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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불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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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유찬미
댓글 0건 조회 1,409회 작성일 25-05-13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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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불가마

- 정소정 -


 5월인데도 아침저녁으로는 바람이 차다. 이럴 땐 뜨거운 탕 속에 몸을 푹 담그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몸을 따뜻하게 지지고 싶은 날이면, 어릴 적 엄마 손을 잡고 가던 동네 목욕탕이 떠오른다. 2주에 한 번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고 땀을 빼던 그 시간은, 어린 나에게는 일상의 쉼표 같은 순간이었다. 대전에 올라온 이후로는 그 풍경도 기억 속으로만 남아 있었는데, 정소정 작가의 『꿈의 불가마』를 통해 나는 다시 그 온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잊고 지낸 위로의 감각을 조용히 되살려주는 이 소설은, 무심한 하루를 보듬는 따뜻한 불빛처럼 마음을 데워준다.


 그렇게 따뜻한 기억을 더듬으며 읽게 된 『꿈의 불가마』는 단순한 소설이라기보다 지친 하루 끝에 받는 위로의 찜질처럼 다가온다. 사람은 누구나 버거운 날이 있다. 그럴 때 어떤 이들은 한 장의 목욕권처럼 예상치 못한 계기를 통해, 자신조차 몰랐던 안식처로 향하게 된다. 이 소설은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초대장이다. 지친 일상, 식어버린 마음, 꺼져버린 꿈을 안고 미선관이라는 불가마 속으로 발을 들인 주연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모두에게도 그곳의 온기가 스며드는 듯하다.


 소설은 취업과 인간관계에 잇달아 좌절한 스물아홉의 주연이 허름한 원룸에서 수도관이 터지는 사고를 겪고, 우연히 발견한 목욕권을 따라 미선관이라는 여성전용 불가마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첫인상은 낯설고 이상하지만, 그 속에서 주연은 다시금 숨을 쉬기 시작한다. '대장 언니', '이쁜 언니', '얼음 언니', '카운터 언니' 등 미선관의 언니들은 이름 대신 별칭으로 불리며, 서로의 나이나 배경을 묻지 않고 오로지 존재 자체로 마주하며 땀을 흘린다. 그 안에서 주연은 '뿔 언니'가 되어, 언니들과 땀과 이야기를 나누고, 상처를 씻고, 마침내 다시 꿈을 품는다.


 작가는 이 불가마를 인생의 축소판으로 표현한다. 지옥처럼 뜨거운 열기를 견디는 과정은 마치 인생의 고통과도 닮아 있으며, 그 안에서 피어나는 연대와 위로는 우리가 삶 속에서 간절히 바라던 감정들이다. 특히 계절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막의 풍경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삶을 상징하듯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고, 그중 봄 막에서 주연의 피부 위에 피어난 붉은 열꽃은 사랑의 비유로 읽히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 소설의 감동은 거창한 서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놓치고 살았던 소소한 일상, 이름도 나이도 관계없는 진심 어린 대화, 그리고 지친 몸을 맡기고 흘리는 땀 속에서 얻는 치유의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낸 감정의 진폭이 이 소설의 힘이다.


"왜, 사람도 그렇잖아. 가끔씩 너무 애만 쓰면 힘들기만 하고 더 잘 안 되잖아. 그러니까 물을 줘야 돼. 막도 사람도."


 "사람도 막도 물이 필요하다."는 대장 언니의 말처럼, 인생에는 단단히 버티는 시간뿐 아니라 흠뻑 적셔주는 시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때로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달리는 삶에 물을 주는 것, 그러니까 스스로를 돌보고 쉬어가는 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떠올리게 만든다. 작중 주연이 평상에 누워 마음의 문을 닫고 스스로에게 물을 주기로 다짐하듯, 우리 또한 복잡하고 번잡한 일상 속에서 잠시 멈추고 숨 쉴 공간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 문장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자기 자신을 살피고 보듬는 삶의 태도를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돈 좋지. 근데 돈이 있어도 이게 없음 소용이 없어. 그게 뭔데요? 필요하지 않은 걸 필요로 하는 마음."


 "필요하지 않은 걸 필요로 하는 마음"이라는 액세서리 언니의 말은 사소한 사치를 허락하는 감정적 여유의 가치를 일깨운다. 이는 단순히 소비를 권하는 말이 아니라, 삶의 최소한만으로 버티려 애쓰는 이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조언처럼 느껴진다. 마음속 균형을 잡고 스스로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꼭 필요하지 않은 것들을 바라볼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진짜 '여유'라는 사실을, 이 짧은 대사는 조용히 전한다.


 『꿈의 불가마』는 말한다. 더 잘하라는 채찍보다, 괜찮다고 안아주는 온기가 지금의 우리에게 더 절실하다고. 누구도 외롭지 않게, 각자의 막 속에서 천천히 익어가며 다시 단단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소설이 전하는 삶의 방식이다.


 인생의 불가마 속에서 오늘도 우리는, 조금씩 달궈지고 단단해지는 중이다. 그리고 어쩌면, 너무 단단해지기 전에 잠시 누워 쉴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일까, 오늘은 괜스레 가까운 찜질방이라도 찾아가고 싶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흘리는 땀이 몸을 녹이듯, 나도 잠시 마음을 풀고 싶은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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