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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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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수
댓글 0건 조회 1,323회 작성일 25-06-07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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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실격,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다움이란 어디에서 비롯되는가에 대한 치열한 물음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주인공 오바 요조는 세 권의 수기를 통해 자신의 삶을 고백하며, 끊임없이 무너지고 다시 스스로를 규정하려 애쓴다. 그의 고백은 자조적이며 처절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인간적이다.


요조가 스스로를 인간 실격자라 인식하게 된 시작점은 자신이 타인과 ‘같지 않다’는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는 타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웃지 못하고, 동일한 기준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는 ‘행복’과 ‘도리’가 자신에게는 이상하고 낯설었다. 그는 타인과 같아지고 싶었고, 그들과 같은 방식으로 사랑받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각은 그에게 깊은 불안과 공포를 안겼다. 이 공포는 요조를 무(無)의 존재, 곧 바람처럼 스스로를 지우는 삶으로 내몬다. 타인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 끊임없이 그를 위협했고, 요조는 ‘사람이 되는 법’을 알지 못한 채, 사람 흉내를 내며 살아간다.


요조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신뢰’를 얻지 못한다. 타인은 늘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전제를 두고 관계를 맺으며, 자신도 속이는 것에 능숙해진다. 부모, 교사, 친구, 연인 등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끝내 이해받지 못했다는 확신을 갖고 있으며, 이러한 확신은 그가 어떤 형태의 구원도 믿지 않게 만든다. 어린 시절 하녀와 머슴에게 성폭력을 당하고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경험은,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그의 불신을 결정짓는 상처였다.


작품 속 인물들은 요조에게 일시적인 온기를 제공하지만, 결국 그에게 깊은 좌절을 남긴다.

바람처럼 자신을 숨긴 채 살던 요조는 백치 같은 창녀들을 만났을 때, 그들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인간도 여성도 아닌 미치광이처럼 느껴져서 도리어 안심하고 의존하게 되었다. 그러다 사기꾼의 아내인 쓰네코를 만나고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처음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요조는 마치 겨울 속 따뜻한 방처럼 감정의 안정을 느끼지만, 역설적이게도 쓰네코를 멀리하게 된다. 자신의 현실이 그녀에게 의존해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어느덧 그는 스스로가 무능력한 인간임을 자각하고, 쓰네코와 함께 동반 자살을 시도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요조만이 살아남고, 그녀는 세상을 떠난다.


이 사건은 요조에게 극심한 죄책감과 더불어 인간관계에 대한 불신을 결정적으로 심화시키는 계기가 된다. 그 후로 요조는 결혼도 하게 되지만, 아내가 겁간당하는 모습을 보고도 저항하지 않았다. 저항하는 것이 아내가 성폭행을 당하는 것보다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신의 행동에 스스로를 혐오하게 되었고, 마약에 의존하며 살아간다. 끝내 이런 세상이 두려워 자살을 결심하지만 친구와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요조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실패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고뇌에 가까이 다가간 인물이다. 그는 왜 인간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지, 왜 살아가는 방식이 서로 다르면 죄가 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다. 그가 느낀 ‘인간다움’이란 정해진 도리나 윤리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른 존재들이 서로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 속에서 갈등하는 감정 그 자체였다. 요조는 그것을 감당할 용기가 없었기에 광대가 되었고, 무(無)의 존재가 되었으며, 끝내 스스로를 실격 처리한다.


『인간실격』을 관통하는 핵심 질문은 “인간다움은 무엇인가?”이다. 가면을 벗고 내면의 상처를 마주할 용기가 진정한 인간다움인지, 혹은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서로를 비추어줄 수 있는 연민이야말로 인간다움인지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많은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가족 앞, 친구 앞, 직장 동료 앞에서 드리는 연극이야말로 타인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장치이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진짜 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 질문은 독자를 소설 속 요조의 자아 균열로 이끌며, 각자의 삶에서 마주해야 할 고뇌를 상기시킨다.


요조는 인간은 서로 속이면서도 이상하게 상처를 입지 않고, 정말이지 산뜻하고 깨끗하고 밝고 명랑한 불신이 인간의 삶에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느꼈다. 정의니 뭐니 하는 도덕과는 다르게 서로 속이면서 살아가는 인간이 난해했던 것이다. 하지만 요조는 자신의 속마음이 들킬 것이 두려워서 더욱 철저히 가면을 쓰고 살아갔기에 자신은 인간 실격이라고 선고하며 주저앉았다.


인간의 본질에 대한 의문은 끊임없이 제시되어왔고 철학의 근본이 되었다. 철학자들이 각자의 결론을 내린 것과 대비되게, 요조는 이러한 의문에 좌절하고 스러지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르트르가 말한 것처럼 인간이란 스스로를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존재라면, 요조는 오히려 선택의 자유를 견디지 못하고 무가 되기를 택한다. 하이데거가 죽음을 직면함으로써 진정한 실존에 도달한다고 말할 때, 요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그저 흐르듯 살아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공동체 속에서 덕과 이성을 통해 완성되어야 한다고 보았지만, 요조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를 거부했고, 그 안에서 수양되기보다는 점점 더 자신을 폐기처분해 나갔다. 공자의 세계에서 인간은 관계 속에서 수양되지만, 요조는 관계 자체를 두려워하고 부정한다. 그는 철학자들이 고통을 감내하며 인간됨을 모색할 때, 그 고통의 문턱에서 자신을 지워버린다. 그가 인간 실격이라 말한 순간은, 어쩌면 질문을 끝까지 품을 용기를 내려놓은 한 인간의 비명일지도 모른다. 요조의 생애는 인간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 절망으로 응답한, 또 하나의 대답의 형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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