 살아남은 고전 명작들을 읽어 보는 시간을 자주 갖기를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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