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번의 삶
페이지 정보

본문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을 읽고
김영하 작가의 『단 한번의 삶』은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책이다. 삶에 대한 철학적 사유가 간결한 문장 속에 담겨 있으며, 그 어떤 거창한 이론보다 진심 어린 언어가 깊은 울림을 준다. "우리는 인생을 리허설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작가의 문장은 마음에 날카롭게 꽂혔다. 지나간 시간을 다시 돌릴 수 없다면,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유일한 무대이며, 우리는 그 무대의 배우로서 숨을 쉬고 대사를 내뱉고 있는 셈이다. 작가는 삶을 실패 없이 통과할 수 있는 ‘완벽한 계획’ 따위는 없다고 말하며, 후회조차도 자신의 삶을 살았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라 조언한다. 그 말은 실패를 두려워하느라 주저하던 내게 모종의 자유를 허락했다.
책을 다 읽고 며칠 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강명희 작가의 "방문" 전시를 찾았다. 봄 햇살이 가볍게 내리쬐던 오후였다. 입구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익숙한 일상과는 다른 시간의 밀도를 느꼈다. 강명희 작가의 작품들은 잊힌 공간, 오래된 물건, 그리고 누군가의 흔적 같은 것들을 소재로 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어딘가 정적이고 서늘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따뜻함이 배어 있었다. 나는 그림을 보며 작가가 지나온 시간과 감정의 한 조각을 상상했고, 그 모든 것이 "단 한번의 삶" 속에 남긴 기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어쩌면 저렇게 스쳐간 자리들, 사소한 물건들, 미처 말하지 못한 감정들로 채워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전시를 관람한 친구는 나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그림을 보고 있었다. 나는 작품이 주는 전체적인 분위기와 감정의 흐름에 집중했다면, 그 친구는 작품의 구도와 채색, 질감의 표현 방식에 주목했다. 우리는 한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서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이 그림, 마치 누군가의 기억 속 공간 같지 않아?”라고 말했고, 친구는 작품에 대한 전체적인 느낌 대신 한 작품 안에 다양한 구조가 존재하는 점과 그 구도를 표현한 기법에 주목했다. 같은 그림을 보면서도 다른 감각과 언어로 해석하는 그 순간, 예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열려 있고,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다면적인지를 새삼 느꼈다. 마치 『단 한번의 삶』 속에서 말하던 '각자의 시선'처럼, 우리는 모두 고유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느꼈다.
전시를 마치고 우리는 덕수궁 돌담길을 천천히 걸었다. 연휴의 여유로움이 거리 곳곳에 묻어 있었다. 아이들이 뛰놀고 연인들이 사진을 찍으며 웃는 모습 속에서 삶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단 한번의 삶』 속 문장이 떠올랐다. “삶은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통해서만 살아질 수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나 과거에 대한 미련이 아닌, 그저 햇살과 바람, 걷는 속도, 그리고 곁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삶을 가득 채우는 감각. 그것만으로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평범한 하루가 어느새 내 인생의 ‘단 한번’이 된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강렬하게 느껴졌다.
그날 저녁 우리는 청계천으로 향했다. 어스름한 조명 아래, 물소리와 함께 걷는 산책은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냈다. 각자의 삶에 대해, 요즘의 고민에 대해, 지나간 후회와 앞날의 불확실성에 대해. 친구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를 끊지 않고 들었고, 그 순간만큼은 진심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책이 말하던 것처럼, 인생은 완벽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아름답다고 느꼈다. 청계천 위로 부드럽게 흘러가던 그 밤공기와 우리의 목소리들, 그것들 역시 이 삶을 구성하는 단 하나의 장면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