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er's Bl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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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s Block
강민호
그대, 하루를 무의미하게 무참히 날려버린 적이 있는가. 대학원생에게는 그것이 일상일 수 있다. 연차가 쌓이면서 무던한 척 털고, 아무렇지 않게 내일을 준비하는 것에 익숙해져 간다. 기대에 전혀 못 미치는 결과를 무미건조하게 쳐다보다가, 마침내 이리저리 말이 될 것만 같은 시나리오를 몇 개 죽 나열해보고는, 뭐부터 해보면 고생을 덜 할까 잔머리를 쓰다 결국 몸을 움직여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보는 것으로 결론을 낸다.
겪어보지 않은 미래를 지금 미리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야속하게도 실험이 가능한 샘플은, 나의 욕심보다 언제나 그 개수가 모자르다. 첫째로, 그때 한 장 더 살려놓았으면 좋았을 것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과감히 던져버린 나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에 후회하고, 둘째로, 남은 기회가 바닥을 드러낼 지경에 이를 때까지 끝내 윤곽이 드러나지 않아 엊그제 분명 빨리 성공시킬 것이라 주변에 호언장담했던 과거의 내가 스스로 부끄러워 후회한다.
처음부터 말이 안되는 것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놓친 무언가 있는 것일까. 그 둘 사이에서 또 갈등을 하다 끝내 답을 정하지 못한 채 오늘밤도 깊어 간다. 그것은, 비록 나의 오판으로 인하여 뜨겁고 숨막히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내지 못하고 도중에 운명을 다했으나, 때론 감사하게도 다음 실마리를 남겨놓고 떠나기도 한다. 그런 소소한 작은 성취들을 위안 삼아, 칠흑 같은 망망대해에서 방향키를 조금씩 틀어가며 오늘도 어쨌거나 나아간다.
I got the writer’s block, so come to my block.
가만히 앉아있길 몇시간 째
아까 다 비운 맥주캔 다 핀 담배
새벽이 오고 이젠 잠까지 참네
그래도 이게 투잡 뛰는 거보다 훨씬 낫네
머리가 아파오지만 끝내 놓지 않고 집에 들어가기가 내키지 않아
아직 내가 못 꺼내놓은게 있어 그것만 찾으면 가짜와 내가 구분될 수 있어
하지만, 보여줘야만 한다. 깔끔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명확한 하나의 결론을, 사람들에게 말이다. 정돈되고 예쁜 것을 노출시키려 늘 애를 쓴다. 그 이면과 거기까지 도달하기 위한 일련의 과정은, 나에겐 몇 주 몇 달이 걸려 고되고 험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단 한 줄의 시행착오로 소비된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과정을 몸소 겪어서 그런지 낯선 곳에서 익숙한 것을 볼 때 예전에는 안보이던 것들이 이제는 보이고, 보이는 게 다가 아니란 걸 알기 시작했을 때쯤, 석사가 끝났다.
노래하는 법, 다 까먹어버린 걔는 거래하는 법을 배웠네
그게 여기서 오래하는 법이라며 날 가르치네
첫번째 나의 동기는 제일 잘하는 것, 그거 말곤 없었는데
이제는 그냥 이 과정에 남는게 있기를 바랄 뿐이고 하루 하루 조금씩 움직여
I’m still in my studio
I got the writer’s block, so come to my block.
낯설고, 새로운 것에 대한 유혹이 있다. 지금 붙들고 있는 불확실한 것을 버리고 다른 것을 순순히 받아들여야 하나 망설이게 한다. 그런데 의심부터 하는 것이 습관이 들어서인지 아니면 쓸데없는 고집이란 것이 생긴건지는 몰라도, 그것에 쉽사리 마음이 가지 않으면서도 자꾸 신경이 쓰인다. 호기심을 못 이겨 알아보니 하필이면 이게 마침 또 트렌드 란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잠시 새롭고 낯선 것에 시간을 들여 또 유심히 살펴본다. 한참을 둘둘 싸인 포장을 벗기고 마침내 속을 들여다봤더니, 현실성이 없거나 가짜라는 것을 직감할 때는 본래 하려던 것에서도 한참 멀어졌음을 깨닫고, 다시 터벅터벅 제자리로 하던 일을 하러 돌아간다. 이렇게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오늘 하루도 허비한다.
연구란 무엇일까. 이 과정의 끝에 내게는 결국 무엇이 남는 것일까. 아직 모르겠다. 우습게도, 일이 잘 풀릴 때는 이런 고민조차 안 하고 편히 단잠에 드는데, 유독 뭔가 안 풀린 날에만 이런 잡생각들로 푸념을 하다 하루를 마감한다. 연구와 논문 쓰는 일도 창작이다. 모든 작가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영감이 오고 다듬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필연적으로 거친다. 오늘은 마침 그런 날인 것 같아, 기분 전환겸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하루를 정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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