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나는 얼마만큼 나의 의지를 가지고 살아 왔나.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송승민
댓글 0건 조회 6,158회 작성일 14-04-11 14:05

본문

모든 일들이 계획하였던 것처럼 이루어지고,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모든 사람들의 바램이겠지만 우리는 미래를 확신 할 수 없기 때문에 다만 꿈꾸며 살아갈 수 밖에 없다. 그러는 과정에서 아픔을 겪는 일들은 항상 존재한다. 사람이 성장한다는 것은 이러한 아픔을 겪어가며 자기 스스로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나는 부끄럽게도 나를 알아가려는 길을 가기 보다는 지뢰 밭 사이로 안전하게 지나간 남들의 발자국을 따라가듯 다른 이들의 뒷모습만 보며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그 길을 가게 되면 다른 이들처럼 순탄하게 살아갈지 모르겠지만 그 길은 내 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내가 나를 찾기 위해 지나야 하는 사막 앞에서 방향을 잃어버릴 것을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발 한 자국 제대로 내딛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 한때, 아프고 힘들지 않았다면 어떻게 지난날을 ‘축제’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 황석영씨의 ‘개밥바라기 별’을 읽은 뒤 난 얼마나 화려한 축제를 보내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개밥바라기 별’에서 준이가 자퇴를 결정한 이후 학교를 떠날 때 그는 알고 있었다, 이제는 남들처럼 화려하고 좋은 길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마땅한 미래의 계획은 없었다. 다만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느끼는 데로 발길을 옮기었다. 어쩌면 그가 장남이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예상하는 것과는 정 반대의 길을 가는 것에 대해 당황스럽게 느낄지 모른다. 그리고 그의 밑도 없는 자신감이 어떻게 자신의 미래를 책임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단순히 아집을 가진 청년으로 꾸짖을 수도 있다. 그렇다. 그는 남들이 옳다고 좋다고 하는 것들도, 그래서 모든 이들이 하는 것들도, 자신이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로 과감하게 내쳐버린 ‘어리석은’ 학생이다. 하지만 그에게 미래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자기가 감당해야 할 그 엄청난 불안함과 불확신에 대해 몸서리를 칠 정도로 두려워하였을 것이다. 그런 그가 왜 그러한 길을 걸어 간 것 인가. 흔히 알려진 ‘엘리트 코스’를 거쳐가 성공한 다른 이들을 보면서 과연 준이는 자신의 인생을 그들과 비교하며 후회하며 살아갈까. 하지만 나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신이 가진 뚜렷한 자기만의 가치들을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갔기 때문에 설사 그가 죽음으로써 자기를 버리려 한 경험이 있더라도 그의 지난 인생은 ‘화려한 축제’로 여겨질 것이다.
2010년. 올해로 계란 한판을 채우는 나이가 되었지만 겉모습만 제외하면 아직까지도 난 10년 전의 나에 비해 크게 어른스러워졌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나의 또래나 형, 아우들을 만났을 때 그들로부터 매우 어른스러움을 느낄 때면 그들은 어떻게 지내왔는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그것을 왜 궁금해 하랴. 그럴 필요가 없어야 하는 것이다. 지난 날들이 나를 위하기 보다는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을 많이 의식하며 지내왔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부끄럽게 여겨질 지 모른다. 이제는 머리가 커 버려서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더욱 커졌겠지만 나의 축제를 위해 천천히 한 발씩 내딛어 보아야 하겠다. 세상이 나를 어떻게 여길지 고민하기 보다는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그게 자신을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