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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찾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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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호석
댓글 0건 조회 1,440회 작성일 25-05-1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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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에서 찾는 하루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을 읽고-

 


철학은 우리가 왜 사는가? 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시작한다.

또 철학가는 삶의 결핍으로부터, 그리고 고통과 의문점으로부터 자신의 철학을 수립한다.

작가 에릭 와이너는 철학과 세계 여행이라는 두 가지 열정을 결합하여 루소부터 니체, 공자부터 시몬 베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의 위대한 사상가들로부터 삶의 교훈을 찾아가는 순례를 떠난다.

그는 기차를 타고 여러 나라들을 여행하며 철학의 본래 목적, 즉 더 지혜롭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는 법을 재발견하려 했고, 그의 글은 오늘날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쩌면 하나의 이정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이를 나누고자 한다.

 

책은 세 부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의 글은 하루의 흐름으로 인생의 단계를 연상시킨다.

 

새벽

새벽에는 아기가 침대에서 일어나 오감을 깨우고 걷는 것이 연상된다.

인생이자 철학은 단순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To rise or not to rise.

단순히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가 아니라, 왜 일어나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인 것이다.

 

“I’ve always suspected that at the heart of my inability to get out of bed lies an insidious self-loathing, one I can’t fully acknowledge.”

- Marcus Aurelius -

 

철학자이자 로마의 황제였던 마르쿠스는 자신이 침대에서 일어나기 힘든 근본적인 이유는 인정하기 어려운 자기혐오 때문이라는 것을 용기 있게 인정한다.

그는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향해 말한다.

"지금 내가 이불 속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불 속에 머무르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책무(duty)'가 있다. 이는 외부의 강요인 '의무(obligation)'와는 다르다. 책무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다. 우리가 책무에 따라 행동할 때, 우리는 자발적으로 자신과 타인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반면, 의무는 외부의 결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동적인 행동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침대에서 일어날 때 가장 큰 장애물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을, 그리고 우리 주위 사람들을 일으켜 세워야 할 책무가 있다.

 

 

정오

정오에는 성장하여 인생을 정열적으로 삶아가는 젊은이가 연상된다.

 

“Our lives are no less and no more than the sum of our most rapt moments.

The higest ecstasy, is the attention at its fullest.”

- Simone Adolphine Weil -

 

우리 주의력의 질은 삶의 질을 결정한다.

우리는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대상이며, 더 중요한 것은 ‘어떻게’ 주의를 기울이느냐이다.

시몬 베유가 말하는 ‘순수한 주의’는 외적인 동기, 즉,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목적이 없는 상태이다.

‘순수한 주의’란 ‘몰입(flow)’과 유사하다. 이 상태에서는 자기 인식이 사라지고, 시간 감각이 왜곡되며, 현실이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치 음악가가 아닌 음악만 있고, 무용수가 아닌 춤만 존재하는 순간이다.

 

누군가가 전심으로 어떤 일에 몰두한다면, 눈에 띄는 결과가 없더라도 진보가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순수’하고 ‘수동’적인 주의력으로 정열적인 삶을 만끽해야 한다.

 

 

황혼

황혼에는 인생을 멋지게 정리하여 죽음을 준비하는 노년의 모습이 보인다.

 

“I want to learn more and more to see as beautiful what is necessary in things; then I shall be one of those who make things beautiful.

Don’t love life despite the suffering, but because of it.”

- Friedrich Wilhelm Nietzsche -

 

불확실한 세계 속에서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태도이다.

철학자 니체는 확실성을 추구하지 말고, 불확실성에서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고통을 삶에서 피할 수 없는 요소로 보았고, 이를 통해 성장한다고 믿었다. 그는 “오직 고통만이 지식을 가져온다”고 말하며, 고통을 예술이나 은둔으로 피할 것이 아니라, 삶과 더 깊이 교감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모든 철학을 ‘디오니소스적 삶’이라고 불렀다. 이는 술, 예술, 열정을 사랑하는 그리스 신 디오니소스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이러한 시각의 전환은 미묘하지만 강력하다. 같은 삶이지만, 태도가 달라지면 삶이 완전히 달라 보일 수 있다.

니체가 말했듯,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운명을 사랑하자.

이것이 바로 후회 없이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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