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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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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1,588회 작성일 25-06-10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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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 세대 그리고 젠더 갈등. 다양한 수식어가 붙은 갈등이라는 단어를 접하는 것은 이제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이례적인 과학의 발전을 바탕으로 사회가 고도화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다양한 소통의 도구가 범람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서로를 향한 이해와 존중은 퇴보하는 듯 보인다. 갈등과 몰이해가 만연한 아이러니한 세상 속에서 오히려 우리는 철저히 타인은 ‘단순히 잘못된 사람’이라 규정하고 자신 만은 서사를 지닌 ‘복잡하게 괜찮은 사람’으로 여기는 이분법적인 사고로 스스로를 안도하며 살아간다. 우리 모두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망각하고 타인을 철저히 타자화하면서 나 자신에 대한 성찰마저 단절시키며 말이다. 각자의 삶의 영역이 점점 좁아져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로 인한 상대방에 대한 복잡성을 헤아리기를 사치로 여기는 요즘, 이러한 현상에 이질감을 느껴지지 못한 다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맥락은커녕 지금 나의 행동과 생각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내가 아닌 남에게 관심과 애정을 할애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적잖은 노력이 필요한 이 사고는 결코 소실되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문화를 접하는 이유는 내가 아닌 타인의 모습에 나를 투영하는 과정에서 숨겨둔 나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괴팍하고 앞뒤 꽉 막혀서 소통은 커녕 융통성 없어 보이던 오베가 그러했다. 무례하고 이기적으로 보였던 그의 행동과 언행이 불편하게 다가왔지만, 그의 엉켜진 인생의 실타래가 차츰 풀리면서 그가 선택했던 고집에 담긴 사랑, 상실, 그리고 책임의 무게를 이해하고 난 이후부터 오베 역시 ‘그저 잘못된 사람’이 아닌 ‘복잡하게 괜찮은 사람’임을 알 수 있었다. 함께, 그만의 규칙은 그의 삶을 균형을 잡기 위한 행동이었으며 그의 침묵은 상실의 말 없는 증표였음을 깨달으면서 나는 배웠다. 누군가를 단정짓기 전에, 나 역시 그와 같았거나 앞으로 그러한 모습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 이해의 출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불완전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은 치부를 들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과의 융화의 시작임을 말이다. 이해받고자 하는 인간의 본능은 결국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되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쩌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갈 수 있게 된다. 갈등이 넘치는 지금 타인의 얼굴에서 나를 발견하는 일이, 우리가 여전히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이고 필연적인 이유이기에.

 

 

 오베의 선택과 감정, 그리고 행동을 이해하려는 과정에서 문득, 책을 읽기 전 과거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궁금해졌다. 때론 오베처럼 고집스러웠고, 누군가의 호의를 오해하며 날카로운 가시를 돋우며 벽을 세운 적이 있던 내가 떠올랐고, 그 순간 타인이라 함은 내가 아닌 남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를 포함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불어 이웃에게 점차 마음을 열어가는 오베의 고집과 상처는 나의 삶에 잔잔한 울림을 주었고 어쩌면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를 계기로 지난 나를 들여다 볼 수 있었던 이 순간으로 하여금 앞으로의 나의 삶도 조금은 부드러워질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오베를 이해하려 했던 노력은 결국 나를 더 넓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고, 과거의 모습에 대한 솔직한 회상은  타인을 조금 더 이해하려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타인을 통해 과거의 나를 조명하는 짧은 찰나의 사고의 과정 속에서 내 안에 미처 알지 못한 감정과 덮어두고 싶던 약점을 마주할 용기를 얻으면서 나는 그렇게 비로소 어제보다 성숙하고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됐다. 

 


 결국,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저 상대방을 위한 일이 아니라, 나의 성장과 과거와의 화해이면서 나아가 더 넓은 공동체를 위한 길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나 자신으로 한정 짓지 않고 점차 사회 전체로의 이해의 폭을 확장 시키며, 고립이 아닌 공존으로 점차 나아가는 여정임을 시작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여정은 늘 내 주변의 사람, 과거의 나,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것들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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