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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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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유진
댓글 0건 조회 6,170회 작성일 10-03-15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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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김정현 作, 1996)

‘아버지’는 내가 처음으로 접한 장편 소설로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지만 그 때문에 가족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한 가장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 간의 눈물겹고 진실한 사랑을 이야기한 소설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독서를 해보고자 책장에 있는 가장 얇은 소설책으로 골라 읽기 시작했는데, 당시 사고로 친구를 잃었던 때여서 그런지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낸다는 내용에 읽으면서 감정이 벅차올랐었다. 최근에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이야기한 Luther Van Dross의 ‘Dance With My Father’라는 노래를 듣고 생각이 나 다시 읽어보았다.

주인공인 정수는 50대 공무원으로, 약간 무뚝뚝하며 무관심해 보이지만 이지적이고 아름다운 부인 영신의 남편이고 예쁘고 똑똑한 딸 지원과 기운찬 아들 희원을 둔 아버지이다. 가족들이 표면적으로 자신에게 감정을 표현하진 않지만, 화목한 가정으로 서로에게 깊은 애정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하는 정수는 자신의 삶이 불만스럽지 않다.
50대에 들어서 점점 약해지는 몸을 보며 동년배들이 대개 겪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찾아오는 증상이라 생각하며 개의치 않지만, 오랜 친구이자 의사인 남 박사는 그에게 췌장암을 통보한다. 시한선고를 받은 정수는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 집에 얘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술로 달래며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이런 정수를 바라보는 부인 영신과 두 자녀, 특히 장녀 지원의 시선은 곱지 않다. 지원은 폭음으로 제 몸 하나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소홀히 대하는 정수가 밉고 부끄럽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아버지 곁을 지키는 어머니 영신이 측은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정수와 가족들이 서로를 바라보는 감정의 불균형은 커지게 된다.
얼마 남지 않은 기간이기에 자신을 위해 쓸 수도 있지만 정수는 가족들에게 자신의 짐을 지우고 싶지 않다. 가족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주변을 정리하고 가족들이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도록 작은 가게를 알아보는 등 고통을 인내하며 후속 조치에 대해 고민한다. 하지만 사정이 있는 술로 인해 정수에 대한 가족들의 경멸과 멸시는 더욱 커져만 가게 된다. 결국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불신이 극에 달한 지원은 아버지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편지로 표현하게 되고, 가족들에게 소외받는 존재임을 깨달은 정수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그러던 중 고급 요정에서 일하는 소령이라는 아가씨를 만나게 된다. 중년, 그리고 자신에게 있어 황혼의 시기에 갑작스레 찾아온 감정에 당황하지만, 정수와 소령은 그 안에서 서로 일찍이 누리지 못했던 평안을 느끼게 되고 점점 의지하게 된다.
점점 통증이 심해져가는 정수를 보며 남 박사는 영신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사실을 알게 된 정수의 가족들은 슬픔에 잠긴다. 특히 정수에게 무관심과 불만을 직접, 간접적으로 표출해왔던 영신과 지원은 크게 절망하며 정수를 찾아가 사과한다. 그렇게 정수는 일찍이 생각했던 자신에 대한 가족들의 사랑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고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병원에 입원한 정수는 가족과 친구인 남 박사, 장 변호사에게 많은 도움을 받지만, 몸의 급격하게 쇠약해져 간다. 가족, 친구 그리고 영신의 도움으로 다시 만난 소령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고마움을 느낀다. 고통이 더욱 심해져 괴로워하는 정수는 이제 자신을 편안히 놓아 줄 것을 부탁하고, 이에 남 박사는 그의 자살을 도와주고 정수는 생을 마감한다.

책을 처음 접했을 때는 1998년으로 당시 우리나라는 IMF를 맞아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고, 이는 가정에도 영향을 미쳐 가정불화와 붕괴 등의 사회 문제가 대두되었었다.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을 통해 가족 간의 사랑을 재확인하며 이를 감동적으로 서술한 ‘아버지’는 이러한 사회상과 맞물려 많은 인기를 얻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인물들 사이에 나타나는 갈등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가족들의 원성을 들으면서도 굳이 병을 숨기는 정수와 그런 정수와 가족을 대하는 남 박사와 장 변호사의 태도 그리고 정수와 소령의 관계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특히 영신이 소령에게 남편의 마지막을 위로해 줄 것을 부탁하는 장면은 나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지 않음에도 영신이 아내로서 느꼈을 무력감과 치욕이 느껴지는 듯 했다. 20대가 되어 길지 않지만 그 동안에 경험을 통해 다시 생각해보니 이러한 관계와 행동들이 비록 소설의 극적인 연출을 위해 조금 과장된 점도 있다고 생각되나, 사람과의 관계에서 요구받을 수 있는 행동들이 비단 책임과 의무로 이를 대하기보다 이해와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그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몇 가지 키워드 중에서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단어를 남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머니라는 단어가 가장 마지막에 남는데 비해, 아버지를 마지막까지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가장에 대한 경제력 의존도가 90%에 달하고 가장을 포함한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들이 이를 당연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일반적인 가정의 경우 이러한 가장의 역할을 아버지가 맡고 있는데 이러한 사회 전반의 분위기에서 가장이 느끼는 책임감은 여느 나라에 비해 막중하다고 한다. 때문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일에 열중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대개 이러한 노고를 인정받기는 커녕 일에 바빠 가족에게 무관심한 늘 피곤해하는 부족한 아버지로 남게 되고 소외받는 존재가 된다고 한다. 암이라는 불치병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자신을 하얗게 태워가면서도 가족들을 먼저 걱정하는 정수의 모습은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많은 아버지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동안 당연시 해왔던 아버지의 존재에 대해 처음으로 깊게 생각해보게 되었고, 더 나아가 내가 이루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해 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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