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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electricity… yeah, like electric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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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5,818회 작성일 09-12-19 0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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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취미가 영화 감상인지라 많은 영화를 보아 왔지만 막상 머리 속에서 떠오르는 영화는 그다지 많지 않다. 가끔씩 혼자서 스스로에게 지금까지 보아온 영화 중에서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가 무엇인지, 어떤 영화를 추천할 만한지 물어보곤 하지만 별다른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아마도 영화를 볼 당시에 느꼈던 감흥을 어떤 방식으로든 표현을 해 본 적이 없어서, 혹은 그 영화에 대해 곱씹듯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지 못해서 금방 잊혀져 버린 듯 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감상문을 쓰려고 시도를 몇 번 해 보았지만 끈기가 부족해 아직 제대로 하질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표현을 자주 하지 않다 보니 표현하는 방식도 많이 서투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나 연극 등을 보고 그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는 것, 난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혼자서 하다 보니 불현듯이 스쳐 지나가는 영화 하나가 떠올랐다. ‘빌리 엘리어트’. 그 영화 중에 주인공 ‘빌리’가 면접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면접관이 빌리에게 춤을 출 때 무슨 느낌이 떠오르냐고 하는 질문에 빌리가 하는 답이..
“I don’t know… just was…”
“…”
“sort of feels good… sort of disappear… flying like a bird… like electricity… yeah, like electricity…”
뭐 무슨 대단한 대사인 것은 아니지만 빌리가 하는 표현… 나라면 과연 어떻게 이야기 하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니, 과연 내가 그러한 대답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떠한 것에 정말 깊게 빠져본 적이 있는가라는 보다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생각이란 원래 연상적이어서 그런지 스스로의 표현의 부족에 대한 생각에서 이제 난 무엇에 미쳐본 적이 있는가라는 생각으로 옮겨져 간다. 어디에 미쳐본 적이 없으니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을 것이고, 그러면 자연스레 그에 대한 표현도 잘 하지 못할 것이다. 영화에서 빌리는 자기가 느끼는 느낌이 막연한 듯 처음에는 표현을 잘 하지 못하지만, 하얀 도화지에 노란색, 하늘색으로 천천히 색칠을 하듯 자기의 느낌을 보다 조금씩, 점점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하는 표현은 flying like electricity이다. 그의 대사가 힘있고 자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가 망설이듯이 하는 대답은 오히려 그로 인해 정말 자기가 느끼는 바를 그대로 표현하게 되었고 나 조차도 그런 느낌에 동화되어 버리는 것 같아졌다. 어린 친구가 얼마나 춤을 사랑하는지 충분히 다가올 정도로. 그러다 보니 이 영화가 얼마나 인상적인 영화였는지 새삼 기억이 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를 잘 모르지만 난 이 영화를 대작이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다. 영국에서 제작하였고, 2000년에 개봉이 되었지만 사실 그다지 많은 관심을 모았던 작품은 아니다. 오스카 상에도 몇몇 부분 후보로 올랐지만 수상은 하지 못하였고, 흥행 역시 실패한 것은 아니지만(흑자를 냈으니) 성공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난 이 영화를 너무나 사랑한다. 영화가 아주 조용하게, 화려하지 않게 알려졌듯이 그 영화의 색깔 역시 그러하다. 화려한 캐스팅도 없고 배경 역시 답답한 탄광촌 마을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 톡톡 튀는 웃음과 활발함의 매력을 주는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내 표현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너무 잘 알기에 적당하게 이야기 하려고 한다.
이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적 배경을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우리의 주인공 빌리는 탄광촌에서 일하는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전형적인 영국 하층민의 막내 아들이다. 영국의 계급적인 사회 구조, 가족 분위기가 그러하듯 형은 아버지, 할아버지가 하던 일인 광부업을 그대로 따라서 아버지와 함께 하고 있으며 빌리는 남자면 당연히 해야 하는 복싱을 과외 활동으로 하고 있다. 때는 영국의 대처리즘이 시작되는 시기로 많은 부분에서 구조조정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빌리의 가족이 일하는 탄광 역시 생존권 투쟁을 위한 파업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와 큰 형이 속한 탄광 노동자들은 매우 불리한 입장에서 흩어지면 안된다는 동지 의식만으로 버티고 있지만 조금씩 포기해버리는 사람들로 인해 그들의 의지는 점차 약해져 간다. 영화에서 정부와 탄광 노동자들의 강한 대결 구도와 못지 않게 영국의 사회적인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아주 강하게 나타나는데, 남자는 복싱이나 레슬링 같은 운동만 해야 하며 여자처럼 행동 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며 수치스러워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빌리는 재미없는 복싱 보다는 춤 추는데 훨씬 흥미를 가지고 있다. 우연히 여자 아이들이 발레하는 것을 보게 된 빌리는 조금씩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하면 안되는 것을 향하게 되었다. 할아버지부터 물려온 권투 글러브를 두고 토슈즈를 신은 빌리는 결국 아버지와 갈등을 하게 된다. 아버지의 눈에는 빌리가 여자 아이들이나 하는 발레를 하는 것은 납득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난 구도가 보여진다. 여자 아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발레를 하는 빌리와 집에 혼자 있을 때 몰래 누나 옷을 입고 화장을 하는 빌리의 친구, 그리고 그러한 점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적인 분위기. 영화는 시작 후 짧은 시간 동안 이러한 구도를 너무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있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예상이 가는 데로 반대하던 가족이 결국 빌리의 능력을 인정하고 힘들게 뒷바라지 해 준 후 빌리는 성공을 하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큰 형. 이제 겨우 20살이 되었을까. 하지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아버지를 따라 광부가 되었다. 그리고 함께 파업을 하는 동지들과 함께 생사를 약속하며 앞장선다. 시대적 흐름은 전혀 보지 못하고 발전적이지도 못한 모습이다. 벗어날 수 있을 테지만 자신은 그 길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이 가지는 쓸데 없는 사회 분위기를 알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영국에서 광부 가족 중에 선생이 나오게 되면 배신자 취급을 할 정도로 자신들이 스스로를 가두는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분위기를 보여준다. 무리(파업, 성역할 등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가차없이 적으로 취급해버리는 것은 주인공 빌리로 하여금 그의 행동이 얼마나 그 시대적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것인지 부각시켜 보여 주게 된다.
