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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법 패밀리가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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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6,263회 작성일 10-04-16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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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보스포럼을 개최하는 세계경제포럼(WEF)이 매년 발표하는 국가경쟁력순위라는 것이 있다. 지난 2009년 한국의 국가 경쟁력 순위는 총 133개 국가 중 19위로 평가되었다. 이는 지지난해 두 단계 떨어 진데 이어 무려 6단계나 다시 하락한 순위였다. 역시나 노사 간 협력이나 고용 경직성 등의 항목이 국가경쟁력 발목을 잡는 가장 취약한 분야로 평가되었으며 정부의 정책 수행과 법제도 역시 큰 문제가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나 법체계 효율성은 67위로 국가 경쟁력 19위를 차지한 나라의 성적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하위권이었다. 설문조사의 비중이 3분의2 정도로 높아서 경쟁력 순위 자체가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지표로 활용되기 어렵다는 비판이 있지만 IT기술에 기반한 기술경쟁력과 기업혁신 등의 강점요인과는 달리 법체계와 관련된 국가 경쟁력이 매우 낮은 수준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집단이 전세계적으로 하위권의 경쟁력을 갖고 있으니 이것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안 그래도 사법기관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 있는 마당에 이러한 기사를 접하는 국민들이 느끼는 실망감과 불만은 더욱 더 높아져만 갈 것 같다. ‘불멸의 신성가족’은 이러한 아이러니한 상황을 연출(?)하는 이 분야의 핵심 직군인 판사, 검사, 변호사에서 브로커, 법원 공무원, 경찰, 기자, 마담뚜까지 법원 안팎 인사 스물 세 명을 심층 면접하고 이들의 육성에서 우러나온 우리 사법계의 현실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특히나 저자는 그 옛날 사회학자 맑스가 “비평가는 절대로 몸소 사회와 어울려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바우어 일파를 신성가족이라 부른대서 연유하여 그들만의 깨지지 않는 철옹성과 같은 테두리를 형성하고 있는 판사, 검사, 변호사들을 ‘불멸의 신성가족’이라 칭한다. 저자도 물론 이러한 ‘신성가족’ 출신인 법대교수이기는 하지만 그 가족의 일원이었기에 사법계의 과거와 현재의 치부를 누구보다도 직설적으로 그려낼 수 있는 듯하다.

사법계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불신에는 저자가 말한 대로 이들 신성가족과의 의사소통의 부재라는 큰 문제점이 내재되어 있다. 지금 당장 내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해서 법의 도움을 받고 싶어도 그들을 붙들고 내 이 억울한 심정을 일일이 들어줄 법률 전문가가 얼마나 되는가? 즉 인맥으로 칠 법조인이 한 명도 없는 85.8퍼센트의 대다수 시민들에게는 법은 ‘잘 지켜져야 할 대상’이었을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니다. 이렇듯 사실 법은 가까이 하기엔 먼 대상이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의뢰인들은 송사를 함으로서 경제적,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느끼기보단 일찌감치 포기하고 자신의 과실로, 잘못으로 돌리거나 어쩔 수 없는 합의를 함으로써 법적인 해결책을 찾기를 포기한다. 우리 국민은 언제까지 이렇게 사법계에 대한 불신 속에서 법과 동떨어져 살아가야 하는 것인가? 헌법과 법률 및 양심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하게끔 뽑아놓은 판사도 부당한 법적 침해로부터 일반시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 변호사도 모두 그 동안 특권층으로 군림해 온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들이 그러한 지위에까지 오르기 위하여 힘들인 노력은 존중해 주어야 마땅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이 그들을 특권층으로 대우하고 보호해줘야 할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들 역시 국민들의 필요에 의해 선출된 사람들이기 때문에 겸허의 자세로 국민들과 소통해야 한다고 본다.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가 된 그들에 대해 우리가 갖는 불신의 또 다른 원인으로 ‘원만함’의 이데올로기로 점철된 뒤 신성가족의 내부의식구조 문제가 있다. 즉 좋은 ‘평판’을 받아 ‘원만한’ 판검사가 되어 부장판사, 법원장 등으로 승진하기 위해서는 ‘거절할 수 없는 돈’과 ‘거절할 수 없는 관계’ 내지는 ‘청탁’을 원만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행위를 도덕적으로 큰 잘못으로 느끼지 못하는 그들의 사고다. 지금은 많이 깨끗해 졌다고는 하지만 문화라고 하는 것이 그렇게 쉽게 청산되지 못하는 것처럼 이러한 잘못된 의식구조는 우리 사회의 기층에 흐르는 가부장적인 권위주의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해결이 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어두운 과거를 갖고 있는 우리의 사법계에 그래도 저자는 ‘억지로 일지라도’ 희망을 얘기한다. 적은 수지만 그래도 용기 있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판검사들이 늘고 있고 로스쿨 등으로 인한 법률 전문가 인원의 증대는 더디겠지만 언젠가는 법조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단 시일 내에 법조일원화나 판검사의 대폭증원 같은 변화가 일어나기는 힘들 것이다. 그의 말대로 무엇보다 우리 국민 개개인이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그들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별다른 정답이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 법조계 혁신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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