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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속에서의 작은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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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문정훈
댓글 0건 조회 6,220회 작성일 10-04-15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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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도가니"를 읽고

이 작품은 실제 광주의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장애인 학생들에 대한 성추행 및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하여 공지영 작가가 인터넷 연재를 하던 것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공지영 작가는 기자들과의 인터뷰 자리에서 “항소심에서 가해자들이 집행유예 등으로 모두 풀려난 사건을 <한겨레> 기사에서 읽은 것이 <도가니>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고 언급하였다. 그녀는 그 기사 하나만으로 기존에 집필 중이던 소설을 중단하고 약자 중에서도 약자인 장애아들의 억눌리고 짓밟힌 울분을 풀어내주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거짓과 위선, 폭력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실화가 바탕이 된 소설이라 마치 TV 프로그램의 현장 고발 같은 시사적 느낌이 강하게 묻어났으며 현실감 역시 강하게 느껴져 소설을 중 이 사회의 블합리성에 대해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다. 외국에서도 이런 논픽션류의 사회적 소재를 대중문학이 참여함으로서 가려진 진실에 대해 알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러한 사건들을 공지영 작가처럼 뛰어난 문학적 역량과 함께 많은 독자층을 보유하고 있는 작가들이 끌어내 준다면 매스컴에서도 미처 완수하지 못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사회의 극단적인 이면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파할 수 있고, 그것을 통해 사회적 문제를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풀어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한 주인공 강인호는 아내의 친구 소개로 광주에 있는 사립학교 기간제 교사 자리를 얻게 된다. 학교발전기금 명목으로 교장에게 뇌물을 바치는 일로 시작된 자애학원 예비교사 생활, 그런데 그가 부임한 후 한 달에 한 번꼴로 사고가 발생한다. 한 명은 절벽으로 떨어졌고 또 한 명은 열차사고로 죽은 청각장애아들. 첫날부터 들려오는 여자화장실 안에서의 괴성. 다음 날, 연두라는 자기 반 학생이 출석하지 않은 사실을 알고 찾아나서 참견했다가, 학원 설립자(이사장)의 아들로 교장 이강석의 쌍둥이 동생인 행정실장 이강복에게 기분 나쁜 핀잔을 듣게 된다. 몸에 멍을 달고 수업에 참가하는 아이들을 보며 강인호는 자애학원에 의문을 품게 된다. 결국 드러나는 자애학원의 교장과 행정실장과 생활지도교사의 성추행과 성폭행. 기숙사 내 구타까지. 바로 그곳에서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 등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상대로 성폭력과 폭행을 일삼았다. 말 한마디 할 수 없는 아이들은 외부와 단절된 학교 안에서 무참하게 유린당했지만, 제대로 듣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눈과 귀를 모두 닫아버린다.
고민 끝에 경찰에 고발, 수사를 의뢰하게 되지만 검찰을 들먹거리는 경찰과 교육청, 시청 사회복지과와 자애학원과의 유착관계만을 확인하게 된다. 다행히 방송국과 국가인권위에서 자애학원의 성추행과 폭력문제, 열악한 식생활문제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국민들의 동정과 자애학원 선배들의 성폭행에 대한 양심선언이 이어졌고, 마침내 경찰이 이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를 연행하여 교장측과 학생측의 법정 공방이 어렵게 시작된다. 하지만 돈과 권력으로 뭉친 더럽고 추잡한 인권은 피해 학생 부모들의 합의로 포장되기에 이르고 자애학원의 장애 아이들과 검사, 인권운동센터, 그리고 강인호를 중심으로 양심선언을 한 선생님들의 끈질긴 저항과 싸움은 어렵게 진행이 된다. 주인공 강인호의 전교조 가입이 불리한 증언이 된데다, 군 입대 전 사귀었던 제자 명희의 자살 사실이 강인호의 책임으로 들춰지면서 더욱 어려운 인권차별의 벽을 실감한다. 이렇게 법정 공방은 거짓과의 투쟁, 이사장의 인권과 장애 아이들의 인권 투쟁으로 대치한다. 하지만 결국 강인호는 해고, 즉 기간제교사 계약해지 통고를 받게 되며, 전관예우 운운하던 보수 판사는 학교 교장과 행정실장, 생활지도교사에게 지역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며 전과가 없고, 피해자의 보호자들이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참작을 들어, 이들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는 것으로 마무리 해 버린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자욱한 안개 속에서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정말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두렵고 어두운 길을 그 소녀들은 감당하기 힘든 묵직한 돌까지 앉은 채 걸어야만 했다. 어린 소녀들의 맑고 순수한 마음과 몸을 사정없이 짓밟는 '현실보다 냉혹했던' 성폭행 장면 등의 묘사와 법 앞에서 들을 수도 말할 수도 없어 딱딱한 돌이 되어야만 했던 수많은 그들(청각장애인) 때문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바로 그 너머에는 얼마나 아프고 더럽고 끔찍한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소설 <도가니>속의 모든 순간들이 가슴속 깊이 남아 무척이나 힘들었다.
작가가 파헤쳐 보여주는 이 사회의 불합리함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도가니>의 배경인 무진시는 바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의 유착관계가 만연한, 선한 얼굴을 하고서 온갖 죄악을 일삼는 위선자들로 가득한,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이 추악한 현실은 언제쯤 걷혀질 것인가. 다수의 노력으로 그나마 깨끗해지고 있던 사회의 건전함도 작당한 몇몇에 의해 금세 흙탕물로 변해버리는 세상이니 더 말해 무엇 하랴. 무진시의 안개가 쉽게 걷히리라 보이지 않는 건 바로 이 때문이리라.
상처입고 절망하는 그 무수한 사람들의 마음은 무엇으로 위로가 되고 치료가 되는 것일까?
이 책은 그런 안개와 같은 사회에 서 있는 사람들, 즉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실제 있었던 사건을 소재로 삼아 더 예민하게 읽히고 그 속에 녹아든 작가가 가진 희망이나 메시지, 그리고 요원하기만 한 현실을 바라보는 냉철한 시각을 읽을 수 있어 소설을 읽는 동안 참 많이 분노하고 이해하고 동참하며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기득권 세력과 맞서는 싸움을 포기하고 아이들과 아이들을 돕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평범한 소시민으로 되돌아가며 눈가를 적시는 강인호의 모습이 보여주는 엔딩이 씁쓸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양심의 승리와 정의의 승리감을 책에서만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던 나의 간절함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작가는 정의와 양심이 승리하는 일시적인 통쾌함을 제공하기 보다는 너무나도 현실적일 수도 있는 마무리를 하면서 우리들에게 남겨진 숙제를 강조하고자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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