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으켜 세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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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의 단편 소설집에 수록된 ‘회색 인간’은 어느 날 지상에서 갑자기 만 명의 사람이 증발해 지하 세계로 끌려간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포로가 된 지상인들은 굶주림과 폭력 속에서 하루하루를 견디며, 그 절망 속에서도 ‘희망’과 ‘예술’이 얼마나 강력한 힘이 되는지 체감한다. 처음에는 도시 하나를 파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붙잡고 곡괭이를 들었으나, 무의미해 보이는 고된 노동 앞에서 허무함이 밀려온다. 그때 한 여성이 곡괭이를 내려놓고 노래를 부르고, 또 다른 남성이 돌멩이로 벽에 그림을 그리자 공동체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돌가루가 날리고 온몸이 회색으로 물들어도, 사람들의 마음은 더 이상 회색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지상인들이 탈출에 성공했는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들이 마침내 도시를 다 파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리라 믿는다. 희망이 생겼기 때문이다. 언젠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 이들의 부당한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고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으므로. 그렇다면 이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을 버티게 한 ‘희망’은 무엇이며, ‘예술’은 어떤 역할을 했던가?
기대와 달리 곡괭이를 내려놓은 이들에게 되돌아온 것은 폭력과 굶주림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노래와 벽화는 단순한 위로를 넘어, 동료들의 가슴속에 삶의 이유를 되살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게 만드는 매개가 되었다. 특히 한 사람의 빵 나눔 장면은, 가장 비참한 순간에도 ‘함께’라는 작지만 소중한 연대가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연구실에서 지친 동료에게 작은 간식을 건네며 나눈 짧은 대화가 큰 위로가 되었던 순간과 닮았다. 가끔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나누는 짧은 대화가 협업의 원동력이 되었듯, 이 소설 속 소박한 예술 행위와 나눔도 모두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고 느꼈다.
소설을 덮고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 있다. “절망의 밑바닥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당신을 일으켜 세우는 힘은 무엇인가?” 김동식은 이 질문을 통해, 인간이 극한 상황에서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성찰하게 한다.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존재, 그리고 그 희망이 때로는 가장 사소한 예술 행위와 작은 나눔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회색 인간’은 디스토피아적 배경 속에서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생존 방식임을 여실히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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