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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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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윤호
댓글 0건 조회 1,427회 작성일 25-05-04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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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존재

-이석원-


 모던 록 밴드 ‘언니네 이발관’의 리더 이석원은 1971년 태어나 1995년 보컬·기타리스트로 데뷔했다. 그렇게 꾸준하게 활동을 이어가던 그는 3집과 4집 앨범이 인디 신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며 인디씬을 대표하는 밴드로 성장하였고, 해를 거듭할수록 자신들만의 음악적 색채를 더욱 뚜렷하게 드러냈다. 그런 그가 2008년 발표한 5집 '가장 보통의 존재' 는 밴드의 정체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으로 거듭났다. ‘가장 보통’이라는 수식어 속에 감춰진 예민한 감수성과, 결국 우리 모두는 특별한 영웅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임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태도가 공존한다는 뜻을 전하고자 한 이 앨범은 2009년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음반’을 비롯해 모던 록 부문을 석권하며, ‘보통이지만 완전한’ 언니네이발관의 미학을 대중에게 각인시켰다.


 그리고 바로 그 해, 이석원은 자신의 내면 풍경을 음악이 아닌 글로 풀어내기 시작했다. 2009년 11월 출간된 산문집 '보통의 존재'는 커피 한 모금, 빗물 맺힌 창가, 오래된 사진 속 기억처럼 누구나 공감하지만 쉽게 드러내지 못했던 일상의 작은 순간들을 포착하고, 솔직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풀어냈다. 노랫말로 다할 수 없었던 내면의 질문과 위로를 에세이라는 형식으로 확장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오늘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가족 중에 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 빚쟁이들의 빚 독촉 받을 일이 없는 것, 먹고 싶은 라면을 지금 내 손으로 끓여먹을 수 있다는 하찮은 것들뿐이라 해도 누가 뭐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러한 행복의 크기가 결코 작은 것 또한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만약 체념에서 비롯된 행복이라면,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하고 싶은데 그 모든 욕망들을 어쩔 수 없이 꾹꾹 누르고,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많은 영화에 일찌감치 백기를 든 대가로 주어지는 것이라면 그건 자신에 대한 기만이 아닐까.’


  대개 독자는 책에서 자신의 생각을 발견한다고 한다. 이미 체계화된 생각이든, 그저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이든, 타인의 글에서 자신의 생각을 닮은 구절을 발견할 때 우리는 모종의 위로와 지지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감정은 단순히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을 때도 존재하고, 이와 같은 발견의 기쁨을 주기 위해서는 글에 솔직함이 요구된다. 그래서 작가는 용기, 혹은 뻔뻔함이 요구되는지도 모른다. 이 책에서 작가는 마치 일기장을 펼쳐 보이듯 에세이 형식으로 내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그동안 스포트라이트 아래 느낀 외로움과 압박감, 무대 위와 무대 밖의 경계에서 흔들리던 마음은 이 책 곳곳에 은유처럼 스며 있다. 비록 그는 “음악이 일이 되어 버린 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며 2017년 은퇴를 선언하고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글쓰기를 통해 그의 마음과 신념은 더욱 단단해진 것 같기도 하다. 이후 그는 한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말을 한다. 오늘날, 베스트셀러 코너의 책들이 하나같이 “당신은 특별하고 소중하다”고 말할 때, 누군가 한 명쯤은 “당신은 평범해요.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고요. 그런데 그게 뭐 어때서요?” 라고 말해 주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의 신념이 더욱 잘 드러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평소에도 나는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노래를 즐겨 들었다. 기타반주 하나로만 전개되는 이 노래는 굉장히 평온하면서도 매력적인데, 이러한 곡의 분위기가 에세이에도 고스란히 배어 있는 듯 읽는 내내 편안하였다. 또한, 이 에세이를 통해 그의 삶과 음악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엿볼 수 있었다. 그가 데뷔한 1995년 홍대 앞 작은 공간에서 노래를 시작하여 2008년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앨범으로 보통의 아름다움을 설파하고, 2009년 '보통의 존재'로 평범한 일상 너머에 숨은 깊은 울림을 전하기까지 말이다. 이후 책장을 덮는 순간, 이석원의 목소리가 스피커 너머가 아닌 내 안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특별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평범한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 삶의 가장 큰 울림이 된다고. 노랫말이든 에세이든, 나의 마음을 흔든 그의 진솔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2017년 은퇴 선언 이후 다시 8년 만에 복귀선언을 하며 무대에 설 그가 전할 다음 노래도 분명 같은 마음으로 다가올 것이라 믿으며, 오늘 밤 다시 그의 앨범을 들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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