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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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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원묵
댓글 0건 조회 1,341회 작성일 25-06-08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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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인간
'김동식 작가의 회색 인간을 읽고'

 

 어느 날, 한 대도시에서 만 명의 사람들이 하룻밤 새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들은 지하 세계의 인간들에게 납치된 것이었다. 지하의 인간들은 이렇게 말했다.

 “지저에 우리가 살 공간이 부족하니, 도시 하나 크기의 땅을 판다면 즉시 지상으로 돌려보내주겠다.”
 

 그러나 그들이 준 것이라곤 땅을 팔 곡괭이와, 진흙 맛이 나는 말라비틀어진 빵 뿐이었다. 숙소도 없어 하루 종일 일하다가 아무 곳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화장실도 없어 아무 데서나 볼일을 봐야 했다. 물이 부족해 오줌조차 받아 마셔야 했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항상 지쳐 있었고, 늘 배가 고팠다. 그들 사이엔 웃음도, 눈물도, 분노도, 사랑도, 여유도, 서로를 향한 동정도 사라져 있었다. 많은 사람들은 굴을 파다 굶어 죽고, 돌에 맞아 죽고, 과로로 죽고, 곡괭이에 맞아 죽었다. 그렇게 돌가루에 뒤덮이며, 사람들은 점점 ‘회색 인간’이 되어갔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선택지가 없었다. 그저 주변을 돌아볼 틈 없이, 계속해서 땅을 팔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한 여자가 곡괭이를 내려놓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또 한 남자는 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또 다른 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의 시선은 차가웠다. 그들은 일을 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우는 이들로 여겨졌고, 화풀이의 대상이 되었다. 땅을 파지 않는 사람에게는 음식이 주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무차별적인 따귀 세례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그들은 멈추지 않았다. 매번 다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자신들이 처한 환경과 감정, 상황을 담아내려는 노력이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누군가가 그들에게 자신의 식량인 빵을 나누어주었다. 먹을 것이 없는 궁핍한 환경 속에서, 땅을 파지 않는 이에게 식량을 나누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더욱 신기하게도 다음 날 역시 누군가가 그들에게 빵을 가져다주었다. 이러한 변화들이 이어지며, 사람들은 그들이 왜 노래를 부르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넌 살아남아. 우리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꼭 살아남아. 우리의 이야기를 세상에 남겨줘.”


 그리고 그들에게 자신들의 감정과 현실을 잘 담아서 세상에 남겨달라고 간절히 부탁했다. 그날 이후, 사람들은 조금씩 변해갔다. 노래를 부른다고, 그림을 그린다고, 더 이상 화를 내지 않았다. 오히려 흥얼거리는 이들이 하나둘 생겨났고, 몇몇 사람들은 끊임없이 머릿속으로 이곳의 이야기를 썼으며, 그림을 그렸다. 그것은 누군가는 꼭 살아남아 이 이야기를 세상에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더 나아가 세상에 나갈 수 있다는 희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게 여전히 돌가루는 날리고, 사람들은 죽어나갔고, 모두가 배가 고팠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회색’이 아니었다.
 

 이 소설은 단편이라 하기에도 짧은, 초단편 소설이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어려울 때, 예술은 언제나 빛을 발해왔다. 예컨대 고려시대에는 15년에 걸쳐 팔만 대장경을 간행하며 불교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막고자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많은 저항 문학을 통해 민족의 아픔과 광복의 염원을 후대에 전했다. 이처럼 예술은 ‘희망’ 이라는 강력하고 고귀한 감정을 심어준다.


 그런 의미에서 매달 작성하는 독후감 또한 일종의 예술이다. 책을 읽고, 사유하고,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는 이 과정은 인문학이며, 예술 행위이다. 그 과정 속에서 나는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정리하게 된다. 이를 통해 복잡했던 생각이 정돈되고, 요동치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때때로 연구가 잘 풀리지 않아 힘들고 지치더라도, 다시 회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을 얻게 된다.


 결국, 사람이 살아가고 공동체가 살아가는데 있어서, 예술’ 은 단지 배부른 자들의 사치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향유할 수 있고, 그래서 우리 모두에게 정신의 안식처가 되어주는, 우리에게 굉장히 가까우면서 고귀한 힘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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