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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의 역사적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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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종경
댓글 0건 조회 6,125회 작성일 14-04-29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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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읽을 책을 선정할 때 어렵고 깊은 사고를 요하는 책보다는 직관적이고 straight-forward한 책들이 좋아졌다. 그 만큼 ‘머리 굴리기’ 싫어졌다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경제학자가 쓴 전통 경제학서가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택한 것이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장하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다. 이 책은 현실로서의 경제학 전반에 대해, 그것도 경제학자가 아닌 보통 사람들이 비교적 이해하기 쉽도록 쓰인 책이다.

요즘 모 공중파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는 ‘공부의 신’이라는 드라마가 있다. 기존의 학원 드라마와 달리 ‘일류대만이 살길’이라는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성격을 강조하며 세간의 주목을 끌고 있다. 나도 호기심 반 깜찍한 ‘공신돌(?)’ 배우들 보는 재미 반 해서 가끔 보는데 각설하고 드라마 2회분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대사가 나온다. “이 사회엔 룰이라는 게 있다. 너희들은 이 룰 위에서 살 수 밖에 없다. 이 룰을 누가 만들었겠니. 똑똑한 놈들이다. ~~똑똑한 놈들이 자기들 입맛대로, 자기들 살기 편한 데로, 룰을 만든다. 하지만, 자기들한테 불리한 점들은 어렵게 배배 꼬아놔서, 똑똑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무지 알아채지 못하게 만들어 먹는다. 똑똑한 놈들은, 이 룰을 이용해 평생 잘 먹고 잘산다.”

경제학자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 이라는 책을 읽는 도중 문득 위 대사가 불현듯 머리를 스쳤다. 대사의 ‘똑똑한 놈’을 잘사는 ‘선진국’들로 바꾸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을까? 저자는 나쁜 사마리아인 들로 지칭되는 선진국들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게끔 자신만의 룰(후진국들도 관세정책과 같은 보호무역에서 벗어나 자유무역을 통해서만이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 관점에서의 성장 논리)을 만들고 무지한 후진국들에게 그 룰 위에서 사는 것이 올바른 경제성장 방법임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해 나간다. 그에 따르면 1945년 이후의 세계화에 대한 진실은 기존 우리가 익히 교과서와 언론을 통해 들어왔던 ‘정사(正史)’ 와는 달리 역사적 기록을 왜곡해 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을 비롯한 개발도상국뿐 아니라 과거의 미국, 영국과 같은 현재의 선진국도 보호 무역을 통해서 자국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 왔음을 설명한다. 현재 자유 무역을 주장하는 선진국들은 이미 지난 세기 동안 충분히 경쟁력을 갖춰왔고 따라서 이제는 약소국 시장을 무제한 개방하게 만들어 기술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그들로부터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바탕으로 책 속에서 장하준 교수 자신의 여섯 살 난 아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다음의 구절은 더욱더 공감이 간다. “내게는 여섯 살 난 아들이 있다. ~~아이는 과잉보호를 받고 있으니 좀 더 생산적인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경쟁에 노출시켜야 한다. 아이가 경쟁에 더 많이 그리고 더 빨리 노출될수록 아이의 발전에는 더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아이는 힘든 일을 감당할 수 있는 정신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여기서 여섯 살 난 아들은 개발도상국 혹은 못사는 나라를 의미하는데 이들이 경쟁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신자유주의 관점에서는 되도록 빨리 아들을 노동 시장으로 내보내는 것이 맞다. 왜냐하면 자유경쟁을 통해서만 경쟁력을 획득하고 결국 이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싸움을 제대로 할 능력이 없는 여섯 살 난 아이에게 어른(선진국) 과 그런 공정한 싸움의 룰을 강요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봐도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따라서 그러한 공정한 경쟁 속에 노출되기 전에 시의 적절하게 보호 관세와 보조금 정책 혹은 여러 가지의 형태의 정부 지원을 통해 그 산업이 국제 경쟁을 견딜 수 있을 만큼 육성하는 기간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는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발전을 촉진하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몇 가지 제안으로 마무리를 짓는데 특히나 무엇보다도 제조업이 전반적인 경제성장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저자의 분석은 인상적이다. ‘물론 현대는 탈공업화 시대이니만큼 앞으로 집중해야 할 것 은 서비스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어야 한다’ 는 주장과 달리 우리가 익히 은행업과 관광업으로 먹고 사는 나라로 알고 있는 스위스와 싱가포르 역시 제조업을 기반으로 여전히 번창하고 있으며 역사는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를 근본적으로 나누어 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부자 나라들의 우수한 제조업 능력에서 기인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일견 타당해 보이기도 하는 제언이지만 전세계 모든 나라들이 제조업을 갖게 되는 것이 전지구적으로도 괜찮은 일인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보아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지구온난화 문제로 전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는 때에 모든 후진국들이 선진국의 제조업 개발 모델 등을 따라간다면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학부시절 경제학을 부전공으로 염두에 두었을 정도로 경제학 관련 수업을 여러 개 들으면서 그저 칠판에서 딱 떨어지는 수식과 깔끔하게 정렬된 이론들만 듣고 앵무새처럼 외워가며 마치 제 세상의 이치를 알아냈다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이 책으로나마 주류 경제학에 대한 비판하고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조금이나마 생긴 것 같아 머리 속은 복잡한 반면 마음은 뿌듯해졌다.

세상이 안팎으로 시끄럽다. 내가 자주 보고 있는 모 경제지에서도 끊임없이 공기업 민영화와 한미 FTA 비준안을 위시하여 많은 신자유정책적인 논조의 논설과 칼럼이 몇 일 건너 한번씩 쏟아져 나온다. 무조건 그에 동조하고 의견을 같이 하기 보다는 이 책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한번 정리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책을 모두 읽고 과연 장하준 교수의 제안처럼 긍정적인 미래가 펼쳐질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다. 전 인류가 행복하고 잘 살수 있게 될 것인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기득권은 항상 막강한 우위의 자본과 힘으로 계속적인 왜곡을 시도할 테니까. 과연 가난한 나라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고 세상을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 질지 지켜보아야 할까? 아니 그의 제안해로 모두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하나씩 행동으로 구체화해 나갈 일이다. 이 짧은 서평으로 인하여 이 책을 읽고 몇 사람들만이라도 그러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일조하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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