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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귀(屍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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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중건
댓글 0건 조회 6,812회 작성일 10-06-15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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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후덥지근한 여름이 오면 사람들은 공포물을 찾는다. 몇몇 이들은 공포물을 보면서 느끼는 오한이 더위를 물리치는데 효과가 있다고 하지만 원체 그럴걸 못 보는 내게는 이해 못할 현상 중 하나일 뿐이었고, 덕분에 그런 분야에 그다지 조예가 깊지 못하다. 그런 내가 도서관을 거닐며 읽을만한 책을 찾아 헤매다가 발견한 책이 ‘시귀’ 였다. 처음에는 단순히 제목이 특이해서, 또는 평소 손대지 않았던 미지의 분야를 개척해보자는 심보에서 몇 페이지 읽었으나 의외로 흥미진진한 전개에 전권을 읽게 되었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마치 옛날 이야기 같은 면이 있다. 삼면이 산과 전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작은 마을에 외부인이 이사를 오면서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씩 원인 불명의 빈혈 증세에 빠진 뒤, 며칠 후 죽음을 당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돌림병으로 의심을 했지만 의사인 주인공이 죽었던 사람이 다시 거리를 배회하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작가 자체가 일본인이라 그런지 전체적인 소설 분위기는 동양적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시귀’는 살아 움직이는 시체를 뜻한다. 보통 시체가 움직인다고 하면 좀비로 생각하기 쉽겠지만, 이 작품에서 나오는 시귀는 조금 다른 존재이다. 사람처럼 움직이고 생전의 기억도 그대로 가지고 있지만, 다만 주식이 사람의 피일 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 소설이 단순한 공상 소설이상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이미 한번 죽고 다시 일어난 시귀는 더 이상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다른 존재이며,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 사람을 습격한다. 이런 모습은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 다른 모든 생물의 목숨을 취하는 것과 동일한 모습이다. 이런 점 때문에 작품 중에 있는 2명의 주인공 한 명은 자신들의 그 존재들을 심판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하고, 다른 한 명은 고민하는 주인공을 위선자며 나약한 감상주의자라 비난하면서 자기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기적으로 생각하면, 인간이라는 종의 입장에서 시귀라는 존재는 해가 되는 것 그 이상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런 죄책감을 가지지 않고 심판하는 것 또한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들 존재 자체가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우가 생기고, 이로 인해 성급한 판단을 할 수 없다. 돌아가진 부모님의 장례를 마친 다음 날, 집으로 다시 찾아오신 부모님의 모습은 주식이 피로 바뀐 것만을 제외하곤 달라진 점이 전혀 없다. 또는 사람의 피를 마셔야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양심적 가책을 느끼고 흡혈을 거부하는 인물도 있다. 개개인으로 냉정하게 보면 동정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같이 살 수 있는 공생의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의 입장에서 그들을 바라보게 되면 그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소설 자체에서 일어나는 전체적인 상황 자체가 대단히 모호하다. 가해자는 한 때 피해자였었다거나, 혹은 피해자이다. 그리고 그들의 그러한 행위에는 피치 못한 이유와 사정이 있다. 인간도 시귀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짓밟을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이기심이라고 탓할 수 있을까. 공포소설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만큼 공포스럽지 않았고, 단순한 재미를 떠나서 개인과 공동체, 윤리의식 등 온갖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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