아버지. 한번도 자신이 살던 탄광촌을 벗어 난 적이 없다. 자신이 런던을 갈 필요가 없었던 이유는 그곳에 탄광이 없기 때문이란다. 마치 우리들의 아버지처럼 자신이 하는 일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충실하였지만 그들에게 다가온 시련은 그들을 나약하게 만든다. 파업으로 인해 버는 돈이 없어 먼저 하늘로 간 아내가 남긴 피아노를 부셔 크리스마스에 땔감으로 쓰면서 흐느끼는 아버지. 벗어나거나 발버둥 치려고 하지 않지만 가만히 있는 자신들을 묻어버리려는 사회에 저항을 해 보아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적다. 그런 그에게 미래는 보여지지 않고 아들 놈은 계집처럼 춤추고 있으니 미칠 노릇일 것이다. 하지만 그도 결국 우리 나라의 부모님처럼 자식을 위해 평생을 독한 가루가 날리는 땅 속에서 일을 하며 뒷바라지를 하게 된다. 아버지가 아들의 발레 학교 입학을 위한 면접에 드는 비용을 모으기 위해 자신이 그렇게 배신자라고 욕을 했던 무리 속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의 행동이 동료 노동자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을 지는 몰라도 영화를 보는 우리들의 가슴 속에서는 박수를 쳐주고 싶고, 뛰어가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느껴지게 된다. 마치 우리들의 아버지로 보이기에.
이 영화는 이러한 슬프고 어두운 부분만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 영화가 대작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데 신나고 경쾌한 음악을 바탕으로 춤을 추는 빌리의 모습, 전경과 노조간의 데모 다툼 장면을 절묘한 배경 음악으로써 연출한 장면 등을 통해 영화는 숨막히는 긴장감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마치 아이가 세상을 보는 듯한 경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멀리 바닷가가 보이는 언덕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 가족들로 인해 발레를 하지 못하게 되자 그 화난 기분을 오히려 멋지면서 재미난 춤으로써 표현하는 장면 등등 너무나도 신나면서도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 영화는 신나고 발랄하다.
완벽하다. 배우들의 연기는 물론이며 구성, 연출, 음악, 배경, 편집 등 모든 부분에 있어서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그래도 그 중에서 아쉬운 점을 찾으라고 하면 빌리의 형에 대한 묘사가 조금 더 이루어졌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물론 이야기의 전개 상 형의 비중이 아버지보다 적을 수 밖에 없지만 형은 빌리의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이 되기 때문에 그 자신이 가지는 심정이나 입장 등을 조금 더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마지막에 빌리가 성장해서 발레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보다는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 가족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만나 포옹을 하며 즐거워하는 장면과 함께 벽에 있는 사진을 통해 빌리가 발레리노로써 성공하였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것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가 단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한 천재 아이가 가족의 희생으로 인해 성공하게 되어 가족에 다시 보답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거스트 러쉬와 같은 형편없는 영화와도 비교하고 싶지 않다. 게다가 난 영화를 보면서 빌리가 천재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다른 아이들보다 춤을 추는데 있어서 표현이 조금 더 좋다고 생각했다. 다만 빌리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시대적으로 그리고 사회적으로 금기 시 되어 있는 발레에 자신을 던지고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욕구를 숨기지 않고 과감하게 드러내는 용기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선택한 것에 대해 후회나 좌절 등을 하지 않고 끊임없이 나아갔다.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에게 주어진 재능이나 가족의 희생 등이 아니라 그의 용기와 의지일 것이다. 친구들은 물론이며 가족과 함께 혹은 한창 꿈을 꾸는 청소년들에게 적극 추천하고 싶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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