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표 천일의 기록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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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다. 잘되지 않는 연구에 지쳐 있다 뭔가 머리를 식히고자 하는 마음에, 학교 내 서점이 문을 닫기 5분전에 달려가 친구가 추천해 준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사들고 계산대로 향하던 중이었다. 주로 인기 있는 책들을 죽 늘어놓는 선반에 서남표 총장님의 사진이 실려 있는 책이 있는 것이었다. 좀 있으면 서점 문을 닫는 다는 아저씨의 말에 마음이 조급했지만 호기심에 책장을 넘겨보았고, 총장님께서 6.25시절 어려웠던 자신의 생활과 연락이 두절되었던 아버지, 실종된 형에 대한 이야기를 빠르게 훑어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몇 분 뒤 서점이 닫는 것이 아니었다면 책을 더 읽고 가고 싶었지만 다급해진 마음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구입하고 기숙사로 향했다. 방에 도착했지만 서남표 총장님의 책을 읽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빠른 걸음으로 걸어 들어갔다. 다행히 같은 책이 비치되어 있어 빌려와 그날 저녁 새벽 3시까지 가슴 떨리는 생동감을 느끼며 빠르게 읽어 나갔다.
어린 시절 유복한 집안에 태어났지만 전쟁을 통해 집안은 쑥대밭이 되어갔고, 총장님은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된다. 다행이 영어와 낯선 미국 환경에 빠르게 적응해 갔고 MIT 기계 공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뭔가 큰 그릇이 될 사람은 정말 다른 것일까? 총장님은 집안 사정이 좋지 않으니 혼자 힘으로 공부하라는 아버지의 편지를 받게 되고, 기숙사 청소, 도서관일 등등을 통해 돈을 벌어가며 공부를 계속해 나간다. 이쯤 되었을 때부터 나는 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만약 저러한 처지에 있다면 그 상황을 총장님처럼 달갑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지... 맛있는 음식과 멋진 옷으로 화려해야만 하는 나의 20대를 왜 이렇게 보내고 있느냐고 혼자 우울해 하는 나의 모습만이 상상될 뿐이었다. 뿐만 아니라 총장님은 일주일에 3일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3일은 길드 플라스틱이란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단순히 주어진 일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정과 기계를 발명해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한 특허를 낸다. 뿐만 아니라 USM이란 회사에서도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해결해 그 능력을 인정받고, 그 후 박사 과정도 20개월이라는 단시간에 마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 준다. 박사과정도 아무런 조건 없이 USM회사에서 등록금과 생활비까지를 지원받게 된다. 이 부분을 읽어 나가면서 총장님의 뛰어난 능력이 부럽기도 하고 내 자신이 부끄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동안 나는 이렇게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아왔는가. 처음 대학에 입학해 새벽까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던 학부시절의 열정은 언제부터 서서히 사그러 들었던가. 나는 정말 나의 실력을 키워왔는가, 아니면 단순히 높은 학점을 받기위해 빈껍데기 뿐인 지식만 축적해 온 것인가. 정말 이 길이 나의 길이 맞는 것일까, 정말 이 길이 맞다면 총장님과 같이 짧은 기간 안에 어떤 성과를 냈어야 하는 건 아닐까......등등 박사 진학과 앞으로의 인생계획에 대한 생각 등 많은 것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총장님의 인생행로를 보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기회는 언제나 나는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총장님은 작은 회사, 큰 회사, 작은 학교, 큰 학교, 미국 정부 관료 등 많은 일들을 해왔지만 모든 일들은 총장님이 아닌 상대 쪽에서 제의해온 일이었다. 그 사람의 능력을 보고 다양한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또한 총장님은 언제나 변화와 개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와 개혁은 단일적이고 각자가 서로 판이하게 존재하는 개혁이 아니다. 총장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거나 계획할 때 ‘목적’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방법을 수립하고, 또 그 세부적인 계획과 방법을 수행하기 위한 하부의 방법을 세우시는 분이란 것을 알았다. 다시 말해 모든 변화와 계획은 어떤 큰 목적아래 디자인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이다. 부끄러운 이야기 이지만 정작 내가 카이스트 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테뉴어 제도, 100%영어강의 등 서남표 총장 재직 후, 학교에 찾아든 여러 가지 정책들의 변화에 큰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었다. 주로 뉴스 기사를 통해 뭐 그냥 그런가보다, 또 다른 변화를 시도하는 구나, 정도로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 모든 변화가 총장님의 커다란 청사진을 이뤄나가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시행되고 있다는 사실과 그 목적이 바로 ‘세계 제일의 공학 대학을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쯤 되었을 때 나는 갑자기 마음속에 우리학교와 총장님에 대한 자부심이 마음속에 한껏 부풀어져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너무 오랜 시간 같은 환경에 존재해서 일까? 아무 감정 없이 받아들이고 있던 나의 주변 환경을 다시 새롭게 볼 수 있었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이 책을 읽고 나를 변화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잘 준비된 사람,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은 그러한 기회를 얻지 못한 사람들을 도와야 하고 인류의 대의를 이루는 데 기여해야 한다는 총장님의 말씀이 내 가슴 속에 깊이 있게 와 닿았다. 나 역시 그렇다. 한번뿐인 인생 대충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그저 현실에 수긍해 가면서 살고 싶지 않다. 가끔 잘 되지 않는 연구와 반복되는 일상과 같은 환경에 익숙해져, 아무런 감흥과 목적 없이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 책이 던져주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매 순간 매사에 열정적으로 살아가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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