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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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
- 프랑스 현대 화가 Guy Buffet 의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를 보고, 그 감상에 대하여 -
5월의 어느 날. 우연히 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그림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3초를 웃고, 30분을 멈춰 있었으며, 3일간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The making of the perfect Martini’ (2000), Guy Buffet (1943~2023)
마지막 그림에서, 흐트러진 머리카락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 모든 것이 끝난 듯한 장면에서는 완성된 마티니가 가만히 놓여 있고, 바텐더는 다시 처음의 위치로 돌아온 듯 조용히 서 있었다. 그의 그림 중 가장 정적인 점이 닮은 첫 그림과 마지막 그림이었지만, 단 하나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었다. 바텐더의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 사소한 어긋남은 다시 그 이전의 모든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거칠게 흔들리고, 넘치고, 튀고, 무너지던 순간들. 우리가 흔히 ‘과정’이라 부르는 그 모든 과정들이, 마지막 한 컷에, 딱 그 머리카락의 흐트러짐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Guy Buffet 의 「The perfect making of Martini」는 분명 웃음을 유도하는 작품이자 화가의 독창성이 잘 표현된 일러스트이다.
그림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기고 난 뒤, 그 웃음이 나에겐 허탈함과 다르지 않았다. 시작은 완벽하게 정돈되었고, 끝은 명확한 결과물과 함께 또렷하게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중간이었다. 우리는 그 중간을 너무 쉽게 잊는다. 사회도 그렇다. 어떤 사업이든, 정책이든, 관계든, 언제나 시작은 크고 화려하며, 끝은 명료하게 정리되길 원한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있던 갈등, 고통, 실수, 시행착오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들 불편하다는 이유로 지워진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기억은 늘 그런 식이었다. 한 사회가 겪은 어떤 위기와 사건도, 기록은 시작과 결말에만 몰두한다. 뉴스의 헤드라인은 무엇이 시작되었는지와 무엇으로 끝났는지만 이야기한다. 그 사이를 구성하던 복잡하고 다층적인 사건들은 마치 ‘시작과 결말’로 정리되는 완벽한 서사에 대한 방해물로 취급된다. 실제로, 얼마 전 있었던 우리 사회의, 이 나라의 거대한 격변도 그러했다. 시작과 끝은 누구나 기억하겠지만, 그 과정 중 일어났던 갈등, 토론, 분열, 목소리들은 어느새 점점 흐려져 가고 있다. 마치 일부러라도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듯, 우리의 역사는 매번 그 과정을 온전히 껴안지 못한 채 무언가에 쫓기듯 다음 장면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는 중간이 있다. 시작과 끝을 잇는 직선이든 곡선이든, 무언가의 과정이 없는 완결된 형태란 존재 자체가 불가능하다. 화가의 그림에서 마티니 한 잔을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많은 동작이 필요하듯, 어떤 결론도 그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누가, 어떻게 기억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그에 대한 해답은, 마지막 컷의 바텐더에게 남겨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과정’에 대한 중요한 상징이다. 그는, 혹은 그것은 과정을 숨기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분명히 말하고 있다. 이 ‘완벽한 한 잔의 마티니’는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어떤 일이든, 과정은 사라져선 안 된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시작을 거창하게 포장하고, 결말을 당연하게 소비하는 방식으로 그 중간을 쉽게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우리가 지나는 하루, 한 달, 한 해도,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쌓아 온 모든 것들도 마찬가지다. 아직도 어딘가에는 결과만 선명하게 남고 그에 대한 성과만이 강조되지만, 진짜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매번 고꾸라지고 다시 일어나는 반복 속에 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앞으로는 더 많은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과정’이고, 우리가 다음 결말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유일한 길이다.
다시, 그림의 마지막을 함께 들여다 보자. 어쩌면 그가 그리고자 한 건 애초에 과정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너무도 어리석은 익숙함에, 당연하게도 그 마지막을 바라보며 그가 그동안 얼마나 격렬하게 컵을 흔들었는지를 뒤늦게야 깨닫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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